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으면 나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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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두려워하던 괴물로 무엇이 있으신지. 내 경우는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수입 괴물로는 말이다. 토종으로는 구미호나 천년호 등의 변신한 여우가 있었고. 그러나 한국 전통 설화에서는 오래 쓴 가재도구, 즉 몽당비 같은 것들, 기타 늙은 가축, 하다 못해 손톱을 주워 먹은 쥐도 변신하여 사람을 잡아 먹을 모의를 한다는 판국이니, 우리의 전통 괴물들이 더 두렵기도 했으나. 하여간.
드라큘라는 요즘과는 그 설정이 조금 달라서, 아이들의 피를 빨아 먹는다고 했었다. 미녀 드라큘라(즉, 당시엔 드라큘라라는 것이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인지도 잘 몰랐던 것인데)를 조수로 데리고 다닌다는데, 이쁜 언니야가 아이들을 꼬드겨 오면 드라큘라가 일단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지는 이쁘기 때문에 착한 줄만 알았던 언니야가 마저 다 먹어 버린다는 거다! 하물며 피를 빨린다고 하여 드라큘라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하여, 박쥐가 날아 들어올까 하여 여름날 초저녁 억지로 창문을 닫고 더워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인데. 요즘 드라큘라는 아이들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고, 뭔가 짝을 찾아 헤매이는 불나방 같은 느낌이랄지. 따라서 적령기 미녀가 아니면 무섭지 않음이라. 물론 적령기 미녀가 아니고 말이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은 그냥 괴물이지만 무섭다. 공동묘지에서 몰래 훔쳐 온 시체 조각으로 조립한 괴물이다. 대체 어떤 기술을 사용하면 시체 조각을 연결하여 목숨을 불어 넣을 수 있는지 매우 놀랍지 말이다. 하여간 이렇게 뜬금없이 살아 돌아온 괴물인데 늘 악역을 담당했다. 머리를 쓰거나 악당 두목인 것은 아니지만, 일단 보면 악악 도망쳐야 하는, 몸을 쓰는 괴물인 거다. 힘도 무진장 세고. 보기에도 흉악한 괴물. 하여간 매우 못된 괴물.
나이가 들어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읽고 꽤 충격을 받았는데, 사실 이 '괴물'은 나쁜 짓을 한 것이 없다. 주인공인 과학자가 이 친구를 만들고 나서 보니 너무 흉측한 거다. 그리고 창조자이자 아버지인 프랑켄슈타인 본인 및 인간들이 그저 그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거고. 이름도 제대로 안 붙여 주고는 악령fiend 이라는 둥, 저 물건creature/ being, 이라는 둥, 비열한wretch라는 둥, 불쾌한 곤충vile insect이라는 둥 계속 이러는 거다. 물론 괴물monster이니 악마daemon이라고도 부르고 (즉,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고 그를 탄생시킨 박사의 이름이다. 괴물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 지게 되었으니, 잘코사니랄지). 오로지 못생긴 것만이 죄다. 그것도 자기가 못생기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애당초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지 않나. 오로지 생김새가 아름답지 않다고 미움을 받고 괴물이라고 누명을 쓰고 나아가 죽이겠다고 덤비다니, 본래 심성이 참으로 착하였더라도 괴물로 변할 지경이다(물론 프랑켄슈타인은 근대 자본주의 및 초기의 자신만만하던 과학이 그 오만에 의하여 탄생시킨 괴물이므로 필연적으로 흉측하고 따라서 배척될 수밖에 없다는 멋지구레한 해석이 있더라만서도).
최근 큰빗이끼벌레라는 것이 금강에 창궐하고 있다는데, 그 생김새가 흉측하고 끔찍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사를 보며 꽤 마음이 불편했다. 대체 이 생물이 왜 생긴 것인지, 즉 오염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아닌지 여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즉 오염을 가속화시키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전후좌우 설명이 없이, 그저 생긴 모양이 흉하고 냄새가 나고 외래종이라며 마구 싫어하는 기사를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나 버렸다는 거다(그러나 금붕어나 비단잉어처럼 귀엽거나 아름답지 않아서 그렇지 큰빗이끼벌레는 독성이 있거나 뭐 그런 나쁜 놈도 아닐 뿐더러 생태계에 어떤 해도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 져 있을 뿐 아니라 강물을 오염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오염된 곳에 더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 져 있을 뿐이라는).
보기에 그닥 아름답지 않으면 그냥 싫어한다. 생긴 것으로 본질을 판단하는 가차 없는 태도. 알아보려 하거나 설명조차 듣지 않는다.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고 그저 일거에 배척해 버리는 거다. 못생겨서, 뚱뚱해서, 피부색이 희지 않아서, 사지가 멀쩡하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사람 사이에도 그러하고 있을진대 이끼벌레를 대함이야 말해 무삼하리오만.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주인공 개미는 인간의 미인대회인지를 TV로 보면서 인간의 암컷이란 참으로 흉측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큰빗이끼벌레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인간보다 자기가 훨씬 잘 생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사람이 손 대 저렇게까지 망쳐 놓아 버린, 녹조 끼어 푸르딩딩한 강물에 슬쩍 끼어 살아 남으려면 인간보다 훨씬 적절하고도 유용한 생김새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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