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0일 월요일

[아랑] 언론고시 준비 원칙

1년 반 동안의 언시 생활을 KBS 합격으로 끝마치게 됐습니다. 작년에 최종면접에서 몇 차례 떨어지는 바람에 좌절도 하고 마음고생도 했지만, 이렇게 유종의 미를 거두게 돼서 많이 기쁩니다. 언시를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짧게나마 글을 써봅니다.

1. 언시 준비의 기본원칙

언시 준비와 관련해서 제 나름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언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듣던 얘기가 3多, 그러니까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3多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3多는 필기통과나 실무를 대비한 '수단'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작정 책 읽고 영화 보면서 언시 준비한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노파심에 적습니다.

둘째, 아무리 많은 글을 썼더라도 '리라이팅'을 하지 않으면 시간낭비다. 필기를 통과하는 가장 빠른 길은 많은 글을 쓰되 철저히 리라이팅을 해서 여러 편의 완성본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1년 반 동안 언시를 준비하면서 논술과 작문을 합쳐서 100편이 넘는 완성본을 만들었습니다. 스터디에서 글을 쓸 때는 1시간이 걸렸지만, 리라이팅을 하는 데는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터디에서 지적 받은 내용이나 부족한 내용을 철저히 보완해서 완성본을 만드십시오. 리라이팅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누구도 봐주지 않을 글을 완성하겠다고 몇 시간을 붙잡고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필기 준비의 처음과 끝이 리라이팅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위대한 글'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언시에서 필기시험을 통과하는 글들은, 비록 제가 평가자는 아니지만 경험에 비춰본다면, 대단한 글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단한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을 망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언시에서 쓰는 글은 고작해야 1200~1800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짧은 글에서는 애초에 위대한 글이 불가능합니다. 위대한 글보다는 '효율적인 글', '돋보이는 글'을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의미는 글의 분량에 맞는 수준의 논지와 논거를 채택하라는 뜻이고, 돋보이는 글이라는 의미는 글의 짜임새가 깔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무 고차원적이거나 색다른 논지는 다 논증하기도 전에 분량이 다 차기 쉽고, 너무 복잡한 글은 평가자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저널리즘 글쓰기는 위대한 글이 아닙니다. 

넷째, '양질전화의 법칙'을 믿어라. 물이 끓으면 수증기로 변하듯이 양적변화가 질적변화를 초래합니다. 글쓰기의 기본 법칙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규칙적으로, 많이 쓰십시오. 제 경우에는 일주일에 두 번은 논술과 작문을 각각 쓰고, 하루는 실무를 대비해서 기사쓰기를 했습니다. 각자 나름의 계획대로 스터디를 진행하면 되겠지만, 글쓰기는 규칙적이어야 합니다. 글이 안 써진다고 쉬지 말고 그럴수록 양질전화의 법칙을 믿고 글과 대면하시길 바랍니다.

다섯째, 형식이 내용을 좌우한다. 논술이든 작문이든 자기만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여기서 형식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글이 간명해보일 수 있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좋은 틀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 좋은 내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에는 특히 작문에서 그러했습니다. 아래에서 차차 더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제가 필기시험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2. 필기시험 준비

1) 논술

논술은 언시 전형에서 가장 정직한 분야입니다. 한 만큼 나옵니다. 논술을 쓰면서 명심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논제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고 쓰는 논술은 시간 낭비다. ▲논술을 썼더라도 '리라이팅'을 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시간낭비다. 이를 꼭 명심하시고 시간낭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시험을 보기 일주일 전부터는 리라이팅을 한 완성본만을 반복해서 외웁니다. 특히, 완성본을 주제별로 분류해 놓으면 글의 내용을 '연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논제가 확정되면, ▲논제와 관련된 종합일간지나 경제지의 기사를 검색합니다. 기사검색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논제와 관련한 우리사회의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섭니다. 생뚱맞은 글을 쓰지 않기 바랍니다. 둘째는, 내 논지를 뒷받침해줄 논거가 되는 '팩트'를 찾기 위해섭니다. 통계나 외국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셋째는, 칼럼을 읽으면서 논제와 관련한 칼럼니스트의 독창적 시각을 찾기 위해섭니다. 만약 주제가 '애국심을 논하라'이면 '공화주의적 애국심'이라는 시각을 제시하는 필자가 나오기 마련이고, 자신이 그것을 몰랐다고 할지라도 내 논지로 이를 차용할 수 있습니다. ▲기사검색이 끝난 뒤에는, 논문(학위논문이 아니라 학회지에 실리는 논문)을 찾는 게 좋다고 봅니다. 기사검색의 한계는 평가자의 "뇌를 깨울 수 있는"(김창석 선생님이 자주 언급하시는) 색다른 내용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남과 다른 주장을 하거나, 남과 달리 깊이 있는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시간을 투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논문은 20~30페이지 안팎인데다, 주제를 좁게 한정해서 다루고 있어 원하는 내용만을 뽑아내는 데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학교에서 RISS에 접속해서 논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이렇게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공부는 어디까지는 돋보이는 글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공부 자체에 빠져서 깊게만 들어가거나 공부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써먹을 지'를 꼭 염두해 두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은 '조직'입니다. 간명한 구성일수록 좋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몇 가지 형식을 가지고 논제에 접근하면 글을 조직하기 훨씬 수월해집니다.

2) 작문

다음은 작문 준비과정입니다.(저는 기자로 작문을 준비해서 피디 작문과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작문은 '생생한 경험'과 '독창적인 메시지'(말하려는 바)의 결합입니다. 여기서 어려운 점은 물론 독창적인 메시지, 또는 제시어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되겠지요.

혹자는 이를 두고 창의력은 선천적인 건데 어떻게 기르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본인이 창의적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얼마나 다른 사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훔쳐서 잘 축적하고 기억해두고 있느냐 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고 거기서 독특한 개념어나 이론, 사례, 메시지를 노트에 잘 정리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기록만 해놓고 뿌듯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텁니다. 예를 들어, <호모 루덴스>를 읽고 우리에게 놀이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이 메시지를 어떻게 작문으로 '구체화'할 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상기해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제 경험은 체육과 놀이를 중시하던 영국의 교육시스템이 되겠습니다. 경험과 더불어, 이 개념을 가지고 한국사회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합니다. 사실 작문을 구성하는 과정은 이렇게 말로만 풀어내기에는 복잡한 면이 많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메시지를 구체화하는 훈련입니다. 우리보다 창의적인 수많은 교양인들의 아이디어가 이미 책에 나와 있습니다. 이걸 자기 경험이나 한국사회 현실과 연결 지어 구체화 하고, 개요 정도의 수준으로 적어놨다가 적당한 제시어가 나오면 그 개요대로 써내려 가면 됩니다.

글을 독창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항상 '비틀어 보기'도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통념과 반대로 생각하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다문화(이번 동아일보)가 제시어라면 다문화에 관한 통념은 '다문화는 좋다, 다문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다문화 사회가 일종의 강박은 아닐까, 다른 문화를 존중해서 그냥 놔둔다는 게 어쩌면 무관심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문의 또 다른 요령은,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진짜 관심사여야 할 겁니다. 제 경우에는 그게 '교육'이여서 어떤 주제가 나와도 항상 교육과 연관 지어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KBS의 작문주제(반기문 총장의 재임 연설문을 작성하라)의 경우에도 저는 '세계평화의 길은 교육에 있다'는 요지의 연설문으로 작성했습니다. 한 분야를 깊게 파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짤 필요도 없고 남과 차별적인 글을 써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새로운 것만을 머릿속에 투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과거 어느 순간의 경험이나 느낌을 '끄집어내려고' 하십시오. 또한, 멀리서만 소재를 찾지 마시고 가까운 곳에서 소재를 찾으십시오. 식탁에서 엄마가 하는 이야기, 친구가 술자리에서 꺼낸 고민, 길을 가다가 자신이 본 것, 이런 것들에서 말입니다. 작문 역시 50편 이상의 괜찮은 글을 축적하면 어떤 주제가 나와도 일정 수준 이상은 써낼 수 있을 겁니다. 작문이야말로 자신의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입니다. 개인적으로 논술보다 훨씬 즐겁게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3. 실무평가

실무평가는 제가 자신 있게 이렇게 준비하라고 추천할 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해왔던 것들을 말씀드리면, 우선 인터뷰 기사, 스트레이트 기사쓰기가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티비에서 하는 인터뷰를 보고 이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현장취재와 관련해서는 아이템을 평소에 준비해두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문을 볼 때는, 특히 사회면이나 메트로면을 유심히 보면서 현장취재 시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이나 형식은 없는지 찾아보고 스크랩했습니다.

4. 면접

면접 역시 정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만 해도 지상파 방송사 2곳을 포함해 모두 4곳에서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면접에서도 양질전화의 법칙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면접 스터디를 꾸려서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질문을 취합하십시오. 저는 이번 KBS면접을 준비하면서 약 80개 정도의 질문을 뽑았습니다. 물론, 스터디 덕분입니다. 작년에만 해도 면접은 진정성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에 스터디도 안 하고 면접 준비를 소홀히 했었습니다. 그러나 5~10분이란 짧은 시간에 과연 진정성이란 게 전달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상 아니었습니다. 그걸 기대했던 제가 멍청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면접 스터디를 통해서 질문을 뽑고 서로의 자세를 고쳐주는 게 필수적입니다. 어떤 대답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겠지만, 핵심은 '명료함'과 '균형성'이라고 봅니다. 두괄식으로 답하고, 찬성과 반대논리를 두루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십시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하자면 근성이나 패기가 되겠지만, 이건 준비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보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습니다.

- 아랑 카페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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