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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화요일

[중앙일보 강남통신]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지금' 안 하면 그때는 오지 않는다: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든 조수용 JOH&컴퍼니 대표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지금' 안 하면 그때는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4.04.16 00:02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든 조수용 JOH&컴퍼니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랜딩 전문가'로 불리는 조수용(40) 대표. 얼핏 보기에 그는 매우 이질적인 층을 켜켜이 쌓아놓은 사람 같다. 어지간한 인쇄매체를 다 사라지게 만든 초록색 네이버 검색창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도무지 연결 될 것 같지 않은 경력이 마주치는 지점에 그가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젠 광고도 없는(※돈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광고가 없다) 잡지를 만들고 있다. 이 사람, 대체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하다.

-부유한 집에서 자랐을 것 같은데.

“아니다. 어머니가 1년에 딱 두번, 시험 전날만 옷을 사줬을 정도다. 내가 옷을 워낙 좋아하니 기분 좋게 시험 보라는 뜻이었다. 늘 상의 하나 바지 하나 사는 정도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어머니가 그냥 골라서 사준 적이 없다는 거다. 항상 내가 선택했다.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옷을 살 때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영등포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우리 형편에 살 수 있는 옷을 다 구경하게 한 거다. 그러고선 햄버거집에 데려가 햄버거 하나를 쥐어주며 ‘뭐가 제일 마음에 들더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맘에 든 옷을 말하고 햄버거집에서 나와서 그 옷을 샀다. 어머니 입장에선 많이 못 사주니 딱 하나라도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걸 사입히고 싶었던 거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나는 다들 그런 줄 알았다. 내 것을 내가 고른다는 걸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돌이켜보니 그게 진짜 교육이었다.”

-진짜 교육이라니.

“뭐든지 쇼핑하는 마음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림 감상이 난해하다고들 하지만 내 돈 주고 내 방에 건다는 느낌으로 보면 잘 보인다. 난 내가 산 옷 태그를 다 모았다. 똑같이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딴에 비교를 했다. ‘여기랑 저기는 경쟁관계인데, 이렇게 다르네’ ‘같은 옷인데 이렇게 하니 더 고급스럽네’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디자인이고 브랜드였다. 물론 그때는 디자인이란 말조차 몰랐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

“강원도 시골 사람인데 남달랐다. 내가 어릴 때부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넌 뭐가 좋니,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좋은 것’이라며 항상 나를 존중했다. 어머니는 내게 윗 사람이 아니라 내 옆에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그랬다. 모든 결정을 내게 맡겼다. 자식 자존감 키워주는 교육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 결정을 존중해서 그런 거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세상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가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언제까지 유지됐나.

“서울대 미대에 들어가서 냉엄한 현실과 마주쳤다. 학교 들어가 보니 애들이 너무 잘 살더라. 대부분 강남애들이었다. 완전히 별천지 세상을 보고 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나는 우리집이 꽤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처 받았다기보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 보니 지금 일의 단초가 됐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했나.

“처음엔 미술학원 강사를 했는데 돈이 안 되더라. 그래서 컴퓨터를 샀다. 당시엔 컴퓨터로 뭔가 디자인해서 출력해 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무리해서 돈을 모아 컴퓨터 사서 남들보다 좀더 일찍 컴퓨터 작업을 익혔다. (※사무실 한쪽에 있는 조그만 맥킨토시 컴퓨터를 가리키며) 저게 그때 컴퓨터다. 저걸로 PC통신 ‘천리안’을 하고 그랬다. 그 덕에 졸업 후 초창기 ‘프리챌’에 입사해 디자인팀장을 맡았고, 그 경력을 발판으로 네이버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난 줄곧 인터넷 회사라는 게 싫었다.”

-인터넷 회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는데 싫었다니.

“다른 산업은 다 쌓아온 구력이라는 게 있다. 또 서로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한 리스펙트(존중)가 있다. 그런데 인터넷은 역사가 짧다. 시작 단계라 다 선무당들인 거다. 개발자 정도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죄다 문과 출신 기획자들이 디자이너에게 ‘너는 예체능이야, 네가 왜 생각을 하니’ 라는 식으로 구는 게 싫었다. ‘너는 못 그리니까 아무리 생각이 있어도 디자인을 못 하지만, 나는 그릴 수가 있으니 내 생각을 그리면 더 좋은 것 아니냐’ 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많은 디자이너였나보다.

“그냥 타고난 비즈니스맨 같다. 디자인 스킬과 무관하게 나는 모든 걸 사업의 관점에서 봤다. ‘이 사업이 잘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말이다. 내가 ‘사업이 잘 되려면 이건 하지 말아야죠’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너, 디자이너가 왜 사업 얘기를 해’라고 의아해 했다. 그럼 나는 ‘그럼 디자인이 사업이지, 예술이냐’고 반문했다.”

-네이버 검색창을 만든 주인공으로 유명한데.

“검색창은 원래 있었다. 그걸 사용하기 편하게 디자인한 후 네이버 브랜드로 만든 거다. 지금은 잘 이해가 안가겠지만 당시 검색창은 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찾는다’는 건 정보가 많을 때 가능한데 그땐 한글로 된 문서가 별로 없었다.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난 네이버가 찾을 거리를 만든 회사라고 평가한다. 한글 데이타베이스 구축에 주력했다. 뉴스를 사다 집어넣고 백과 사전도 사다 인터넷에 집어넣었다. 네이버가 없었으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까지 인터넷을 안 하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도 일본 사람은 검색 안 한다. 아직도 서점이나 도서관 간다. 한국 사람은 서점에 안 간다.”

-서점 안 가고 책도 안 읽게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왜 잡지인가. (※그는 세계적 브랜드를 소개하는 잡지 ‘매거진 B’를 만들고 있다. 한권에 1만3000원씩 2만부 찍는데 광고는 넣지 않는다.)

“난 잡지를 너무 좋아한다. 어떤 분야가 궁금하면 그 분야 잡지를 보면 된다. 그 업계 메이저 플레이어와 꼬맹이가 누구인지, 누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잡지 몇 달 보면 훤히 알게 된다. 그게 내 취미생활이다.”

-광고 안 받는 잡지로 수익을 낼 수 있나.

“주변에서 ‘주류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변칙’이라고들 얘기하는데, 난 거꾸로 이기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난 늘 그래왔다. 무엇을 하든 이기는 방법을 찾는다. 세상에 이런 잡지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절대 취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무기로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잘 하는 게 뭔가. 브랜드를 좀 안다는 거다. 그래서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체를 만든 거다. 기존 잡지 상당수는 몽땅 다 광고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비슷비슷하다. 기획기사를 보면 몇년이 지나도 내용이 좋은데, 나머지 90% 광고 때문에 잡지 가치가 묻혀 버린다. 잡지가 한번 이 굴레에 들어가면 못 헤어 난다. 독자가 ‘이 브랜드 기사를 왜 썼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잡지에서의 정답은 아마 ‘광고니까’일 거다. 하지만 매거진 B는 다르다. 우리 답은 ‘우리 관점’이라는 거다. 전 세계 브랜드 중 철학과 가격·실용성·아름다움의 균형점을 가진 브랜드를 찾아 소개하고 싶다. 관점이 있어야 미디어가 롱런할 수 있다. 유럽 잡지도 표지에 등장한 브랜드는 잡지에 돈 낸 곳이더라. 이런 현실을 보고 이 시장이 세계적으로 비어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시장은 관심도 없었지만, 논란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영문판으로 승부를 걸었다.”

-실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원래 리얼 월드 가이(real world guy)다. 돈을 정말 많이 벌었다 치자.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게 뭔가. 인간 본능으로 들어가보면, 정말 인간이 하고 싶은 건 디지털 세상 안에 있지 않을 거다. 친구랑 놀고, 요트 타고, 책 내고, 옷 만들어 팔고, 자기 집 짓고 싶어 한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우리 회사 미션이 ‘나중에 하고 싶은 걸 지금 한다’다.”

-조수용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트렌드는 뭔가.

“인간이라 원래 갖고 있는 가치관이 있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보고 싶은, 아주 본연의 가치관 말이다. 이걸 지향하고 보여주면 된다. 이런 마음으로 하면 그게 트렌디한 거다.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하는 걸 보고 트렌디하다고 얘기한다. 그 본능을 빨리 캐치하는 사람이 트렌디한 사람이다.”

-그래도 같은 본능을 소구케 하는 장치가 있을 것 아닌가, 가령 디자인라든지.

“난 디자인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컨드 키친이든 매거진B든 디자인으로만 말하면 지극히 평이하다. 더 멋진 디자인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이걸 감각적이라고 하냐면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음악 등 다양한 감각을 통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려는 거다. 그래서 뭘 하든 오너의 생각이 중요하다. 오너가 관점이 없으면 디자인이 불가능하다. 디자인 시안만 100개가 붙는다. 그건 마치 오늘 나갈 옷을 길거리 투표로 정하는 거랑 똑같다.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어, 이게 브랜딩이다. 브랜딩이 잘 되면 디자인은 거저 주워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옷을 입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가’가 중요하지, ‘진한 수트가 좋은가, 밝은 수트가 좋은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촉’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본인만의 트레이닝 방법이 따로 있나.

“어렸을 때 옷 하나 사기 위해 전체를 봤던 것처럼 뭔가를 볼 때 그 시장 전체를 다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기분이 좋다. 안경에 관심 있으면 이 바닥은 어떻게 돼있는지, 가령 누가 퍼스트 무버이고 다크호스고 이런 걸 다 알아야 마음이 편하다.”

글=윤경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조수용(40)
1974년 서울 출생
1997년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졸
1999년 서울대 미술대학원 산업디자인 졸(석사)
1999~2003년 프리챌 디자인센터
2003~2010년
NHN 크리에이티브마케팅&디자인 부문장 등 역임
2011년~ 현재 JOH&컴퍼니 설립, 대표
 

사는 곳: 판교
근무하는 곳: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20길 21-18

조수용은 누구

네이버의 초록색 검색창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2005년 디자인 디렉터로 그가 고안한 이 검색창은 네이버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2007년엔 네이버는 물론 한게임 등 NHN 서비스 전체의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며 승승장구했다. 최연소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으나 2010년 돌연 NHN을 떠났다. “인터넷 산업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며.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 ‘JOH & 컴퍼니’를 설립해 브랜드 컨설팅과 출판·식당·건축·패션 등 5개 업종에 손을 대고 있다. 이중 대중적으로 가장 세상에 알려진 게 2011년 11월 창간한 잡지 ‘매거진 B’다. 하나의 브랜드를 선정해 회사와 제품의 역사 등을 소개하는 잡지로, 글은 최소로 하고 사진을 많이 넣었다. 그의 표현대로는 “마음먹고 보면 30분만에 읽을수있는” 호흡이다. 『JOH의 혼』이라는 이 잡지는 특정 브랜드를 다루지만 그 브랜드로부터 광고를 받거나 나중에 책을 대량판매하지도 않는다.

특정 브랜드와 관련한 잡지니, 당연히 다른 회사 광고도 없다. 독자 판매가 수익의 전부다. 창간호 ‘프라이탁’(스위스 가방)부터 가장 최근의 25호 ‘순토’(SUUNTO·핀란드 시계)까지 모두 그렇게 만들었다. 식당은 2개 브랜드를 운영한다. 유기농이나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하는 밥집 ‘1호식’과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레스토랑 ‘세컨드 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1호식을 연 이유가 단순하다. 직원이 마음편하게 밥먹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직원은 무료로 이용한다. 가방 브랜드 ‘에드 백’(ED BAG) 역시 매거진B를 만드는 기자들이 들 수 있는 디자인 깔끔하고 수납 좋은 가방이 필요해서 만들었단다. 그는 지금 올 10월 오픈 예정인 영종도 네스트 호텔과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 집중하고 있다. 호텔 이름, 컨셉트와 건축설계까지 JOH & 컴퍼니가 맡아서 한다.

[중앙일보 강남통신] 그들이 야구장으로 간 까닭

[커버 스토리] 그들이 야구장으로 간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14.04.16 00:02 / 수정 2014.04.16 00:02

‘시간은 돈이다.’ 여기서 시간은 일하는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노는 시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원시시대의 시간이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는 흔한 것이었죠.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다릅니다 돈을 주고 사야할 만큼 희소하고 귀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가치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만 점점 사람이 몰립니다. 대형 유통회사가 야구장을 경쟁상대로 꼽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경쟁구도를 알아봤습니다. 시간을 누가 차지하느냐, 바로 그 사람이 소비자의 지갑도 차지하리니-.

오래 잡아두어라, 의미있게

“코카콜라 경쟁상대는 다른 음료수가 아니라 물이다. 우리가 음료업계 점유율 40%를 차지해 독보적 1위라지만 전체 물시장을 놓고 봤을 땐 3%밖에 되지 않는다. 우린 한참 멀었다.” 워렌 버핏이 꼽는 최고의 기업 중 하나, 바로 코카콜라다. 지금의 코카콜라가 있기까지는 1981~97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회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펩시와의 시장점유율 싸움에서 승리해 자만에 빠져있던 코카콜라를 흔들어 깨워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바로 위의 이런 통찰력으로 말이다.

이 회사 직원은 물론 소비자 대부분 코카콜라의 경쟁자는 펩시콜라라고 생각할 때 그는 판매하는 제품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니, 소비자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토대로 경쟁업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꿰뚫어봄으로써 코카콜라를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당시엔 고이주에타의 발상이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이제 이런 접근법은 꽤 보편적인 게 됐다.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의 경쟁업체가 게임기 회사 닌텐도라거나 유통업체의 경쟁상대가 테마파크라는 식으로 말이다. 더욱이 산업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경쟁구도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실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업종은 어떤 게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경쟁의 먹이사슬의 최정점엔 어떤 업종이 자리잡고 있을까.

화장품의 경쟁상대가 맛집이라고?

최근 화장품 업계가 전반적으로 얼굴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백화점 등에서 판매하는 고가(高價) 화장품 브랜드는 저가(低價) 브랜드 공세에 매출이 휘청하고, 저가 브랜드는 살아남기 위해 연일 할인에 할인을 거듭하다보니 남는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업계 내에 경쟁 브랜드가 너무 많아 레드오션이 된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은 위협적인 경쟁자로 서로 다른 화장품 브랜드를 꼽지 않았다. 예를 들어 김인애 에스티 로더 부장은 경쟁자로 샤넬이나 랑콤 대신 맛집이란 답을 했다. 값비싼 영양 크림 하나 살 돈으로 차라리 서비스 좋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등 소비 행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소비자는 이렇게 매 선택의 순간마다 내 욕구를 가장 충실히 충족시켜주는 곳에 돈을 쓴다. 사실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마케팅 이론가인 하버드 경영대 테오도르 레빗 교수는 일찍이 197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마케팅 근시안’(Marketing Myopia)에 관해 썼는데, 핵심내용은 소비자의 요구(needs)와 욕구(wants) 위주로 경쟁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결국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면 어떤 업종도 서로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2014년을 살아가는 한국 소비자의 요구와 욕구는 누가 누구와 경쟁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채워주고 있는 걸까. 아니, 대체 어떤 욕구가 있는 걸까.


마켓 셰어를 넘어 라이프 셰어로

제일기획은 최근 중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라이프 셰어(life share)다. 간단히 설명하면 소비자 일상을 공유하는 모든 게 시장에서의 경쟁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같은 업종 제품간 경쟁을 넘어 소비자가 같은 시간이나 상황에서 사용하는 모든 게 경쟁자라는 개념이다.

김미경 제일기획 어넬리틱스팀 박사는 “기존 시장 안에서 우리 회사 제품 몫을 늘리는 마켓 셰어(시장 점유율·market share) 시대에서 소비자 마음에 우리 회사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마인드 셰어(mind share)를 넘어 이제는 라이프 셰어(life share)가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예컨대 주말 오후를 보내기 위해 집에서 TV를 볼 지, 외식을 할지, 아니면 야외로 나가 캠핑을 할지, 아니면 테마파크에 갈지, 선택의 폭은 넓지만 결국 고를 수 있는 건 한가지 밖에 없다. 그러니 TV나 외식·캠핑·테마파크 등이 모두 경쟁자인 셈이다. 레빗 교수의 말대로 내가 공급하는 제품이 무엇이냐보다는 소비자가 뭘 원하느냐에 초점을 맞춰 경쟁자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국내 업체들도 이미 몇년전부터 이런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11년 “이제 다른 유통업체와 시장점유율 경쟁을 하는 데서 벗어나 테마파크나 야구장과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밖 명품 아웃렛 매장은 이런 인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런가하면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는 2007년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비약적인 관객 증가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홈구장인 문학구장의 경쟁상대를 잠실구장이나 사직구장이 아닌 CGV·메가박스 같은 영화관과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로 설정한 게 주효한 거다. 2009년 리모델링한 인천 문학구장은 단순히 야구 경기장이 아니라 나들이 문화를 선도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2006년 30만명에 불과했던 관람객수는 2012년에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구장엔 바비큐존 등이 있어 가족들이 피크닉 온 기분으로 고기를 구어먹을 수도 있다.

미 경제 칼럼니스트 케빈 매이니는 『트레이드 오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충실성과 편의성을 저울질하며 선택을 한다고 했다. 충실성이란 그 선택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양질의 경험, 편의성은 말 그대로 편리함을 뜻한다. 김상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수고를 무릅쓰고 굳이 야구장에 가는 건 단순히 야구 경기 결과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집에서 TV로 관람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게 바로 매이니가 말하는 충실성이고, 점점 사람들은 충실성이 높은 경험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케아가 위협적인 이유

이케아(IKEA)의 한국 진출이 가구업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끼치는 것도 사람들이 이젠 전보다 충실성 높은 경험을 원한다는 데 있다. 이케아가 바로 소비자의 그런 욕구를 정확히 충족시켜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단순한 가구업체가 아니다. 더더욱이 값싸고 귀찮은 DIY업체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전세계 어디든 이케아 매장을 가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케아는 가구 살 생각 없어도 그냥 미트볼 먹으러도 놀러갈 수 있는 곳이다. 웬만한 곳은 매장이 워낙 크기도 하지만 가구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에, 게다가 값싸고 맛있는 미트볼로 이케아는 하루 종일 고객을 잡아둔다. 이케아가 그러란다고 누가 그 말을 듣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들 자발적으로 이케아에 머무는 건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그만큼 양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케아의 한 홍보 담당자는 “이케아는 체험형 매장이라 일부 테마파크 등에서 우리를 경쟁상대로 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한국에선 아직 매장을 열지 않아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이케아가 단순히 가구업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판매 제품군으로만 보면 가구업체 뿐 아니라 다양한 가정용 소품을 파는 대형 할인매장이 직접적인 경쟁상대”라고 말했다.

가구업체의 경쟁자는 가구업체, 식의 정형화한 경쟁관계 대신 새로운 경쟁상대가 나타나는 것은 기존 시장 안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져 시장 범위를 확대하려는 기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김건하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로운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산업 간 장벽이 허물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게 가능한 건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혹은 어떤 행위를 할 때 한 가지만이 아니라 다른 대체재도 함께 고려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 교수는 경쟁의 다섯가지 측면 중 하나로 ‘대체재와의 경쟁’을 꼽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쟁구도

앞서 언급한대로 화장품 업계는 경쟁자로 맛집(외식업)을 꼽았다. 그렇다면 맛집 역시 화장품을 경쟁자로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임종욱 CJ푸드빌 과장은 “외식업은 일단 집 밖에 나와서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먹는다는 점에서 캠핑이 경쟁자”라고 말했다. 둘 다 똑같이 야외에 나가서 음식을 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캠핑업체는 외식업을 전혀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캠핑업체 콜맨은 집밖에서 즐기는 모든 엔터테인먼트, 즉 영화관·테마파크·대형마트·야구장을 다 꼽았다. 콜맨 마케팅팀 허재성 차장은 “캠핑에서 해먹는 음식은 야외라는 공간에다 직접 해먹는 재미가 있어 단순히 사먹는 음식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영화관이나 테마파크 등은 “캠핑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나 친구끼리 함께 즐기는 복합적인 활동”이라 경쟁자로 봤다.

그렇다면 영화관은 어떨까. 캠핑과 함께 테마파크·야구장을 더 꼽았다. 조성진 CGV 홍보팀장은 “문화 콘텐트를 갖고 사람을 많이 모으는 곳이라면 다 경쟁자”라고 했다. 메가박스 측도 캠핑 등 아웃도어 활동을 주된 경쟁자로 꼽았다.

테마파크에겐 복합쇼핑몰이 새로운 경쟁상대였다. 롯데월드 홍보팀 양기승씨는 “다양한 문화를 한곳에서 경험하는 몰링(malling) 문화가 경쟁상대”라며 “복합쇼핑몰에서도 쇼핑과 식사·영화·공연 등 테마파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쟁 사슬의 마지막에는 뭐가 있을까. 바로 야구장이다. 유통업체는 물론 영화관·캠핑업체가 동시에 야구장을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꼽았다. 그렇다면 야구장에겐 누가 경쟁자일까. SK 와이번스 김성용 홍보팀 매니저는 “결국 시간점유율 싸움”이라며 “3시간 여유가 있을 때 사람들은 야구장에 갈지, 테마파크에 갈지, 영화관에 갈지를 선택한다”며 “볼거리가 있고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테마파크가 경쟁자”라고 설명했다.

야구장으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 경기의 재미는 물론, 누구와도 즐겁게 지낼 수 있고 또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2014 프로야구 LG와 두산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야구장에 왜 열광할까

야구장이 경쟁 사슬의 마지막에 놓였다는 건 최근의 야구 열기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야구장 관람은 이제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야구장을 찾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2000년엔 연간 관람객이 250만명이었는데 지난해엔 644만명이었다. 경기당 평균 관객수로는 4713명(2000년)에서 1만1184명(2013년)으로 늘었다.

이달 1일 KIA 타이거즈의 홈 개막전이 열린 광주 챔피언스필드 외야 잔디석에서 한 가족이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 자리는 관람석 중 가장 인기가 좋다.
지난 1~2일 휴가내서 친구와 함께 광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 다녀온 김현숙(35·송파구 잠실동)씨는 “여자끼리 커피 마시며 수다떠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라며 “여자 친구끼리 건전하게 스트레스 풀러 자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즌 중엔 적어도 10번 이상 야구장을 찾는다는 금모씨(31·광진구 중곡동)는 “사실 남자끼리 즐길 게 많지 않다”며 “남자끼리 테마파크나 영화관에 가면 다들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야구장은 이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가족 나들이로는 더없이 좋다. 임기영 넥센 히어로즈 홍보팀장은 “똑같은 시간을 할애해도 온 가족이 테마파크에 갈 때와 야구장에 갈 때 대화시간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테마파크에서는 별로 대화할 일이 없지만 야구장에선 대화를 한다는 거다. 그는 “한 지인이 중학생 딸이랑 와서 처음으로 2시간 넘게 대화했다고 할 정도로 야구장 효과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또 테마파크를 찾는 사람은 학생과 학부모로 연령대가 정해져 있지만 야구장은 가족, 연인, 친구, 직장동료 등 상대가 누구든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야구 자체의 묘미도 있다.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은 “한국만의 독특한 응원문화가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몰리게 한다”며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구장에서 3만명 넘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부산 갈매기’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유명한 응원가를 부르는 광경은 정말 재미있고 놀라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야구장은 완급 있는 놀이문화”라고 했다. 영화관은 집중해서 영화만 봐야 하고 캠핑장은 대화가 끊기면 분위기가 자칫 썰렁해진다. 하지만 야구장은 대화를 나누다 경기를 볼 수도, 또 경기에 빠져 있다가도 경기 내용에 따라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하다는 거다.

어떤 기업이든 결국 관건은 소비자의 시간과 호감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야구장이 국내 많은 다른 업종의 경쟁자로 꼽혔다는 건 어쩌면 단순한 스포츠 업종이 아니라 서비스업종이자 콘텐트 산업인 미 프로야구(MLB)나 영국 프로축구(EPL)의 반열에 올랐다는 얘기가 아닐까.

안혜리·윤경희·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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