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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일 월요일

[조선일보] 공공의 적 IS… 이슬람이 서구를 압도했던 中世로의 회귀 꿈꾼다

입력 : 2015.02.28 03:00

인질 참수 등 극단 행동 일삼는 IS… 인터넷·SNS로 세계 젊은이들 포섭한다는데

젊은이들, 왜 빠져드나
무기력·혼돈에 빠져 살다
선명한 폭력 투쟁에 매료
IS, 세련된 웹진으로 유혹

국가정보원은 터키에서 실종된 김모(18·서울 금천구)군이 수니파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최근 공식 확인했다. 영국에선 10대 소녀 3명이 IS에 가담한 것이 확인됐다. 인질을 참수하거나 불 질러 살해하는 동영상을 살포하며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IS는 요즘 국제사회 '공공의 적'이다. IS의 실체는 무엇이며 세계 젊은이들이 여기 가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IS의 전신은 '유일신과 성전'이다. 이 단체는 1999년 요르단 출신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Abu Musab Al Zarkawi)에 의해 결성된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이다. 정치범이었던 자르카위는 본래 늦깎이 무자히딘(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맞서 싸웠던 이슬람 전사) 출신이다. 자르카위는 2006년 사망했지만, 이 집단은 알카에다 이라크(AQI) 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2014년 IS로 명명했다.

결성 초기에는 주로 이라크 내 시아파 공격 등에 집중했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지역 무장 집단에 불과했다. 결정적 변화는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일어났다. 미국과 싸우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사담 후세인 밑에서 요직을 맡다 쫓겨나 투옥된 수니파 군인, 경찰 등이 가담하며 투쟁 노하우가 쌓이고 조직은 커져갔다. 이념과 복수심으로 뭉친 이 집단은 잔인한 극단주의 노선을 통해 내부 결속과 대외 선전을 이끌었다. 최근 이들이 벌이는 잔인한 살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은 2004년 김선일 참수 사건의 주범이기도 하다.


 IS와 알카에다
 지난 16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장미의 월요일 축제’ 가장행렬에 IS와 알카에다 해골 인형이 등장했다. ‘테러 경쟁(Terror Wettkampf)’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최근 인질을 참수하거나 불태워 살해하는 IS의 만행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AP 뉴시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격렬하게 싸울까?
IS의 궁극적인 목적은 632년 시작된 중세 '영화로운 칼리프의 시대(칼리프 라시둔)'의 복원이다. 무슬림들은 이 시대가 역사상 가장 이슬람 원리에 가까웠다고 여긴다. 지도자 합의 추대, 평등주의, 확실한 신념 등에 기반을 둔 이슬람의 폭발적 확장도 바로 칼리프 시대에서 시작되었다. IS는 칼리프를 자임하는 44세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 Baghdadi) 1인 통치체제로 알려져 있다.

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무슬림들은 근대 이전까지는 이슬람 세계가 서구 기독교권을 문화적으로 압도했다는 믿음이 있다. 내내 우월하다가 단지 산업혁명에서 한 번 뒤처지면서, 유럽의 식민주의에 수치를 당했다고 믿는 것이다. IS는 이러한 심리를 간파, 이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격적 투쟁으로 가장 이슬람다운 시대를 일거에 이루어낸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IS는 이슬람의 찬란한 시대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이교도와의 어설픈 협상이나 공존은 금기라 믿는다. 오히려 철저한 이념과 힘에 의지해서 적을 섬멸할 것을 주장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살상이나 가혹한 처벌 등 어떠한 잔인한 수단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수의 무슬림은 사람을 무차별하게 살상하는 행동은 이슬람과 관계가 없다고 비판한다.

조직과 전략은? 왜 사람들이 몰려드나?
IS가 나름 중세 칼리프 시대의 모양을 갖추고 국가 수립을 선언하다 보니 여기에 혹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같은 극단주의 집단인 알카에다만 해도 비밀리에 활동하는 집단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IS는 어쨌든 스스로를 '국가'라며 치고 나오니 파급력이 더 커졌다. 그렇게 해외에서 몰려든 사람들, 소위 해외 테러 전사(Foreign Terrorist Fighters·FTF)들이 90여 개국 1만5000~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대체 왜 젊은이들이 해외 각처에서 몰려드는 걸까? 혼돈과 무기력의 시대에 좌절과 염증을 느끼는 소위 '외로운 늑대'들은 선명한 폭력 투쟁에 가담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나라, 즉 재현된 중세의 신비한 이슬람 국가를 행선지로 삼고 시리아행 짐을 싼다. IS는 이러한 심리를 포착, 이슬람의 역사와 연계된 수사학을 이용하여 선전을 구사한다. 해외에서 가담하는 이들은 '무하지룬' (Muhajirun·이주자들)이라 불리며 영웅처럼 묘사된다.

한편 IS의 인터넷 SNS 사용 능력과 감각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이들이 세련된 디자인의 동영상과 웹진을 뿌려댄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내려받기가 가능하기에 이들의 선전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누구와도 접촉이 가능하다. 능수능란하게 인터넷을 사용하며 잠재적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에게 다가가 포섭을 시도한다. 완연히 새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IS는 국가가 아니다. 정통성 없는 테러 집단에 불과하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로부터 나온다. 현지 주민들은 기존의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의 차별과 탄압, 학살로 인해 다른 대안이 없어 극단주의자들에게 복종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를 지향하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21세기 국가를 건설, 통치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은 IS가 가진 자금, 화력 그리고 현지 정세의 혼란 등으로 인해 이들이 활개 치고 있다. 관건은 IS 치하에 있는 주민들에게 안전과 복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부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연합뉴스] 독일 메르켈, "무슬림·소수자 증오 설 땅 없다" 경고

독일 메르켈, "무슬림·소수자 증오 설 땅 없다" 경고

게시됨: 업데이트됨: 
MERKEL
독일 내 이슬람 이민자 급증에 따른 이슬람화 반대운동 확산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12일(현지시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기독교사회당(CSU) 전당대회 연설에서 "독일에선 무슬림이나 다른 소수자에 대한 증오가 설 땅이 없다"고 강조했다.
CSU는 메르켈이 당수로 있는 기독교민주당(CDU)의 자매정당으로 두 당 모두 우파 정당이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난민 수용시설로 사용될 건물이 방화 되고 나치 표식으로 치장된 사건에 대해서는 "독일을 찾는 모든 이들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인종적 구호를 들고 난민 시설을 훼손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아네 비르츠 정부 부대변인도 "정부와 총리의 이름으로 종교적 증오가 독일 땅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힐 수 있다"고 말하고 "이슬람 증오와 반유대주의 또는 다른 종류의 혐오 감정이나 인종주의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Germans protest against growing 'Islamisation' - Euronews
이런 언급은 최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Patriotic Europeans against the Islamisation of Europe, Pegida) 주도의 월요시위에 대한 우려에서 나왔다.
드레스덴에서 지난 10월 처음 등장한 이 시위는 "독일의 유대 및 기독교·서방 문화의 보존을 원한다"라는 주장과 함께 동조자들을 규합해 세를 불리고 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1만 명 가량으로 늘고 다른 도시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맞물려 이를 규탄하는 시위도 조직화하는 양상을 보여 독일 당국은 양측의 갈등 확대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CSU가 독일에 정착해 살고자 하는 이민자들은 가정 내에서도 독일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려 하는 등 이민자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 반 이슬람 정서가 표출될 환경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Germany’s Refugee Crisis - The New York Times

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시사인] 이 파키스탄 소녀를 세계가 주목하다


이 파키스탄 소녀를 세계가 주목하다

탈레반의 여성 교육권 박탈에 반대해 연설회를 여는 등 인권운동을 해온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파키스탄에서는 말들이 많다.
  조회수 : 21,404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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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승인 2014.10.24  08:24:05
2012년 10월9일 오후,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의 도시 밍고라. 10대 초반 소녀들로 가득 찬 스쿨버스가 잠시 정차한 사이 총기로 무장한 괴한이 올라왔다. “누가 말랄라지?” 학생들은 얼떨결에 한 소녀를 가리켰다. 순간, 괴한은 소녀를 권총으로 저격하고 도주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말랄라 유사프자이(17). 지난 10월10일 발표된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다(공동 수상자는 인도의 아동권익 운동가 카일라슈 사티아르티).

당시 15세였던 말랄라는 머리와 목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다. 파키스탄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영국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져 수차례 위험한 뇌 수술을 받은 끝에 목숨을 건졌다.

어린 나이의 말랄라가 이처럼 총격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탈레반의 ‘여성 교육 금지’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말랄라가 살던 스와트밸리가 탈레반에 점령당한 것은 2007년이다. 스와트밸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160㎞쯤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어긋나는 서방 문화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기관들을 폐쇄하거나 혹은 폭파해버렸다. 특히 ‘여성의 교육권’을 전면 부정했다. 여학교를 공격해서 학생들을 몰아내고 ‘소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처단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발표했다. 여성들은 쇼핑은 물론 텔레비전과 음악 청취까지 금지당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17세 소녀 말랄라가 10월10일 영국 버밍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AFP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17세 소녀 말랄라가 10월10일 영국 버밍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말랄라는 2009년 초부터 가명으로 ‘소녀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영국 BBC 방송 블로그(파키스탄어 버전)에 올렸다. 일종의 ‘지하 통신’이었다. 어른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위험한 일을 소녀가 대신한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군이 탈레반을 스와트밸리에서 몰아낸 2009년 5월 이후 말랄라는 탈레반의 여성 교육권 박탈에 대해 공개적으로 연설회를 여는 한편 ‘가난한 소녀 학교 보내기’ 등 어린이 인권운동을 전개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탈레반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말랄라를 공격한 괴한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TP)’ 소속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말랄라는 현재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다.

이런 말랄라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자 세계는 소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말랄라는 파키스탄의 자랑이다. 세계의 소년 소녀들은 그녀의 투쟁과 희생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니사르 알리 칸 내무장관 등 정부 인사와 샤리프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는 야당 지도자 임란 칸도 말랄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축사를 보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의 한 학교에서 소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AFP
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의 한 학교에서 소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탈레반은 말랄라 수상에 반발하며 ‘살해’ 위협 


그러나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혐오스러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다시 주목받게 된 탈레반들은 크게 반발했다. ‘TTP 자마툴 아흐랄(TTP의 강경 분파)’은 수상자 발표 다음 날인 10월11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다시 말랄라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말랄라는 총과 무력에 반대하는 주장을 많이 한다. 그러나 노벨상을 만든 사람(알프레드 노벨)이 폭발물의 창시자라는 것은 모른단 말인가? …말랄라 같은 자들은 ‘우리가 (서방의) 선전 때문에 목표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슬람의 적들을 겨냥해 날카롭고 빛나는 칼을 준비해두었다.”

탈레반만 말랄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파키스탄 언론들도 그렇다. 세계적으로 대다수 언론들은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속보로 긴급 타전했다. 파키스탄 언론만 예외였다. <파키스탄 옵서버>의 타리크 카타크 편집장은 “말랄라는 평범하고 쓸모없는 소녀로, 서구 문화의 판매원 같다”라고 비하했다.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의 지역 신문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은 단신으로 처리되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말랄라의 자서전 <나는 말랄라> 역시 푸대접을 받는다. 이 책은, 파키스탄 사립학교 연합에 소속된 4만여 교육기관에서는 금서다. ‘이슬람을 존중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모론도 무성하다. ‘서방세계가 서구적 가치관으로 이슬람 세계를 해체하기 위해 말랄라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파키스탄 청년 수백명이 ‘말랄라 드라마(#MalalaDrama)’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퍼트리고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파키스탄인들이 자국인의 노벨상 수상을 고깝게 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사실 한국에서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발하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았다). 파키스탄인들의 ‘반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뿌리 깊은 반서구·반미 감정이다.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펼치는 가운데 파키스탄 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 나라 영토로 병력을 투입한 바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을 무인기로 공습해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했다. 파키스탄 유력 일간지 <더 뉴스> 기자 모하마드는 “파키스탄 국민들의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사건이었다. 파키스탄인들은 대개 탈레반을 싫어하지만, 미국에 대한 반감이 훨씬 강하다. 말랄라 역시 미국의 꼭두각시쯤으로 여기는 파키스탄인이 많다”라고 말했다.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 밍고라의 주민들은 그녀의 수상 소식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일 노점상을 하는 하크울라 씨(45)는 “말랄라는 우리 집 딸들에 비해 행운아다. 내 딸들은 탈레반 때문에 학교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비비 유시프자이(17)는 “말랄라가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준 것이 고맙다”라며 기뻐했다. 밍고라 시내 중심가에서 식당을 하는 압둘 굴 씨(39)는 “말랄라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영국 사람으로 살 것 같다. 그러나 말랄라 덕분에 스와트밸리가 세계에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여론이 둘로 갈린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 


압둘 굴 씨가 스와트밸리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떨치고 싶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와트밸리는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한때 파키스탄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졌던 지역이다. ‘파키스탄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관광산업으로 먹고살았다. 그러나 2007년 탈레반이 스와트밸리를 장악한 이래 관광수입은 끊기고 말았다. 정부군이 수복한 2009년 5월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 정부는 스와트밸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지역 축제를 거행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이 지역에 대한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스와트밸리 산자락 곳곳에 진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TTP는 지금도 말랄라에게 보복하겠다고 벼른다. 지역 주민 중 일부도 말랄라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2012년 지역사회 일각에서 밍고라 대학의 이름을 ‘말랄라 대학’으로 바꾸자는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이 운동은 학생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학생들은 새로운 교명(말랄라 대학)이 새겨진 명판과 통학 버스를 파괴하고 말랄라의 사진을 찢으며 수업을 거부했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말랄라는 세계 여성 교육권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파키스탄으로 귀국해서 조국 여성들의 교육권 회복을 위해 싸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