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이다. 전국 지자체에서 다문화와 이주민 관련 문화행사가 열렸다. 2013년 5월 기준 국내 다문화 어린이는 12만명, 이가운데 5만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 한국에서는 이들과 연관해서 어떤 문화현상이 만들어질까? 국립중앙박물관은 3월부터 두 달간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특별전을 열었다. 거주외국인 150만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사회에 '페라나칸'이라는 단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로부터 말라카 해협은 동서양의 관문이었다.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서양 열강이 16세기 이후 침투하면서 페라나칸 문화에는 유럽의 색깔이 더해졌다. 특히 영국령 식민지의 수도이자 물산의 집산지였던 19세기 싱가포르에서는 페라나칸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싱가포르는 수 세기에 걸친 교역과 이민, 식민지 네트워크와 근대 정치의 결과로 만들어진 다문화 국가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은 상호 작용하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페라나칸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중국적 정체성이 확연한 요소가 있지만 말레이 문화권의 요소도 섞여 있다. 인도양 문화와 함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 교역권의 영향도 남아있다. 그만큼 개방적이다. 혼합공동체는 혼성, 메스티소, 크레올, 페라나칸 등 여러 용어로 전세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새로운 언어, 음식, 복식, 관습 그리고 새로운 예술 양식을 탄생시켰다.
관혼상제는 한 집단과 문화의 정체성과 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페라나칸의 혼례는 12일 동안 치러졌다. 신랑은 중국식 복장, 신부는 자수와 구슬로 장식된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그러나 혼례가 중국 문화에만 지배된 것은 아니다. 혼례의 절차와 장식 속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신부가 신랑 집에 가져가는 '시레 세트'는 말레이 토착 문화의 단면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마약 성분이 있는 시레 잎을 씹는 관습이 있는데, 잎을 담는 용기가 시레 세트다. 공작을 수놓은 아일랜드풍 카펫도 신방에 깔렸다.
페라나칸 가옥에서 가신(家神), 조상신, 조왕신을 모시는 세 제단은 중국에서 유입된 효 사상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상을 추모하는 초상화는 유럽풍이다. 기후와 밀접한 패션은 말레이의 '반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여성은 말레이 전통 옷인 사룽(sarong)과 케바야(kebaya)를 입고, 케로상(kerosang)이라는 화려한 보석 장신구를 더한다. 후손들은 '서구화된 앨리트'의 모습이다. 페라나칸은 영어를 배우고 서구식 복장을 했으며, 테니스나 크리켓 등을 즐겼다. 문화를 태토로 꽃피운 한 화려한 자수, 구슬, 세공품 등 공예예술과 도자기는 페라나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페라나칸의 테마는 사람과 문화의 어우러짐 속에서 만들어진 문화다. "그동안 동서문화의 교류를 육지를 통한 실크로드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전시는 바닷길을 통한 동서문화의 교류를 살펴본다는 데 의의가 있겠습니다." 박성혜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우리 나라가 세계화로 '공식' 진입한 것은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시드니구상' 이후였다. 1년 후 호주워킹홀리데이비자 협정이 체결되었고 OECD에도 공식가입하였다.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세계속에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냈고 한편으로는 결혼이주여성과 유학생과 이주민도 급증하였다. 국내 구석구석에서 세계인이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의 반죽이 진행 중이다. '페라나칸'은 아시아가 빚어낸 다문화의 역사적 선례이다. 글 남경완 / 사진 박성준
출처: bbb magazine No.22 Heart & Communication
페라나칸[Peranacan]: 페라나칸은 동남아시아 현지인과 외부로부터 들어온 이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을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그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계 이주민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중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말레이 문화와 유럽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이 퓨전문화는 페라나칸의 삶 전반에 스며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예, 패션 등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을 꽃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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