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f. 라디오 주파수 잡는 소리, 불어 방송 말소리.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라디오를 켠다.
새로운 세상과 접속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순간이다.
치지직 치지직...
이야기가 들려온다. 프랑스어다.
아, 여긴 불어를 쓰는 곳이었지.
그리고 이내 음악이 이어진다.
재즈다.
M. Angel Eyes - Chet Baker
반복되는 일상...
지쳤다.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고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
그리고 음악을 찾아 떠난 곳
여기는 몬트리올이다.
M. Sun In Montreal - Pat Metheny
2010년 6월 26일
축제의 도시 몬트리올.
여름엔 재즈의 도시가 된다.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도심으로 들어선다.
처음 온 곳이지만 굳이 지도를 살피거나 길을 물을 필요는 없다.
사람들의 물결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음악을 찾아 흘러가는 사람들의 움직임..
발걸음을 옮길수록 설렘이 커져간다.
멀리서 조금씩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음악이 나를 반길까?
무엇이 이 페스티벌의 첫인상이 될까?
신나는 스윙? 웅장한 빅밴드? 세련된 트리오?
그런데...
아, 뭐지 이 음울한 기타 소리는?
허를 찔린 기분이다.
이건... 블루스다.
M. 이름 모를 블루스 밴드의 연주
블루스가 나를 처음 맞아준 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낯선 도시의 외로운 공기에 압도당해
도착한 이래 지금까지 조금은 계속
슬펐으니까...
M. My Melancholy Baby - Ella Fitzgerald
2010년 6월 27일
소리 롤린즈의 공연..
살아있는 전설의 연주다.
살아있는 전설의 다른 말은 죽어가는 전설이다.
그가 즐겨 입는 붉은 셔츠는 그의 식지 않은 정열을 증명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의 늙은 육체를 도드라지게 한다.
모든 사그라져가는 존재의 뒷모습은 슬프다.
그 존재의 위대함이 크면 클수록 서글픔도 배가 된다.
전설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지도 모르는 연주.
한 음, 한 음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뭉클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M. My One And Only Love - Sony Rollins
같은 날,
공연 리스트 중에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나윤선.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런 낯선 곳에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M. 아리랑 - 나윤선
낯선 하늘아래 조용히 울려 퍼진 아리랑.
그녀도 울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울었다.
2010년 6월 28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대낮부터 사람들은 거리 여기저기에 걸터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붙잡는 것보다 흘려보내는데 도가 튼 사람들 같다.
그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내 브라스와 드러머와 무희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마칭 밴드다.
M. 마칭 밴드의 연주
반복된 리듬, 요란한 의상, 과장된 몸짓
그들의 연주에 맞춰 따라 걷고 춤춘다.
‘한’보다 ‘흥’이야말로 코스모폴리탄의 공용어인가?
나도 모르게 웃고 만다.
M. River Man - Brad Mehldau
2010년 6월 29일
차를 몰아 세인트로렌스 강을 건넌다.
광활한 넓이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에 압도당하다.
암청색 하늘
먼 하늘엔 저녁놀
낮게 떠있는 구름
모습을 드러내는 몬트리올의 스카이라인...
낯선 곳을 동경했지만 내 눈은 나도 모르게
익숙한 것들과의 닮은 점을 찾고 있다.
한강을 떠올리고 서울의 야경을 그리워한다.
몬트리올은 섬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그 섬에 가고 싶다던 늙은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Eff. 천둥번개와 소나기
2010년 6월 30일
예고 없이 내린 비에 온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갈 곳 잃은 당황한 마음도 함께 젖어버렸다.
어느 골목에선가 흘러나오는 처연한 색소폰 소리만이
눅눅해진 마음을 다독인다.
M. Common Threads - Bobby McFerrin
같은 날, 바비 맥퍼린의 공연.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원초적인 소리의 향연.
소외감이 해소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벽을 무력화시키는 음악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다.
M. I Can See Clearly Now - Bobby McFerrin
공연 중 비가 그친 걸 안 걸가?
예상치 못한 선곡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온 뒤 갠 하늘같은 가사를 따라 읊조려 본다.
저마다 아는 대로 함께 따라 부른다.
It's gonna be bright,
bright sun shining day
주문 같은 노래다.
날씨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다.
M. Bon Voyage / Toy+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전화연결 Cut
2010년 7월 1일
반가운 목소리의 DJ와 방송을 위한 전화연결.
먼 이국에서 친숙한 목소리와 우리 노래를 듣는 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
여기 우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언제든 돌아오기만 하면 돼.“라고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이말로 bon voyage...
Eff. 불꽃놀이와 환호성
7월 1일은 캐나다의 국경일 Canada day다.
재즈와 불꽃놀이라니... 극단적으로 축제적인 조합이다.
폭죽이 터질 때의 찰나의 아름다움보다는
사그라지는 불꽃의 여운에 더 눈이 간다.
행복한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쓸쓸히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 결국 이 축제는 이 사람들의 축제다.
난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M. Manha De Carnival - Luiz Bonfa
2010년 7월 2일 아침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거리의 한 노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파니니와 간소한 샐러드, 카푸치노...
그리고 들려오는 음악이 있으니 이 정도면 호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혼자 먹는 아침은 그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M. My Song - Keith Jarret
2010년 7월 3일
키스 자렛, 게리 피콕, 잭 디조넷.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완벽한 트리오의 연주.
천상에서 바로 가져 내려온 듯한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취했다.
모든 상처와 피로를 치유 받는 느낌.
이 연주를 듣기 위해 이 먼 곳까지 날아왔구나...
이젠 돌아가도 괜찮겠어.
M. When I Fall In Love - Keith Jarret Trio
Eff. 백화점내 공연장 소음
2010년 7월 4일
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들렸다.
건물 내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재즈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귀여운 복장을 한 연주자들이 흥겹게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페스티벌의 상징인 고양이 탈과 의상을 뒤집어쓴 캐릭터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아이들이 연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스꽝스런 몸짓과
익살스런 대사와 연기를 섞어 귀에 익숙한 스탠더드넘버들을 들려준다.
아이들은 호기심어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주에 귀 기울인다.
깔깔대며 박수를 친다. 자연스럽게 재즈와 친해진다.
이십 년 뒤쯤엔 이 아이들이 페스티벌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ff. 라디오 주파수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 C'est Si Bon
짐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한 도시와의 이별은 역시 라디오로 마무리한다.
c'est si bon.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이 도시의 축복의 송가라고 생각해본다.
그래... 모든 것이 이 노래만 같기를.
여행도, 음악도, 우리의 인생도...
안녕, 몬트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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