2005년 11월,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을 보살펴온 외국인 수녀 두 명이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섬을 떠난다. 두 수녀가 소록도에 머문 기간은 43년이었다. 소록도 주민들은 수녀들이 떠난 뒤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성당과 치료소에 모여 오랫동안 두 수녀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후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았던 그들이 어느날 새벽 아무도 모르게 소록도를 떠난 이유는 "너무 늙어 더 이상 환자들을 잘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주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제목의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빕니다."
떠나기 전부터 소록도 주민들에게 이별을 암시해온 그들은 평소 요란한 환송행사가 주민들에게 누가 될까, 괜스레 언론에 알려져 시끄러워질까 염려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일생을 건 헌신과 봉사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한국정부도 그들에게 1972년 국민포창, 1996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바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가 훈장을 서훈했을 때는 완강한 수상 거부로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 전해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1960년대 당시 6,000여 명이 넘는 나병환자들과 그 가족들로 가득했던 소록도는 같은 나라 사람들조차 접근을 꺼리던 곳이었다. 국가적 지원이나 사회적 보살핌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기꺼이 달려온 두 수녀는 이후 평생을 '마리안네 & 마가레트'라는 표찰이 붙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소록도의 환자들을 성심으로 보살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상처를 치료하고 마을일이라면 항상 앞장서는 등 주민들의 삶을 돕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전라도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두 수녀를 주민들은 '할매'라고 부르며 가족같이 여겼다고 한다.
떠날 때 그들의 두 손에는 40여 년 전 섬에 들어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하나씩만 들려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현재 고향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머물고 있으며, 얼마 전 소록도 앞바다의 그곳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조용히 삶의 끝자락을 매만지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왔다고 한다.
<지식e season4>, 북하우스, p158-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