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4일 월요일

[프론트 매거진] 2011년 5월호 포토그래퍼 김수린




FR : 김수린에게 ‘사진을 찍는다’ 의 의미는?

‘사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렸을 때 좋아했던 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사진과 내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이다.


FR : 남들보다 일찍 꿈을 이룬 듯하다. 정말 ‘포토그래퍼’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어린 나이부터 잡지에 내 사진이 실렸고, 내 이름으로 책도 출판했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사진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진으로서 나 김수린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고 느꼈다. 나 자신을 ‘작가’라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내 첫 개인전을 모두 마치고 나서였다. 하나의 묶음으로 나란 사람의 일부를 정리해 사진으로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던 순간부터.


FR : 어렸을 적부터 사진/미술 쪽에 재능이 있다고 들었다. 그 재능이 자연스레 발현된 것인가? 어떻게 해서 ‘포토그래퍼’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걸 가장 좋아했고, ‘카메라’라는 걸 이해하는 나이가 되고 카메라를 처음 접하고 논 순간부터는 꿈이 단 한 순간도 바뀐 적이 없다. 우습지만 8살 , 9살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필름을 하루에 6-7통씩 그 자리에서 찍고 놀던 그때가 가장 사진을 겁 없이 많이 찍었던 것 같다. 식상하지만 어렸을 때 가족 중에도 아티스트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었지만, 엄마는 단 한 순간도 내가 가진 꿈에 대해서 왈가왈부한적이 없었다. 여전히 내가 ‘나 이거 할거야’ 하면 그냥 그 어떤 대꾸도 없이 네가 알아서 하렴. 하신다.


FR : 현재의 김수린이 있기까지는 다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들이댐’에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이댐을 대단히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김수린은 어떻게 용감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책을 보면 내가 봐도 나는 참 겁이 없었구나 싶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인데, 사실 나는 굉장히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다 밖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임이 없는 성격을 가진 건 분명하다. 삶을 살아가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을 뿐, 그게 엄청난 용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FR : 타지에서 생활한지 정말 오래 됐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가? 끼친다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중학교 2학년이 시작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는데 굉장히 한국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종종 한국에 나오면 사람들은 내게 ‘외국에서 오셨나봐요’ 라고 물었다. 미국에서 지내면 그 곳에 자연스럽게 융화되기는 하지만, 나 자신은 분명 내가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아직도 갖고 있다고 느낀다. 정체성이 작품에 영향을 끼치느냐고? 내 작품 전체를 ‘정체성’이라는 단어로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내 작품은 내 정체성을 비롯한 모든 생각과 철학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FR : 미국에서 유학하며 겪은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인가?

매 끼니 해결하는 것. 그리고 외로움이 아닐까. 익숙해지는 것 같았는데, 내 생각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이상 내가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해도 ‘타지’라는 단어를 떨쳐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요리하는걸 좋아하는데 삼시 세끼를 나 혼자 먹자고 매번 요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FR : ‘아티스트’에게, 뉴욕은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20대 여자’에게 뉴욕은 가십걸의 배경처럼 화려하고 템포가 빠르다. ‘아티스트’ 김수린에게 뉴욕과, ‘20대 여자’ 김수린에게 뉴욕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이다. 뉴욕은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면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너무나 바쁜 곳이니까. 아티스트에게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다기 보다는, 현대미술을 논하고 접하기에 빠른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사람들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들이 모두 뉴욕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뉴욕은 굉장히 치열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게 뉴욕은 포근하고 따뜻한 도시라기보다는 ‘단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곳에선 몸이 쉬고 싶어도 맘대로 쉬어지지도 않는 것 같다.


FR : 작품에서 주로 인물사진을 다루는데, 인물사진을 찍는 특별한 이유는?

매번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사람’이라는 피사체가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꼭 인물사진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아닌 것도 많이 찍는다. 단지 하나의 시리즈로 가장 잘 조화되는 것들을 묶어 발표했던 내 시리즈에 인물이 들어간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FR : 첫 개인전의 주제를 ‘소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 개인전의 주제는 ‘경계’와 ‘채집’에 관한 것들 이었다. 그 시리즈의 대부분에 ‘소녀’들이 담겨있는 건, ‘소녀’ 그 자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그때의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소녀’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그때의 나는 ‘소녀’를 찍고, 그것들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FR : 예술이 말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 김수린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삶, 그리고 나아가 타인의 삶, 그리고 ‘삶’ 그 자체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그 어떠한 슬픔이나 상처, 혹은 흔적이나 자국 같은 것들이 남지 않는다면, 예술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시인 휘덜린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정말 절망이 있는 곳에 구원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내 ‘삶’ 자체는 긍정적일지라도 내가 내 사진으로 이야기했던, 하고 싶은 것들이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이고 안전한 그런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축축하고 비관적인 삶의 상처나, 어둠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가장 간단한 한가지 단어로 요약하자면, ‘호기심’이다. 아마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제 속의 자유, 그 안에서 내 호기심을 최대한 극대화 시켜 나타내는 것이다.


FR : 현재 최범석 디자이너와 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관해 소개해달라.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재능으로 환경이 안 좋은 어린이들을 돕는 개념의 프로젝트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내 작품을 이용해 티셔츠를 디자인했다. 티셔츠를 사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우물을 만들어줄 수 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FR : 사진 찍는 것 외에 가장 좋아하는 일(취미)는?

책, 영화. 글 쓰는 것, 책 읽고 영화보고 글 쓰는 것은 하루의 일과와 같다. 그리고 고기 먹으러 갈 때? 아, 아이폰에 어플을 다운 받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 하하




FR : 다른 예술영역에 대한 문화적 경험이 작품을 만들 때 도움이 되는가?

물론이다. 보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것들이 작품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풀어나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고도 볼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 편인데, 뜬금없는 문장이나 어떠한 단어 하나가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의 시작이 될 때가 많다. 물론 내가 영감을 얻는 부분은 결국에는 내가 늘 생각하는 것들과 어떠한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


FR : 인생에서 가장 벅차게 행복했던 순간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내 개인전이 만족스럽게 끝났을 때, <청춘을 찍는 뉴요커>가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는 아닌 것 같다. 그건 너무나 짧은 보람과 성취감일 뿐, 내게 벅차게 행복했던 순간은 아니었다. 여름에 가족들과 바닷가에서 불꽃놀이하고 고기를 구워먹고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웃다 지쳐 잠들던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와 가장 빨리 매치된다.


FR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슬프지만 딱히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별로 없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거나, 제일 친한 친구들과 좋아하는 고기를 먹으며 푸념하는 게 전부다.


FR : 한국에는 얼마나 자주 오는가? 자주 들르는 곳은? ‘20대’ 김수린이 친구들과 만나서 주로 하는 얘기는?

일년에 두 번 정도. 교보문고를 제일 좋아한다. 딱히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사람들이 술을 별로 안 마셔서 술을 마시는 자리는 자주 없다. 하는 얘기들은 뭐 똑같다. 해도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인생얘기?


FR : 이상형은?

주변 친구들은 내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감을 못 잡겠다고 한다. 외적인 부분에선 그럴 수 있지만, 내 생각에 나는 지혜로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할 때 그가 아는 것이 많고, 세상 모든 것들에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대화가 잘 통하고 성실한 사람이면 좋겠다. 물론 거기다 얼굴까지 잘생기면 금상첨화겠지..
  

FR : 쇼핑은 자주 하는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쇼핑은 자주 안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proenza schouler Jack과 Lazaro.. 처음 데뷔 했을 때부터 좋아했다.
  

FR : 가지고 있는 모든 액세서리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그런 게 없다. 난 딱히 아끼는 물건 같은 게 젼혀 없다. 좀 웃기긴 하지만 나는 내 물건도 항상 내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끼는 것도 잃어버릴 수 있고 없어질 수 있고, 또 더 아끼는 새로운 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FR : 청춘은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30살 이전에 나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결혼은 누구랑 몇 살 때 쯤 하게 될까. 그런 고민해도 답이 없는 고민들?


FR : 20대의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말은?

꿈이란 건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누구나 꿈꾸고 이룰 수 있다. 얼마나 큰 꿈인지, 작은 꿈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꿈꾸는 자’는 누구나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하는 그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단지 그 기회가 언제 주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청춘, 그 막막함과 불안함의 표본 아닐까. 힘들 때 마다 나는 떠올린다. 누구나 다, 이렇게 산다. 하고.


FR : 김수린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전 이후로 새로운 시리즈를 계속해서 찍고 있다.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그 시리즈를 멋지게 완성 시키는 것이 가장 가까운 시일 내의 목표이다.


FR : 인생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순간 순간 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늘 자랑스러운 ‘김수린’이 되는 것.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멋진 엄마, 아내가 되는 것.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는, 김수린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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