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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연합뉴스] 3차 석유전쟁, 벼랑 끝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3차 석유전쟁, 벼랑 끝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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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석유전쟁의 포성이 울리고 있다.
개전국은 1·2차 전쟁처럼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다. 앞서의 전쟁에서처럼 사우디가 승전국, 패전국은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 등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석유전쟁의 배후 연출자인 미국은 물론 이런 시나리오를 원하겠지만….
서부 텍사스 중질유 11월 인도분은 지난 16일 하루 만에 배럴당 1.03달러가 떨어져, 2년 만에 최저인 80.75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는 82.91달러로 4년 만에 최저다. 유가는 최근 3개월 동안 무려 25% 가까이 하락했다. 배럴당 80달러 선 붕괴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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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것은 사우디의 태도다. 사우디는 10월 초 자신들의 시장지분을 지키기 위해 판매가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증산을 의미한다. 실제로 사우디는 지난 9월 산유량을 하루 10만배럴씩 늘렸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오펙) 회원국 베네수엘라가 유가 하락에 대응하는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했으나, 사우디와 이란에 이어 이라크까지 원유 판매가를 낮추는 대열에 동참했다. 오펙 회원국의 9월 하루 산유량은 전달 대비 40만배럴 늘었다.
사우디는 현재 불황 국면에서 산유량 감축으로 유가를 떠받칠 경우, 자신들의 판매량과 시장지분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다. 이는 국가 운영에 사활적인 석유수입 감소로 연결된다. 사우디 관리들은 최근 뉴욕의 석유시장 관계자들에게 저유가 시대를 감내할 준비가 됐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는 명백히 ‘3차 석유전쟁’ 선전포고다.
사우디는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석유전쟁을 주도하며 항상 승자로 군림해왔다. 1차 전쟁은 1974년 이스라엘-아랍 국가의 4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됐다.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사우디 등 아랍 산유국들은 미국에 석유금수를 선언했다. 석유값은 3달러에서 무려 4배인 12달러로 급등하며 오일쇼크를 일으켰다. 이는 2014년 초 달러 가치 기준으로는 60달러 수준이다.
1차전쟁은 사실 저유가에 대한 반동이었다. 1970년을 전후해 달러-금 태환 정지 등으로 전후 세계 경제체제인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했다. 달러 가치가 폭락하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됐으나, 석유값만 3달러 내외로 고정돼 있었다. ‘세븐 시스터스’라 불린 7대 석유 메이저들의 가격 지배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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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이후 국제 원유가격 변화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1차전쟁은 유가 인상 전쟁이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으로 촉발된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1981년까지 진행됐다. 1980년의 평균 국제유가는 현재 기준으로 10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여기서 최대 승자는 사우디였고, 최대 희생자는 이란의 팔레비 독재정권이었다. 1차전쟁 기간 중인 1977년 전후로 유가는 일시적으로 절반까지 떨어졌다. 고유가에 취해 있던 팔레비 정권은 막대한 재정적자에 휩싸였고, 이로 인한 경제불안은 이란 이슬람혁명의 배경이 됐다.
미국 등 서방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패전국은 아니었다. 오일달러가 미국 등으로 되돌아왔다.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은 고유가를 동력 삼아 북해유전 등을 개발해 산유국으로 등장했다. 특히 북해유전 개발 등은 2차 석유전쟁의 불씨를 던졌다. 1981년부터 유가가 속절없이 떨어지자, 사우디 등 오펙 회원국들은 산유량 감축으로 유가를 떠받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특히 사우디는 1980년 하루 1000만배럴 이상 되던 산유량을 1985~86년에는 250만배럴 이하까지 줄였다. 그럼에도 유가는 1986년 10달러(2014년 1월 기준 30달러)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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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겪게 된 사우디는 1986년 들어 2차 석유전쟁을 개전했다. 산유량을 200만배럴에서 1000만배럴로 극적으로 늘렸다. 이는 1998년까지의 기록적인 저유가 시대를 열었다. 석유가는 배럴당 10~20달러(2014년 1월 달러 가치로는 20~40달러)에서 움직였다. 최대 패전국은 소련이었다. 소련의 계획경제는 석유 수출 수입의 급감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는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됐다. 2차전쟁은 사실 미국의 연출이었다. 당시 대소 강경노선을 펼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사우디와 협력해 저유가 시대를 지속시켰다.
이제 막을 올린 3차 석유전쟁도 2차 전쟁 때와 유사하다. 유가 인하 전쟁이다. 이번에는 2차전쟁 때보다도 미국의 입김이 더 느껴진다. 현재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가 가장 큰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유가 상승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프라우다>는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가 러시아 경제를 파괴하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도 이번 사태를 ‘펌프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누가 더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석유를 파내느냐는 ‘치킨게임’이라는 뜻이다.
The Saudis Dont Mind Low Oil Prices - CNBC
At Issue: The politics of a lower price of oil - The National (CBC)
Here's Why Oil Futures Have Fallen to a Two-Year Low - Bloomberg
Is OPEC Falling Apart? - WSJ

[시사인] 이 파키스탄 소녀를 세계가 주목하다


이 파키스탄 소녀를 세계가 주목하다

탈레반의 여성 교육권 박탈에 반대해 연설회를 여는 등 인권운동을 해온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파키스탄에서는 말들이 많다.
  조회수 : 21,404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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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승인 2014.10.24  08:24:05
2012년 10월9일 오후,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의 도시 밍고라. 10대 초반 소녀들로 가득 찬 스쿨버스가 잠시 정차한 사이 총기로 무장한 괴한이 올라왔다. “누가 말랄라지?” 학생들은 얼떨결에 한 소녀를 가리켰다. 순간, 괴한은 소녀를 권총으로 저격하고 도주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말랄라 유사프자이(17). 지난 10월10일 발표된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다(공동 수상자는 인도의 아동권익 운동가 카일라슈 사티아르티).

당시 15세였던 말랄라는 머리와 목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다. 파키스탄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영국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져 수차례 위험한 뇌 수술을 받은 끝에 목숨을 건졌다.

어린 나이의 말랄라가 이처럼 총격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탈레반의 ‘여성 교육 금지’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말랄라가 살던 스와트밸리가 탈레반에 점령당한 것은 2007년이다. 스와트밸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160㎞쯤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어긋나는 서방 문화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기관들을 폐쇄하거나 혹은 폭파해버렸다. 특히 ‘여성의 교육권’을 전면 부정했다. 여학교를 공격해서 학생들을 몰아내고 ‘소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처단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발표했다. 여성들은 쇼핑은 물론 텔레비전과 음악 청취까지 금지당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17세 소녀 말랄라가 10월10일 영국 버밍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AFP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17세 소녀 말랄라가 10월10일 영국 버밍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말랄라는 2009년 초부터 가명으로 ‘소녀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영국 BBC 방송 블로그(파키스탄어 버전)에 올렸다. 일종의 ‘지하 통신’이었다. 어른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위험한 일을 소녀가 대신한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군이 탈레반을 스와트밸리에서 몰아낸 2009년 5월 이후 말랄라는 탈레반의 여성 교육권 박탈에 대해 공개적으로 연설회를 여는 한편 ‘가난한 소녀 학교 보내기’ 등 어린이 인권운동을 전개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탈레반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말랄라를 공격한 괴한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TP)’ 소속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말랄라는 현재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다.

이런 말랄라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자 세계는 소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말랄라는 파키스탄의 자랑이다. 세계의 소년 소녀들은 그녀의 투쟁과 희생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니사르 알리 칸 내무장관 등 정부 인사와 샤리프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는 야당 지도자 임란 칸도 말랄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축사를 보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의 한 학교에서 소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AFP
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의 한 학교에서 소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탈레반은 말랄라 수상에 반발하며 ‘살해’ 위협 


그러나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혐오스러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다시 주목받게 된 탈레반들은 크게 반발했다. ‘TTP 자마툴 아흐랄(TTP의 강경 분파)’은 수상자 발표 다음 날인 10월11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다시 말랄라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말랄라는 총과 무력에 반대하는 주장을 많이 한다. 그러나 노벨상을 만든 사람(알프레드 노벨)이 폭발물의 창시자라는 것은 모른단 말인가? …말랄라 같은 자들은 ‘우리가 (서방의) 선전 때문에 목표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슬람의 적들을 겨냥해 날카롭고 빛나는 칼을 준비해두었다.”

탈레반만 말랄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파키스탄 언론들도 그렇다. 세계적으로 대다수 언론들은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속보로 긴급 타전했다. 파키스탄 언론만 예외였다. <파키스탄 옵서버>의 타리크 카타크 편집장은 “말랄라는 평범하고 쓸모없는 소녀로, 서구 문화의 판매원 같다”라고 비하했다.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의 지역 신문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은 단신으로 처리되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말랄라의 자서전 <나는 말랄라> 역시 푸대접을 받는다. 이 책은, 파키스탄 사립학교 연합에 소속된 4만여 교육기관에서는 금서다. ‘이슬람을 존중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모론도 무성하다. ‘서방세계가 서구적 가치관으로 이슬람 세계를 해체하기 위해 말랄라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파키스탄 청년 수백명이 ‘말랄라 드라마(#MalalaDrama)’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퍼트리고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파키스탄인들이 자국인의 노벨상 수상을 고깝게 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사실 한국에서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발하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았다). 파키스탄인들의 ‘반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뿌리 깊은 반서구·반미 감정이다.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펼치는 가운데 파키스탄 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 나라 영토로 병력을 투입한 바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을 무인기로 공습해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했다. 파키스탄 유력 일간지 <더 뉴스> 기자 모하마드는 “파키스탄 국민들의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사건이었다. 파키스탄인들은 대개 탈레반을 싫어하지만, 미국에 대한 반감이 훨씬 강하다. 말랄라 역시 미국의 꼭두각시쯤으로 여기는 파키스탄인이 많다”라고 말했다.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 밍고라의 주민들은 그녀의 수상 소식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일 노점상을 하는 하크울라 씨(45)는 “말랄라는 우리 집 딸들에 비해 행운아다. 내 딸들은 탈레반 때문에 학교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비비 유시프자이(17)는 “말랄라가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준 것이 고맙다”라며 기뻐했다. 밍고라 시내 중심가에서 식당을 하는 압둘 굴 씨(39)는 “말랄라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영국 사람으로 살 것 같다. 그러나 말랄라 덕분에 스와트밸리가 세계에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여론이 둘로 갈린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 


압둘 굴 씨가 스와트밸리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떨치고 싶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와트밸리는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한때 파키스탄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졌던 지역이다. ‘파키스탄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관광산업으로 먹고살았다. 그러나 2007년 탈레반이 스와트밸리를 장악한 이래 관광수입은 끊기고 말았다. 정부군이 수복한 2009년 5월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 정부는 스와트밸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지역 축제를 거행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이 지역에 대한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스와트밸리 산자락 곳곳에 진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TTP는 지금도 말랄라에게 보복하겠다고 벼른다. 지역 주민 중 일부도 말랄라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2012년 지역사회 일각에서 밍고라 대학의 이름을 ‘말랄라 대학’으로 바꾸자는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이 운동은 학생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학생들은 새로운 교명(말랄라 대학)이 새겨진 명판과 통학 버스를 파괴하고 말랄라의 사진을 찢으며 수업을 거부했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말랄라는 세계 여성 교육권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파키스탄으로 귀국해서 조국 여성들의 교육권 회복을 위해 싸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조선일보] 3차대전 보고서 "미국 중국과 싸울 가능성 가장 커"

국제
종합

美, 3차大戰 보고서… "中과 싸울 가능성 가장 커"

  • 워싱턴=윤정호 특파원
  • 입력 : 2014.10.17 03:03 | 수정 : 2014.10.17 10:43

    "러·이란·北과도 갈등 조짐… 우주·사이버戰까지 준비해야"

    미 육군이 미래에 충돌할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러시아·이란·북한 등과도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고 봤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제3차 세계대전 청사진'이라고 보도했다.

    미 육군은 최근 발표한 '육군 작전 개념(AOC): 복잡한 세계에서 승리하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래 갈등 조짐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중국·러시아는 '경쟁 관계 패권국', 이란·북한은 '국지적 강국'으로 꼽았고, 수니파 이슬람 무장세력인 IS 같은 테러 집단(초국가적 테러 집단)과 중남미 마약 카르텔(초국가적 범죄 집단) 등도 위협군으로 분류했다.
    
 미 육군이 본 세계대전 위험 요소 지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꼽은 중국에 대해 미 육군은 "중국이 한시적이고 강도 높은 역내(域內)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포괄적인 군사 현대화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며 "일본과의 영토 분쟁, 인도와의 국경 갈등, 필리핀 대만 등에 대한 해양 압박 등을 통해 패권국임을 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우주와 사이버공간에서 미국을 무력화하려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에 대해 미국은 전형적인 군사모험주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군사모험주의란, 전쟁에서 객관적 조건이나 근거를 무시하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경향을 뜻한다.

    '지역 강국'으로 꼽은 이란은 이슬람 세력 내 종파 갈등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미 육군은 분석했다.

    미 육군은 북한을 "군사적 위협국이긴 하지만, 중국의 후원에 의존해 살아가는 실패한 국가"라고 규정했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능력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재래식 군사력도 상당한 위협 요소라고 봤다.

    또 미 육군은 "북한은 주요 시설과 무기 등을 지하에 감춰놓고 있다"며 "사이버전과 생화학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동맹인 한국군과 함께 모든 분야에서 대응할 수 있는 총력전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TV조선 화면 캡처
     TV조선 화면 캡처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