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3일 화요일

[한겨레] 아프리카 주민들이 추위 떠는 노르웨이 돕는다?

등록 : 2014.03.20 20:21수정 : 2014.03.21 20:00
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펀드(SAIH)가 만든 ‘아프리카를 돕자-잘못됐어’(Let’s Save Africa-Gone Wrong) 동영상의 첫 장면. 사진 속 광고판에 등장하는 흑인 어린이는 이 동영상에서 ‘모금방송 전문배우’로 나온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 빈곤을 위한 모금 광고의 전형성을 풍자하고 있다. SAIH 누리집 갈무리

[세계 쏙] ‘빈곤의 포르노그래피’ 꼬집는 노르웨이 ‘사이’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 24만여명이 본 동영상 ‘노르웨이를 위한 아프리카’(Africa For Norway)는 1980년대 서구의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캠페인 대표곡인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떠올리게 한다. 추위에 떠는 노르웨이 국민을 돕자며 모인 검은 얼굴들은 밝게 빛난다. 그들은 합창한다. “열대의 훈풍으로 노르웨이를 도웁시다. 난방기(라디에이터)를 모아서 그들에게 보냅시다. 그들에게 온기와 희망과 미소를 주자고요. 라디-에이드(Radi-Aid), 이제 ‘예스’라고 말해요.”
이 동영상에서 노래를 부른 래퍼 브리즈 브이(Breeze V)는 진지하게 말한다. “추위는 가난만큼 심각하다. 동상에 걸려도 사람들은 죽는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방치하지 않듯, 추위에 떠는 사람들도 모른 체하지 말자.”
2012년 ‘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 펀드’(SAIH·사이)는 기존의 전형적인 ‘아프리카 모금 홍보 동영상’을 비꼬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난방기처럼 아프리카에 전혀 쓸모없는 물건들을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보내는 원조국들을 은근히 꼬집는 의도가 깔려 있다.
‘노르웨이를 위한 아프리카’ 영상

비극 부풀려 모금에만 주력하는
아프리카 구호 광고·활동 꼬집어

눈물샘 자극 위한 과장된 홍보
뒤틀린 제3세계 이미지 만들기도
“저개발 국가에 대한 연민보다
‘보편적 인류애’에 기반해야” 
이 단체는 ‘아프리카를 돕자-잘못됐어’(Let’s save Africa-Gone Wrong)라는 또다른 풍자물도 만들었다. 마이클이라는 아프리카의 한 꼬마는 ‘모금 방송 전문 배우’다. 캠페인 광고를 찍으러 온 여성 연예인이 슬픈 사연을 듣고 즉각 울음을 터뜨리려 하자, 마이클은 태연히 묻는다. “아프리카에 처음 왔나 봐요?” 마이클은 비포장도로에서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지나가는 승용차 꽁무니를 뒤쫓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이 일은 꽤 힘들어요.”
‘사이’는 1961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벌여온 단체로 현재는 아프리카·중남미에서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2012년부터 저개발국가들에 대해 ‘올바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라디에이터 시상식’을 만들어 ‘좋은 광고’, ‘나쁜 광고’를 선정하고 있다.
한국 구호단체들이 가난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모금 광고 때문에 비난받고 있는 것처럼, 영국·미국 등 ‘원조 선진국’ 역시 비슷하다. 벌레도 쫓을 힘이 없어 얼굴에 파리똥을 잔뜩 붙이고 웅크린 아이들, 형편없이 쪼그라든 젖을 아이에 물린 바짝 마른 여성. 이런 화면들이 지나가고 나면 ‘당신의 주머니 속 1달러가 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자막이 뜨는 식의 전형적 광고가 다수다.
아프리카의 구호 광고
비극을 부각시켜 상업적 효과를 거두는 이런 사진·영상물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빈곤의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고 부른다. 빈곤의 포르노는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하는 폐해를 낳는다. ‘해외자원봉사서비스’(VSO) 대표인 마크 골드링은 “너무나 오랫동안 구호단체와 미디어들은 제3세계의 비운과 재난에 대해 불균형한 홍보를 하는 데 공모해왔다”며 “이는 돈을 걷겠다는 근시안적인 이득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희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사이’에서 일하는 신드레 올라브 에들란그뤼트는 지난 10일 <알자지라> 기고에서 “선행은 좋은 일이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정치구호가 쓰인 낡은 티셔츠, 망가진 컴퓨터 같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물건들을 보내는 것은 아프리카에 쓰레기 더미를 투척하고 지역 경제를 망가뜨리는 일에 다름 아니다”라고 짚었다 최근엔 ‘주는 나라’뿐 아니라 ‘받는 나라’에서도 이런 자각이 싹트고 있다. 케냐의 한 영상제작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사마리아인’이라는 텔레비전 시리즈물을 방영하고 있다. ‘구호를 위한 구호’(Aid for Aid)라는 가상의 국제엔지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미디로 만든 것이다. 케냐 현지 사무소장으로 온 ‘스콧’이라는 미국인은 6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엔지오 활동을 했으며 관련 석사 학위도 2개나 되지만 현장 경험이 전혀 없어 엉뚱한 일만 벌인다. 게다가 또다른 외국인 부소장은 직원들을 ‘스위티’(예쁜이)라고 부르며 성희롱 한다. 이 작품을 만든 후세인 쿠르지 감독은 “케냐엔 4000여개의 국제 구호단체가 있다. 나는 이런 단체들에서 일하는 이들로부터 사례를 모았다. 심지어 멸종 위기의 코뿔소를 구하자며 자선 경매를 벌인 뒤 이에 대한 포상으로 나미비아로 코뿔소를 사냥하러 가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있었다. 황당한 사례가 많아 재미있는 코미디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다큐멘터리와 허구를 섞은 ‘모큐멘터리’(mockumentary)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모금 광고’는 어떤 것일까? ‘사이’의 ‘라디에이터 황금상’ 수상작 중 <3분의 1>이라는 작품은 백인 여성이 한밤중에 일어나 ‘안전한 화장실’을 찾아 나서는 장면을 묘사한다. 전세계 여성 3분의 1이 안전한 화장실이 없어 질병과 성폭력 등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특정 저개발국가에 대한 연민보다는 ‘보편적인 인류애’에 호소한다. 언론인·영화제작자·디자이너·학생들이 모여 저개발국가들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모색하는 온라인 공간인 ‘인류를 생각하며’(리가딩 휴머니티)는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만들자’고 말한다. 저개발국가의 주민들을 빈곤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권리가 있는 주체적 존재로 대하자는 것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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