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치욕 또는 수치

  치욕Pudor이란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슬픔이다. 반면 수치Verecundia란 치욕에 대한 공포나 소심함이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인간을 억제하는 것이다.
  치욕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받는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어떤 행동에 대한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반면 수치는 앞으로 치욕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나 소심함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수치심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치욕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치심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치욕을 멀리할 수 있게 된다. 수치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을 짓을 애초에 하려고도 하지 않을 테니까.
  수치심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수치심이 있는 사람은 비난받을 짓을 애초에 하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수치심을 느낄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강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게이브리얼이 아내와 둘만의 은밀한 생활에 대한 추억으로 충만해 있었을 때, 다시 말해 온화함과 기쁨과 욕망으로 충만해 있었을 때 그녀는 마음 속으로 그를 다른 남자와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의 존재가 수치스럽다는 의식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늙은 이모들을 위해 심부름꾼 노릇이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속물들에게 연설이나 해대고 자기 자신의 어리석기 그지없는 욕정을 미사여구로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소심하면서도 마음씨만은 호인인 감상주의자로, 조금 전에 거울에서 얼핏 보았던 그 애처롭고 얼빠진 녀석으로 보였다. ... (중략) 그는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아내가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던 그 연인의 두 눈의 모습을 어쩌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가슴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가를 생각했다. 게이브리얼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흥건했다. 그는 여태까지 어떤 여인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감정을 몸소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생전 처음으로 느껴 보는 그러한 감정이 분명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두 눈에는 더욱 흥건하게 눈물이 괴었다."
-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의 단편 '죽은 이들(The Dead)'



중앙일보 S 매거진
강신주의 감정 수업 <9> 치욕 또는 수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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