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5일 화요일

[중앙일보 강남통신]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지금' 안 하면 그때는 오지 않는다: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든 조수용 JOH&컴퍼니 대표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지금' 안 하면 그때는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4.04.16 00:02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든 조수용 JOH&컴퍼니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랜딩 전문가'로 불리는 조수용(40) 대표. 얼핏 보기에 그는 매우 이질적인 층을 켜켜이 쌓아놓은 사람 같다. 어지간한 인쇄매체를 다 사라지게 만든 초록색 네이버 검색창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도무지 연결 될 것 같지 않은 경력이 마주치는 지점에 그가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젠 광고도 없는(※돈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광고가 없다) 잡지를 만들고 있다. 이 사람, 대체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하다.

-부유한 집에서 자랐을 것 같은데.

“아니다. 어머니가 1년에 딱 두번, 시험 전날만 옷을 사줬을 정도다. 내가 옷을 워낙 좋아하니 기분 좋게 시험 보라는 뜻이었다. 늘 상의 하나 바지 하나 사는 정도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어머니가 그냥 골라서 사준 적이 없다는 거다. 항상 내가 선택했다.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옷을 살 때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영등포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우리 형편에 살 수 있는 옷을 다 구경하게 한 거다. 그러고선 햄버거집에 데려가 햄버거 하나를 쥐어주며 ‘뭐가 제일 마음에 들더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맘에 든 옷을 말하고 햄버거집에서 나와서 그 옷을 샀다. 어머니 입장에선 많이 못 사주니 딱 하나라도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걸 사입히고 싶었던 거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나는 다들 그런 줄 알았다. 내 것을 내가 고른다는 걸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돌이켜보니 그게 진짜 교육이었다.”

-진짜 교육이라니.

“뭐든지 쇼핑하는 마음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림 감상이 난해하다고들 하지만 내 돈 주고 내 방에 건다는 느낌으로 보면 잘 보인다. 난 내가 산 옷 태그를 다 모았다. 똑같이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딴에 비교를 했다. ‘여기랑 저기는 경쟁관계인데, 이렇게 다르네’ ‘같은 옷인데 이렇게 하니 더 고급스럽네’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디자인이고 브랜드였다. 물론 그때는 디자인이란 말조차 몰랐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

“강원도 시골 사람인데 남달랐다. 내가 어릴 때부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넌 뭐가 좋니,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좋은 것’이라며 항상 나를 존중했다. 어머니는 내게 윗 사람이 아니라 내 옆에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그랬다. 모든 결정을 내게 맡겼다. 자식 자존감 키워주는 교육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 결정을 존중해서 그런 거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세상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가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언제까지 유지됐나.

“서울대 미대에 들어가서 냉엄한 현실과 마주쳤다. 학교 들어가 보니 애들이 너무 잘 살더라. 대부분 강남애들이었다. 완전히 별천지 세상을 보고 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나는 우리집이 꽤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처 받았다기보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 보니 지금 일의 단초가 됐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했나.

“처음엔 미술학원 강사를 했는데 돈이 안 되더라. 그래서 컴퓨터를 샀다. 당시엔 컴퓨터로 뭔가 디자인해서 출력해 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무리해서 돈을 모아 컴퓨터 사서 남들보다 좀더 일찍 컴퓨터 작업을 익혔다. (※사무실 한쪽에 있는 조그만 맥킨토시 컴퓨터를 가리키며) 저게 그때 컴퓨터다. 저걸로 PC통신 ‘천리안’을 하고 그랬다. 그 덕에 졸업 후 초창기 ‘프리챌’에 입사해 디자인팀장을 맡았고, 그 경력을 발판으로 네이버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난 줄곧 인터넷 회사라는 게 싫었다.”

-인터넷 회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는데 싫었다니.

“다른 산업은 다 쌓아온 구력이라는 게 있다. 또 서로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한 리스펙트(존중)가 있다. 그런데 인터넷은 역사가 짧다. 시작 단계라 다 선무당들인 거다. 개발자 정도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죄다 문과 출신 기획자들이 디자이너에게 ‘너는 예체능이야, 네가 왜 생각을 하니’ 라는 식으로 구는 게 싫었다. ‘너는 못 그리니까 아무리 생각이 있어도 디자인을 못 하지만, 나는 그릴 수가 있으니 내 생각을 그리면 더 좋은 것 아니냐’ 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많은 디자이너였나보다.

“그냥 타고난 비즈니스맨 같다. 디자인 스킬과 무관하게 나는 모든 걸 사업의 관점에서 봤다. ‘이 사업이 잘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말이다. 내가 ‘사업이 잘 되려면 이건 하지 말아야죠’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너, 디자이너가 왜 사업 얘기를 해’라고 의아해 했다. 그럼 나는 ‘그럼 디자인이 사업이지, 예술이냐’고 반문했다.”

-네이버 검색창을 만든 주인공으로 유명한데.

“검색창은 원래 있었다. 그걸 사용하기 편하게 디자인한 후 네이버 브랜드로 만든 거다. 지금은 잘 이해가 안가겠지만 당시 검색창은 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찾는다’는 건 정보가 많을 때 가능한데 그땐 한글로 된 문서가 별로 없었다.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난 네이버가 찾을 거리를 만든 회사라고 평가한다. 한글 데이타베이스 구축에 주력했다. 뉴스를 사다 집어넣고 백과 사전도 사다 인터넷에 집어넣었다. 네이버가 없었으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까지 인터넷을 안 하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도 일본 사람은 검색 안 한다. 아직도 서점이나 도서관 간다. 한국 사람은 서점에 안 간다.”

-서점 안 가고 책도 안 읽게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왜 잡지인가. (※그는 세계적 브랜드를 소개하는 잡지 ‘매거진 B’를 만들고 있다. 한권에 1만3000원씩 2만부 찍는데 광고는 넣지 않는다.)

“난 잡지를 너무 좋아한다. 어떤 분야가 궁금하면 그 분야 잡지를 보면 된다. 그 업계 메이저 플레이어와 꼬맹이가 누구인지, 누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잡지 몇 달 보면 훤히 알게 된다. 그게 내 취미생활이다.”

-광고 안 받는 잡지로 수익을 낼 수 있나.

“주변에서 ‘주류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변칙’이라고들 얘기하는데, 난 거꾸로 이기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난 늘 그래왔다. 무엇을 하든 이기는 방법을 찾는다. 세상에 이런 잡지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절대 취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무기로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잘 하는 게 뭔가. 브랜드를 좀 안다는 거다. 그래서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체를 만든 거다. 기존 잡지 상당수는 몽땅 다 광고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비슷비슷하다. 기획기사를 보면 몇년이 지나도 내용이 좋은데, 나머지 90% 광고 때문에 잡지 가치가 묻혀 버린다. 잡지가 한번 이 굴레에 들어가면 못 헤어 난다. 독자가 ‘이 브랜드 기사를 왜 썼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잡지에서의 정답은 아마 ‘광고니까’일 거다. 하지만 매거진 B는 다르다. 우리 답은 ‘우리 관점’이라는 거다. 전 세계 브랜드 중 철학과 가격·실용성·아름다움의 균형점을 가진 브랜드를 찾아 소개하고 싶다. 관점이 있어야 미디어가 롱런할 수 있다. 유럽 잡지도 표지에 등장한 브랜드는 잡지에 돈 낸 곳이더라. 이런 현실을 보고 이 시장이 세계적으로 비어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시장은 관심도 없었지만, 논란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영문판으로 승부를 걸었다.”

-실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원래 리얼 월드 가이(real world guy)다. 돈을 정말 많이 벌었다 치자.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게 뭔가. 인간 본능으로 들어가보면, 정말 인간이 하고 싶은 건 디지털 세상 안에 있지 않을 거다. 친구랑 놀고, 요트 타고, 책 내고, 옷 만들어 팔고, 자기 집 짓고 싶어 한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우리 회사 미션이 ‘나중에 하고 싶은 걸 지금 한다’다.”

-조수용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트렌드는 뭔가.

“인간이라 원래 갖고 있는 가치관이 있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보고 싶은, 아주 본연의 가치관 말이다. 이걸 지향하고 보여주면 된다. 이런 마음으로 하면 그게 트렌디한 거다.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하는 걸 보고 트렌디하다고 얘기한다. 그 본능을 빨리 캐치하는 사람이 트렌디한 사람이다.”

-그래도 같은 본능을 소구케 하는 장치가 있을 것 아닌가, 가령 디자인라든지.

“난 디자인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컨드 키친이든 매거진B든 디자인으로만 말하면 지극히 평이하다. 더 멋진 디자인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이걸 감각적이라고 하냐면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음악 등 다양한 감각을 통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려는 거다. 그래서 뭘 하든 오너의 생각이 중요하다. 오너가 관점이 없으면 디자인이 불가능하다. 디자인 시안만 100개가 붙는다. 그건 마치 오늘 나갈 옷을 길거리 투표로 정하는 거랑 똑같다.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어, 이게 브랜딩이다. 브랜딩이 잘 되면 디자인은 거저 주워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옷을 입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가’가 중요하지, ‘진한 수트가 좋은가, 밝은 수트가 좋은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촉’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본인만의 트레이닝 방법이 따로 있나.

“어렸을 때 옷 하나 사기 위해 전체를 봤던 것처럼 뭔가를 볼 때 그 시장 전체를 다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기분이 좋다. 안경에 관심 있으면 이 바닥은 어떻게 돼있는지, 가령 누가 퍼스트 무버이고 다크호스고 이런 걸 다 알아야 마음이 편하다.”

글=윤경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조수용(40)
1974년 서울 출생
1997년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졸
1999년 서울대 미술대학원 산업디자인 졸(석사)
1999~2003년 프리챌 디자인센터
2003~2010년
NHN 크리에이티브마케팅&디자인 부문장 등 역임
2011년~ 현재 JOH&컴퍼니 설립, 대표
 

사는 곳: 판교
근무하는 곳: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20길 21-18

조수용은 누구

네이버의 초록색 검색창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2005년 디자인 디렉터로 그가 고안한 이 검색창은 네이버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2007년엔 네이버는 물론 한게임 등 NHN 서비스 전체의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며 승승장구했다. 최연소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으나 2010년 돌연 NHN을 떠났다. “인터넷 산업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며.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 ‘JOH & 컴퍼니’를 설립해 브랜드 컨설팅과 출판·식당·건축·패션 등 5개 업종에 손을 대고 있다. 이중 대중적으로 가장 세상에 알려진 게 2011년 11월 창간한 잡지 ‘매거진 B’다. 하나의 브랜드를 선정해 회사와 제품의 역사 등을 소개하는 잡지로, 글은 최소로 하고 사진을 많이 넣었다. 그의 표현대로는 “마음먹고 보면 30분만에 읽을수있는” 호흡이다. 『JOH의 혼』이라는 이 잡지는 특정 브랜드를 다루지만 그 브랜드로부터 광고를 받거나 나중에 책을 대량판매하지도 않는다.

특정 브랜드와 관련한 잡지니, 당연히 다른 회사 광고도 없다. 독자 판매가 수익의 전부다. 창간호 ‘프라이탁’(스위스 가방)부터 가장 최근의 25호 ‘순토’(SUUNTO·핀란드 시계)까지 모두 그렇게 만들었다. 식당은 2개 브랜드를 운영한다. 유기농이나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하는 밥집 ‘1호식’과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레스토랑 ‘세컨드 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1호식을 연 이유가 단순하다. 직원이 마음편하게 밥먹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직원은 무료로 이용한다. 가방 브랜드 ‘에드 백’(ED BAG) 역시 매거진B를 만드는 기자들이 들 수 있는 디자인 깔끔하고 수납 좋은 가방이 필요해서 만들었단다. 그는 지금 올 10월 오픈 예정인 영종도 네스트 호텔과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 집중하고 있다. 호텔 이름, 컨셉트와 건축설계까지 JOH & 컴퍼니가 맡아서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