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을 보살펴온 외국인 수녀 두 명이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섬을 떠난다. 두 수녀가 소록도에 머문 기간은 43년이었다. 소록도 주민들은 수녀들이 떠난 뒤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성당과 치료소에 모여 오랫동안 두 수녀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고 한다.
평생 소록도에 나병환자들과 함께해온 그들의 이름은 마리안네 스퇴거(71)와 마가레트 피사렉(70). 처음 소록도에 도착한 것이 마리안네 수녀 1962년, 마가레트 수녀 1966년이었다. 20대의 꽃다운 나이었던 그들은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그리스도왕의 수녀회'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한센병 환자촌인 소록도에서 봉사자를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했다. 이윽고 아시아의 작은 나라, 버림받은 작은 섬에 도착한 그들은 평생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직감하고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의 소식을 여러 번 고향집에 전했다고 한다. 그들은 소록도에서의 삶을 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았던 그들이 어느날 새벽 아무도 모르게 소록도를 떠난 이유는 "너무 늙어 더 이상 환자들을 잘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주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제목의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빕니다."
떠나기 전부터 소록도 주민들에게 이별을 암시해온 그들은 평소 요란한 환송행사가 주민들에게 누가 될까, 괜스레 언론에 알려져 시끄러워질까 염려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일생을 건 헌신과 봉사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한국정부도 그들에게 1972년 국민포창, 1996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바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가 훈장을 서훈했을 때는 완강한 수상 거부로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 전해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1960년대 당시 6,000여 명이 넘는 나병환자들과 그 가족들로 가득했던 소록도는 같은 나라 사람들조차 접근을 꺼리던 곳이었다. 국가적 지원이나 사회적 보살핌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타국에서 기꺼이 달려온 두 수녀는 이후 평생을 '마리안네 & 마가레트'라는 표찰이 붙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소록도의 환자들을 성심으로 보살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상처를 치료하고 마을일이라면 항상 앞장서는 등 주민들의 삶을 돕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전라도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두 수녀를 주민들은 '할매'라고 부르며 가족같이 여겼다고 한다.
떠날 때 그들의 두 손에는 40여 년 전 섬에 들어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하나씩만 들려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현재 고향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머물고 있으며, 얼마 전 소록도 앞바다의 그곳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조용히 삶의 끝자락을 매만지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왔다고 한다.
<지식e season4>, 북하우스, p15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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