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6일 일요일

[허핑턴포스트] 세상에서 가장 파란 마을 조드푸르

세상에서 가장 파란 마을 '조드푸르'의 절경(사진)

게시됨: 업데이트됨: 
Print Article
파란 마을이라고 하면 모로코 '쉐프샤우엔'이 유명하지만, 인도의 라자스탄에도 마을 전체가 파랗게 칠해진 곳이 있다. '블루 시티'라고 불리는 요새 도시 '조드푸르'다.
2014-06-25-1294802.jpg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묵직하게 솟은 것은 메헤랑가르 요새다.
2014-06-25-1294803.jpg
요새에서 내려다본 마을. 운하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파랗다.
2014-06-25-1294804.jpg
2014-06-25-1294805.jpg
2014-06-25-1294806.jpg
파란색 배경 앞에서는 자전거와 개마저도 근사해 보인다.
물론 조드푸르의 경관을 더욱 돋구어 주는 건 파란 배경과 어울리는 원숭이들이다.
2014-06-25-1294811.jpg
2014-06-25-1294812.jpg
2014-06-25-1294814.jpg
2014-06-25-1294815.jpg
2014-06-25-1294816.jpg
2014-06-25-1294817.jpg
조드푸르에서 셀카를 찍고 싶다면 꼭 빨간 옷을 입고 가라. 끝내주는 대비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벽에 파란 페인트를 바르는 남자. 조드푸르는 항상 블루 시티를 유지하기 위해 페인트를 칠한다.
2014-06-25-1294820.jpg
만약 올해 휴가를 인도로 갈 수 있다면, 블루 시티 '조드푸르'에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느껴보자.

[허핑턴포스트] 도시를 아트로 승화시키다! 놀라운 공공미술 9

도시를 아트로 승화시키다! 놀라운 공공미술 9

게시됨: 업데이트됨: 
Print Article
GIANT RUBBER DUCK
'공공미술'이란 대중을 위해 공개된 장소에 만들어진 작품을 의미한다. 특정 장소에 설치된 공공미술은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지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과도 작품이 전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가 세계의 기발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9개를 모았다. 공통점이라면 재치있으면서도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1. 마이크 켈리(Mike Kelley) : "움직이는 주택(Mobile Homestead)" (2005)
mobile
미국 작가 마이크 켈리는 자신이 미시간주에서 나고 자란 집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다. 집의 앞부분은 이동 주택처럼 디자인했는데 디트로이트 시내까지 이동해 공공서비스의 역할을 한다. 집 뒤쪽은 디트로이트 현대 미술관에 영구히 소장되어있다. 이곳은 미용실, 바베큐, 집이 없는 노숙자들이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장소가되기도 한다. 움직이는 주택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에서 열리는 마이크 켈리 회고전의 한 일환으로 로스 앤젤레스까지 여행할 계획이다.

2.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 "구름 문(Cloud Gate)" (2006)
anish kapoor cloud gate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에 있는 '구름 문'은 100톤이 넘는 스테인리스 스틸 콩이다. 사실 이 거대한 조각은 액체상태의 수은에서 영감을 받았다. 조각의 매끈한 표면은 시카고의 도시 전경을 반사한다. 이 작품은 셀카 장소로도 유명한데 표면에 비친 몸이 외계인처럼 왜곡돼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놀이동산 거울의 방처럼 말이다.

3. 플로렌틴 호프만(Florentijn Hofman) : 고무 오리 프로젝트(Giant Rubber Duck) (2007)
florentijn hofman
작년 홍콩 빅토리아 항구엔 거대한 오리가 나타났었다. 이 오리는 고무 풍선으로 만들었는데 약 26m의 높이에 무게는 약 590kg이 나간다. 네덜란드 작가 플로렌틴 호프만은 사이즈만 다르게 해서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으며 홍콩 뿐만 아니라, 상파울루, 피츠버그 등 세계 전역에서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는 "고무 오리에겐 국경이 없다. 차별도 없고 정치적인 의미도 없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설명했다.

4. JR :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프로젝트" (2011)
jr inside out
프랑스 거리 예술가 JR은 경찰이 자행한 폭력과 불평등에 항의하는 '평등을 위한 걷기' 30주년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거대한 예술 참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에 JR은 얼굴 사진을 제출한 5천명 중 2천명의 포스터를 만들어 모두가 볼 수 있게끔 거리에 붙였다. 20만장의 포스터가 지금까지 네팔, 멕시코, 팔레스타인 등을 포함한 110개국에 뿌려졌다. 그는 프로젝트의 목적이 '세상을 뒤집는 데 예술이 사용되는 것'이라 말한다.

5. 캔디 창(Candy Chang) : "죽기 전에(Before I Die)" 벽화 (2011)
before i die
예술가 캔디 창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심했던 시절 예술로 눈을 돌렸다. 타이완계 미국인인 그녀는 "나는 죽기 전에 ____를 하고 싶다"는 문구를 버려진 건물에 썼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그들의 생각과 꿈을 익명으로 적을 수 있게 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60개가 넘는 나라에서 30개가 넘는 언어로 진행되고 있다. 평소 간직했던 버킷 리스트를 담벼락에 씀으로써 우리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6. 여성에게 웃으라고 하지 말라(Stop Telling Women To Smile (2012)
smile
도시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생각지 못한 야유를 듣는데 익숙하다. 길을 지나가는 여성에게 "오 아가씨 예쁜데? 좀 웃어봐" 라든지 말이다. 이런 성희롱에 싸늘한 시선으로 이에 응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타티야나 파즐라리자데(Tatyana Fazlalizadeh)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에 대항한다. 바로 "여성에게 웃으라고 하지 말라"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지역에 붙이는 것이다.

7. 니트로 덮은 앤디 워홀 브리지 (2013)
andy warhol
2013년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브리지가 미국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색의 얀 바밍(yarn bombing: 니트로 거리를 장식하는 거리 미술)으로 다시 태어났다. 입이 떡 벌어지는 작업은 스스로를 '니트 더 브리지(Knit the Bridge)'라고 칭하는 공예 그룹이 만들었다. 여기엔 580개가 넘는 니트 담요가 쓰였으며 거대한 다리를 장식했다. 형형색색의 뜨개들이 밋밋한 노란색 건축물을 이렇게 매혹적으로 바꿀 수 있다니, 공공미술이 도시설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8. 레오 빌라리얼(Leo Villareal) : "베이 라이트(The Bay Lights)" (2013)
leo villareal the bay lights
'베이 라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LED 조각이다. 너비는 약 3km, 높이는 150m에 이른다. 2011년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베이 브리지의 75주년을 맞아 2만 5천개의 백열 LED전구를 개별 프로그래밍화해서 달았다. 베이 브리지의 장엄한 건축이 내뿜는 빛은 2015년 3월까지 계속된다.

9. 폴 매카시(Paul McCarthy) : "콤플렉스 파일(Complex Pile)" (2013)
public art paul mccarthy
최고는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폴 매카시의 엄청난 대형 배설물을 지금 소개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이 작품은 2013년 5월 홍콩 미술관 M+에서 주최한 야외 프로젝트 'Infalation(부풀리기)!'에서 대중에게 선보여졌다. 아름다운 주위의 경치를 조롱함과 동시에 공공조각이 진지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조각이다.

[시사IN] 한반도의 일제강점, 원점은 크림반도였다

크림반도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복잡한 국제 역학 때문에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에도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크림반도 사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불행했던 우리 근대사를 되돌아보면, 그 원점에 바로 크림반도가 있었다. 1853~1856년 이어진 크림 전쟁에서의 러시아 패배. 그것이 바로 출발점이다. 전쟁의 패배로 흑해 진출이 좌절된 러시아는 또 다른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우랄산맥 동쪽으로 넘어온다.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토크 항이 그때 러시아 땅이 되고 한반도와의 인연도 본격화한다. 그 뒤 일본과 각축을 벌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한반도는 일제 강점의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역사는 기억의 전쟁이라고 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민족은 역사의 저주를 면치 못한다. 적어도 19세기 불행했던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에게 ‘크림 이펙트’, 즉 크림반도에서 펼쳐진 세계사적 사건의 파장은 매우 현실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21세기의 벽두에 또다시 발생한 크림의 대격변은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 것인가.

최근 벌어진 사건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복잡해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의 친러파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의 반대로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협력협정 체결에 소극적이자 친유럽파 세력이 들고일어나 올해 1월 그를 축출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계 주민이 절대다수인 크림자치공화국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3월16일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귀속시켰다. 크림자치공화국은 원래 우크라이나에 속하지 않았으나, 1954년 흐루쇼프 서기장이 자기 고향인 우크라이나에 선물로 줬다고 한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이후 여러 차례 러시아 복귀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병합 이후 푸틴 대통령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토적 야심은 없다고 선언했고, 미국과 나토 역시 러시아에 대해 군사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 소강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해체 후 약 20년 동안 미국과 유럽에 밀려온 러시아가 이들이 뒤에 버티고 있는 줄 알면서도 무력으로 크림을 장악해버린 사태의 파장이 여기서 끝나리라고 보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냉전 해체 이후 20여 년 만에 세계 질서의 대변동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 있다. 이른바 ‘크림 이펙트’, 즉 크림반도 사태가 불러올 향후의 연쇄 파장에 유라시아 대륙 주변의 많은 국가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4월1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우크라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푸틴은 나토와 미국에 맞서 러시아판 유럽연합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연합 구상을 갖고 있다. 
ⓒEPA
4월1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우크라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푸틴은 나토와 미국에 맞서 러시아판 유럽연합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연합 구상을 갖고 있다.
크림반도 사태를 거슬러 올라가면 푸틴 대통령과 미국·서방의 글로벌 자본 간의 악연이 그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옛소련 해체 후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따위 천연자원 지배권을 둘러싼 생존을 건 싸움이 그 발단이었다. 소련 붕괴 직후인 옐친 정권 시절 경제개혁의 주도권을 쥔 세력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시장화 개혁을 밀어붙이는 한편 러시아 경제를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려 했다. 가격 통제가 일시에 해제되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고, 국영기업이 소유하던 석유나 가스 등을 소수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에 불하해 부의 편중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서방 세력이 존재했다. 이 같은 난맥상으로 러시아는 초격차 사회로 전락했고 8년간 GDP의 절반이 날아갔으며 1998년에는 심지어 국가부도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푸틴은 왜 석유기업 유코스 대표를 구속했나 

2000년에 대통령이 된 푸틴은 올리가르히와의 전쟁을 벌여 석유왕인 베레좁스키나 미디어 왕인 블라디미르 쿠신스키 등을 제거하고 주요 자원을 국유화했다. 마지막 남은 상대가 바로 석유기업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롭스키였는데,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 자본의 막후 실력자인 영국의 제이콥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고 ‘오픈 러시아’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헨리 키신저를 이사로 초빙하기도 한 이 재단의 설립 목적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러시아를 서방에 개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코스 주식의 40%를 미국계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에 매각하기 위해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자칫하면 엑슨모빌의 배후에 있는 미국 정부가 러시아 석유정책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푸틴은 그를 탈세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해 8년 금고형을 살게 했다. 이게 2003년 10월의 일이다. 그해 4월은 미국이 이라크 석유 장악 등을 목적으로 이라크에 침공했던 해로, 푸틴으로서는 미국이 이라크뿐 아니라 전 세계 석유를 장악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호도롭스키의 체포와 구금은 미국 및 글로벌 유대 자본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이들과의 악연에 빌미가 되었다. 곧이어 반격이 시작됐다. 한때 유행병처럼 돌았던 동유럽 지역의 이른바 색깔혁명이 그것이다. 호도롭스키 체포 다음 달인 2003년 11월 조지아(그루지야)에서 장미혁명이 일어났고, 2004년 12월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혁명, 2005년 4월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튤립혁명이 일어났다. 모두 민주화를 앞세운 비정부기구(NGO)들이 전면에 나섰지만 그 배후에 미국이 있었고 내용적으로는 반푸틴 운동이었다.

흑해 서안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 것도 바로 그즈음인 2004년의 일이었다. 미국은 양국에 군사기지를 강화해 흑해를 군사적으로 포위하다시피 했다. 특히 러시아 흑해함대의 주둔지인 세바스토폴 항구를 코앞에 두고 있는 루마니아는 최전선 국가이다. 흑해에 주둔한 미국 해군의 최대 거점 기지가 된 항만도시 코스탄차, 그리고 콘스탄차에서 가까운 미하일 코가르니세아누 공항의 군사화, X밴드 레이더 기지가 들어서 미사일 방위(MD) 기지로 건설되고 있는 데베세르 공군기지 등이 루마니아에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장래 일본의 가데나나 독일의 람슈테인에 필적하는, 미국 공군의 해외 6대 기지 중 하나로 전환될 베즈메르 공군기지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냉전은 끝났지만 러시아의 남쪽 출구인 흑해에서는 미군의 포위망이 조여오고 있었던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2월6일 러시아 소치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과 푸틴 대통령. 
ⓒEPA
2월6일 러시아 소치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과 푸틴 대통령.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4월24일 만난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아베 총리. 크림 사태는 아베 총리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AP Photo
4월24일 만난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아베 총리. 크림 사태는 아베 총리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색깔혁명으로 압박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군사 포위망을 좁혀오는 미국과 나토에 맞선 푸틴의 구상이 바로 ‘러시아판 유럽연합’이라고도 불리는 ‘유라시아연합(EAU)’이다. 이 구상이 처음 드러난 것은 2011년 10월4일자 <이즈베스차>에 실린 푸틴의 인터뷰 기사에서였다.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의 관세동맹을 확대해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회원으로 삼아 2015년 1월에 정식 발족하겠다는 것이다.

푸틴은 유라시아연합이 옛 소련제국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경제 가치체계’를 토대로 한 강력한 통합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 측은 이를 옛소련 재건 움직임으로 보고 경계해왔다. 따라서 스케줄로 놓고 보면 지난해 11월부터 친유럽파가 중심이 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이 추진해온 유라시아연합 멤버 중 규모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가장 중요한 국가였다. 따라서 서방으로서는 어떻게 하든 내년 1월 유라시아연합 출범 전에 우크라이나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통해 합류하지 못하도록 막을 필요가 있었고, 푸틴은 푸틴대로 핵심 교두보를 장악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1월13일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의 소리’에 등장한 미국 언론인 리크 로조브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맹시킨 이후 러시아의 흑해함대를 철수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러시아로서는 1856년 크림전쟁 패배 후 흑해 통항이 봉쇄되던 시절과 비슷한 처지가 된다. ‘러시아가 양보할 수 없는 선까지 서방 측이 넘어왔다’는 푸틴의 발언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얘기처럼, 푸틴이 1930년대 히틀러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옛 소련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는 과거 스탈린 시절 소련이 동유럽을 서방과의 완충지대로 활용했던 것처럼 푸틴의 의도 역시 이 점에 가깝다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의도를 가졌든 간에 국제법의 제약을 간단히 무시했음에도 그 누구로부터도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나토는 그동안 러시아를 우습게 보고 나토 및 유럽연합의 동방 확대, 그리고 흑해 연안에 대한 군사 포위망을 강화해왔지만, 정작 푸틴의 기습적인 무력시위에는 속수무책이다. 3월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있었던 G7 회의에서는 푸틴을 G8에서 영구 제명하자는 캐머런 영국 총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만 러시아 소치에서 열기로 한 G8 회의에 불참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푸틴 측근들에 대한 도항 금지 및 경제제재를 하는 선에 그쳤다. 냉전 이후 실질적인 1극의 위치를 차지해온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시리아 사태에서 국제분쟁 해결의 당사자 지위를 포기했듯이 이번에도 독일 메르켈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떠맡기다시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크라이나 동쪽의 친러시아 지역들 역시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본격화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의 충돌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오바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이 굴러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64~65쪽 기사 참조).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그리는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4월28일자 특집에서 <슈피겔>은 앞으로 나토와 러시아 간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물론 현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푸틴은 동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해 서우크라이나로 진입해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토 가맹국인 폴란드와 대치하게 된다. 이는 나토와 러시아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 경우 독일이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흑해에 군사적 이익선이 있어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나 유럽전쟁에 개입할 생각은 없다. 프랑스나 영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에 또 한번 전쟁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미·러·영·프·독 5개국이 매일 협의를 하지만 외교력은 거의 소진되고 있다. 외교로 풀 수 있는 길이 없다시피 하다. 현재의 유럽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8월, 사라예보의 총성 전야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유라시아연합 뜨면 첫 번째 초대 대상은 북한 


한반도와 일차적으로 직결되는 것은 바로 북한 정세와의 관련성이다. 지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미·중 간, 북·중 간에 6자회담을 위한 물밑 교섭이 활발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회의에서 이란 핵문제 해결 전까지는 기존 대북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한다(66~67쪽 관련 기사 참조). 6자회담을 계기로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의 방중 내지는 북·중 간, 남·북 간 교류로 숨통을 열어가려 했을 북한으로서는 화가 날 만한 상황이다.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추가 핵실험을 통해 핵무력을 증강시키는 등 긴장을 높이는 일밖에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3월18일 타이완 대학생들이 입법원을 점거했다. 마잉주 총통의 통일 교섭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P Photo
3월18일 타이완 대학생들이 입법원을 점거했다. 마잉주 총통의 통일 교섭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크림반도에서 미국 및 나토와 대치 중인 러시아로서는 유라시아 동쪽의 북한을 어떻게 하든 우군화할 필요가 있다. 서방 측과의 대치 전선이 하나 더 만들어져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년 1월을 기해 푸틴의 계획대로 유라시아연합이 출범하게 되면 북한은 옛소련권 이외 국가 중 첫 번째 초대 대상이 될 것이다. 과거 냉전 시대 북한은 중국보다는 소련과 가까웠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국과 관계를 맺느라 애먹었는데 옛소련권이 하나로 뭉치면 북한도 힘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앞으로 3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암암리에 깔고 있는 남쪽의 ‘통일대박론’ 등 통일에 대한 기대감 역시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크림 이펙트’는 러시아를 통해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바마의 미국이 더 이상 국제경찰 노릇을 포기한 상황에서 푸틴의 성공은 다른 지역의 패권국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유라시아 동쪽에서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과, 중국을 핑계로 군사적 자립을 꿈꾸는 일본의 동향이 최대 관심사다. 크림반도 사태 직후인 지난 4월호와 5월호 일본의 시사 잡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센카쿠가 크림이 되는 날’이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중국의 센카쿠 침공 가능성을 분석했다. 센카쿠뿐 아니라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타이완과의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타이완에서 대륙에 가장 가까운 진먼다오(金門島)와 마쭈다오(馬祖島) 주민은 중국과 일체감이 깊은데, 중국군이 자경단으로 변장해 침공하면 간단히 점령할 수 있다는 소문이 타이완에 파다하다는 것이다. 지난 3월18일 타이완 대학생 1000여 명이 국회 격인 입법원에 난입 점거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도, 표면적으로는 타이완 정부가 중국과 벌이고 있는 서비스업 개방 반대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마잉주 총통의 통일 교섭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타이완에서도 위기감이 높아간다는 얘기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전통적인 집단지도 체제에서 벗어나 푸틴형의 강권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푸틴과의 협조를 외교의 기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체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푸틴은 유라시아 서쪽에서 나토와 대립하고 시진핑은 유라시아 동쪽에서 미·일 동맹과 대립한다는 면에서 동병상련이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 직전에 만나 내년의 ‘반파쇼 전쟁·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공동축하 기념행사’를 같이하기로 재확인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3월 중국 전인대에서는 9월3일을 항일전쟁승리기념일로, 12월13일은 난징대학살 희생자국가추도일로 지정했다. 1년에 두 차례나 반일본 기념일을 지정한 것이다. 올해는 청일전쟁 발발 120주년이 되는 해로 지난 1월 정치국 회의에서는 올해를 대일 투쟁의 가장 중요한 1년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월18일 베이징시 제1중급 인민법원은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장을 접수함으로써, 대일 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하기로 한 1972년 중·일 공동선언의 합의를 무너뜨렸다. 일본의 배상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이 중국 경제 재건에 기여하는, 1972년 이후 40여 년간 유지돼온 양국 관계의 기본 토대가 붕괴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따라서 올해도 중·일 양국은 더욱 치열하게 역사 및 영토 분쟁을 치르게 될 것이며, 그 와중에 센카쿠가 과연 크림과 닮은꼴 운명이 될지에 관심이 모인다.

흥미로운 것은 크림 사태가 일본의 아베 총리나 극우파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아베 총리는 나라 안팎에서 궁지에 몰렸다. 미국의 만류에도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자 미국 측이 이례적으로 실망했다는, 외교적으로는 격렬한 반응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베 측근들이 ‘우리도 미국에 실망했다’고 받아치면서 일본 정국에 파문이 일었다. 아베를 중심으로 한 반미 보수의 단면이 드러난 것으로, 자민당 55년 체제 동안 친미 보수를 기치로 내걸었던 당내 주류파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사태였다. 이에 따라 후쿠다 전 총리를 정점으로 자민당 내 반아베 세력과 공명당, 창가학회까지 연결된 연합세력이 구축되던 참이었다. 이 와중에 크림 사태가 터졌고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이 겹쳤다. 오바마로서는 관심 사항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서의 양보 대가이기도 했지만, 집단적 자위권과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해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하며 일본의 사정권에 들어 있는 센카쿠 열도는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한 측면이 크다. 실제 적용 과정은 헌법 절차에 따르기로 되어 있어서 시리아 사태처럼 의회 동의 과정에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베로서는 일단 야스쿠니 참배 이후의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크림 사태는 유라시아 동쪽 끝에까지 파장을 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20세기에는 러일전쟁과 한반도의 식민화로 이어졌던 크림 분쟁이 21세기 오늘날에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동북아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 

[허핑턴 포스트] 역사 속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

역사 속 가장 비밀스런 조직 7

게시됨: 업데이트됨: 
Print Article
ILLUMINATI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 블로거이자 저자 알렉스 그레시안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장미십자단...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바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유명한 비밀조직들이다.
프리메이슨의 악수법(엄지손가락으로 손가락 관절이나 손목을 누름)에는 수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프리메이슨 사회에서는 자신이 점하는 지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악수한다. 또 다른 비밀조직 일루미나티의 멤버들이 그들의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 손으로 만든 사인은 마치 록 음악 팬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스트파노멘(Karstphanomen, 나의 새 책 '악마의 워크숍(The Devil's Workshop)'에 등장하는 비밀 조직)의 멤버들은 서로에게 라틴어구를 속삭이는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특별한 악수 방법이나 암호 외에 대부분의 비밀조직에 사리사욕 보다 중요한 건 없는 듯하다. 한번 조직에 초대되면 회원 개인에게는 특정한 보상이 주어진다. 뇌물, 영향력 있는 자리에 지명, 사업적 경제적 기회 등 말이다. 좀 더 종교적인 성향(혹은 신성모독 성향)이 있는 몇몇 단체는 그들이 신비한 능력을 얻거나 초자연적인 힘과 부산물을 축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 비밀 조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진짜' 비밀은 지키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제 프리메이슨은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카스트파노멘은 변호사와 공익의 대변자로 활동하고 있다. 익명을 유지하고 기술에 능한 인터넷 단체만이 과거 비밀 조직이 했던 방식으로 인기를 얻는 중이다.
비밀 조직은 지난날의 유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흥미를 유발하는 힘을 여전히 갖고 있다. 지금 소개할 7개의 비밀조직은 심지어 지금까지 영향력이 남아있다.
1. 프리메이슨(Freemasons)
프리메이슨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비밀 조직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대중들에게 비밀스러운 악수, 기이한 의식, 계급제도(사회에서 얻은 경험과 존경이 더 많을수록 위로 올라간다)로 알려져 있다. 원래 프리메이슨은 몇 개의 작은 사회의 연합이었다. 그들의 첫 번째 '집회소'는 1717년 런던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그 당시 프리메이슨의 존재에 대한 루머가 이미 100년 전부터 돌고 있었다고 한다. 현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비밀조직의 신호는 프리메이슨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비밀스런 악수, 암호, 개인적인 의식, 복잡한 일련의 명령들이 그 예다.
2. 일루미나티(Illuminati)
일루미나티가 본래 프리메이슨으로부터 갈라지고, 이탈한 조직이라고 해도 음모론자들은 일루미나티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이들은 일루미나티의 의제인 '재해, 미스터리, 경기침체' 등을 믿는다. 사실 아직까지 일루미나티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점이 일루미나티가 가진 유일한 신비함이다.
3. 스컬 앤 본즈(The Skull and Bones)
스컬 앤 본즈는 1832년 윌리엄 H. 러셀이 예일 대학교에서 만들었다. 아마도 모든 비밀 조직 중 가장 비밀이 적을 것이다. 원래는 율로기안 클럽(Eulogian Club)이라 불렸다. 스컬 앤 본즈 조직은 빵빵한 회원을 자랑하는데 여기엔 최소 3명의 대통령, 산업계의 거물, 비밀 기관의 장 등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속해 있다. 조직원들은 의식행사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만난다. 이 의식은 프리메이슨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스컬 앤 본즈는 미화된 대학 클럽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4. 장미십자단(The Rosicrucians)
장미십자단은 15세기 초 크리스천 로젠크로이츠(Christian Rosenkreutz)가 창립했다. 이 조직은 무속 의식을 이용해 지구를 개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2세기 후, 조직의 세 가지 강령을 담은 출판물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발단이 됐다. 일가견 있는 음모론자들은 그들이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보이지 않는 대학(Invisible College)을 설립하고 현대사에서 중요한 혁명을 이끈 주요 원동력이 되어왔다고 믿는다.
5. 빌더버그(Bilderberg)
195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거물들이 한 호텔에 모였다. 다가오는 해의 전 세계적 의제를 토론하고 계획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매년 만남을 지속했으나 그들이 이야기한 내용은 절대 밖으로 새지 않았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비밀 조직은 아니다. 그들의 존재나 회원들이 문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음모론자는 그들의 연례 모임이 끼치는 영향과 권한을 걱정하고 있다.
6. 시온파(The Elders of Zion)
1920년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소유한 신문사는 "시온의정서(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라는 이름의 러시아 문서를 재인쇄해 실었다. 곧 이 문서가 가짜란 게 밝혀졌지만, 이 내용은 "국제 유대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The International Jew: The World's Foremost Problem)"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고 책으로 출판됐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도용했다. 아직도 전 세계 반유대주의 이론가들은 '시온의정서'의 존재,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게 진짜라고 믿고 있다.
7. 성당 기사단(The Knights Templar)
12세기 초 9명의 기사가 성지를 여행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서약에 맹세했다. 더 많은 기사가 이 조직에 가담했고 조직은 점차 성장하고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부와 명예, 권력을 축적했다. 대중문화는 그들이 다른 비밀 조직에 돈을 대고 신성한 가톨릭 유물을 보호한 역할을 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성당 기사단의 멤버들은 결국 고문받고 처형당했다. 그리고 조직은 없어졌다. 그들이 성궤, 성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있었다는 말에 유력한 증거는 없다.

[허핑턴포스트] 온라인상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

default
세계에서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상의 인물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색 연구가 나왔다.
이는 여러 검색 알고리즘을 조합해 세계 24개 언어의 위키피디아(인터넷 백과사전의 일종)에서 지난 35세기 동안의 인물들을 분석한 결과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은 프랑스 툴루즈대학교 엄영호 박사가 최근 이런 내용의 논문을 내놨다고 11일(현지시간) 전했다.
이에 따르면 위키피디아 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였다. 미국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예수가 2~4위로 뒤를 이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5위와 6위였고, 교황 베네딕토 16세, 알렉산더 대왕, 찰스 다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위 내에 들었다.
엄 박사의 연구는 위키피디아의 인물 소개 페이지에서 해당 페이지가 다른 영향력 있는 인물·사건의 페이지와 얼마나 많이 연결돼 있나를 기준으로 했다.
가디언은 "여기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란 (위키피디아에 서술된) 그의 인생에 다른 영향력 있는 인물·사건들과 연관이 많이 돼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영어권만 봤을 땐 '마이 웨이'를 부른 미국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1위에 올랐다. 2위는 마이클 잭슨이었고 3위는 교황 비오 7세였다.
영국 가수 엘튼 존이 4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5위였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미국 가수 비욘세,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미국 가수 머라이어 캐리,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등이 뒤따랐다.
애초 엄 박사 등이 단순한 알고리즘(구글 알고리즘)만으로 분석했을 땐 생물 명명법(이명법)을 고안한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도출됐었다. 현재 거의 모든 동식물의 이름이 이명법을 따르고 있다.
가디언은 이런 결과는 위키피디아에 실린 셀 수 없는 동식물 페이지에 '칼 폰 린네가 이름을 지어줬다'고 명기돼 있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