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조선일보] 폐교 0순위 시골학교, 다문화 아이들이 살렸다

廢校(폐교) 0순위 시골학교, 다문화 아이들이 살렸다

  • 서산=남정미 기자
  • 입력 : 2014.10.24 03:06 | 수정 : 2014.10.24 11:54

    [충남 서산시 차동초등학교 109명 중 35명이 다문화 학생]

    교사들 "당신 아이에게 주인공 교육 시키겠다" 다문화 엄마들을 설득
    "다양성 교육 받게하고 싶다" 이젠 일반 가정에서도 문의

    학년마다 한 반씩 딱 여섯 반뿐인 시골 초등학교 주위엔 논밭만 보일 뿐 문방구 하나 없다. 하지만 69㎡(약 21평) 남짓한 소박한 도서관의 장서는 다국적이다. 한글과 중국어, 일본어, 영어, 베트남어, 태국어, 몽골어, 필리핀어, 캄보디아어까지 9개국어 5200여권이 빼곡하다. 학교 현관에 들어서면 아홉 나라 국기가 손님을 맞는다. 복도 벽에 붙은 그림 속 아이들의 피부색은 흰색, 살구색, 황토색이다. 현관 벽면에 3학년 지훈이가 지은 시가 붙어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이어도/친구를/존중해주어요//피부색이 다르다고/놀리지 않고/친하게 지내요//다른 나라 사람이/어색하더라도/친하게 지내자.' 폐교 위기를 '다문화 공존'이라는 해법으로 극복한 충남 서산시 인지면 차리 차동초등학교 풍경이다.

    22일 6교시 3단원 '세계 속으로'를 배운 5학년 음악수업. 멕시코 민요 '라쿠카라차'가 한 번은 한국어로, 한 번은 멕시코어로 불렸다. 멕시코 전통 의상과 한복 그리고 중국, 일본, 몽골,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16개 나라 전통 의상을 입은 열여섯 학생 중 5명이 중국, 필리핀,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 학생이었다.
    
  22일 충남 서산 차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각 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음악 수업을 하러 가고 있다. 2009년 전교생 29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던 차동초는 다문화 교육 거점 학교로 교육 방향을 바꿔 현재 학생 수 109명이 됐다. 전체 학생 가운데 35명이 중국·일본·필리핀 등 외국 출신 부모를 둔 다문화 학생이다. /신현종 기자
     22일 충남 서산 차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각 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음악 수업을 하러 가고 있다. 2009년 전교생 29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던 차동초는 다문화 교육 거점 학교로 교육 방향을 바꿔 현재 학생 수 109명이 됐다. 전체 학생 가운데 35명이 중국·일본·필리핀 등 외국 출신 부모를 둔 다문화 학생이다. /신현종 기자
    2009년만 해도 이 학교엔 다문화 가정 학생이 없었다. 학생 수도 해마다 줄었다. 2008년 36명, 2009년 29명. 재학생 50명 미만이면 폐교 대상이었다. 50명 이하라도 면 단위 한 학교씩은 살려두지만 차동초 근처엔 400명 규모 학교가 있었다. 폐교 0순위였던 이 학교 재학생은 이제 그때보다 4배로 늘어 109명이다. 그중 35명이 다문화 가정 학생이다.

    없어질 뻔한 학교를 살린 건 '다문화 학생을 유치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김선희(46) 교감은 "다문화 사회가 꼭 올 것이고, 이미 오고 있다고 봤다"고 했다. 선생님 7명 전원이 학교 소개 전단을 만들어 다문화 가정 어머니들을 찾아나섰다. 처음엔 자녀 성적을 올려주겠다"고 했다. 엄마들은 꿈쩍도 안 했다. "체험활동을 많이 시켜주겠다"고도 했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다문화 엄마들의 마음을 움직인 한마디는 따로 있었다. "댁의 아이가 당당하게 학교생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다.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으로 교육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고, 다문화 가정 출신이란 게 알려지면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2010년 3월 다문화 가정 아이 13명이 전학 왔고 이듬해 21명이 왔다. 학생 수가 2년 만에 67명이 됐다. 선생님들은 '모든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교육철학을 저마다 가슴에 새겼다. 차동초에 온 다문화 학생들은 전학 첫날 부모의 국적을 밝혔다. 필리핀 학생이 오면 선생님은 필리핀 지도를 펼쳐놓고 "이 친구 엄마는 이곳에서 왔어" 하고 설명했다. 각지에서 온 학생들의 교통이 문제였다. 처음엔 동문들이 택시비를 댔다. 지금은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스쿨버스 2대가 재학생의 90%를 실어나른다.

    선생님들은 방학을 반납했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고 엄마는 한국말이 서툰 다문화 학생들은 방학만 지나면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고 왔기 때문이다. 4주 방학 중 절반은 전교생에게 영어·중국어·일본어 언어 집중 교육을 했고, 2주간은 다문화 학생들만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했다.

    선생님들의 노력이 소문나면서 일반 학생들도 전학오기 시작했다. 당진과 태안, 심지어 방학 때마다 외국에서 차동초등학교를 찾아와 수업을 듣는 학생도 생겼다. 타지 학부모들은 전화를 걸어 "내 아이도 다양성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학교에선 다문화 가정 학생이 전교회장이나 학급 반장을 하는 게 익숙하다. 2학기 6학년 반장은 중국인 아빠를 둔 다문화 가정 학생이다. 반장 선거에서 급우들을 사로잡은 건 딱 한마디였다. "이 학교로 전학 와서 2년간 도움받은 것이 너무 많다. 남은 한 학기 동안 내가 봉사하고 싶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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