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오마이뉴스] "상의 탈의했다고... 매일 살해 협박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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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 중인 페멘 활동가 폴린 일리에. 사진은 페멘의 전속 사진작가 쟈콥 크리스트(Jacob Khrist)가 찍었다.
ⓒ Jacob Khrist

1년 6개월 전, 한 프랑스 기자가 내게 페미니스트인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페멘(FEMEN)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페멘? 처음 들어본다고 했더니, 그는 페미니스트라고 했던 내 대답의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표하는 표정을 지으며 더 묻지 않았다. 그러고 돌아선 뒤, 어떻게 페멘을 모르고 살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페멘이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요란한 악명(!)을 떨치는 새로운 여전사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라의 몸 위에 구호를 적고 머리에는 화관을 쓴 채 가부장제에 포섭된 굴욕적인 세상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그룹. 이들은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탄생한다. 키예프에서 만난 네 명의 소녀는 자본주의에 힘없이 투항해 버린 세상을 혐오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섹스 산업, 독재, 종교의 교조주의'를 가부장주의가 발현시킨 3대 악이란 결론에 이르자, 이에 저항하기 위해 페멘을 결성한다.

페멘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주요 방편이 바로 여성의 몸이었기에, 그것은 역으로 여성 해방을 넘어 모든 인간 해방을 위한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렇게 해서 페멘의 유명한 트레이드마크가 된 '벗은 상반신, 머리에 얹은 화려한 화관'이 탄생했다.

그것은 남성에게 지배 당하는 대상이던 여성의 육체를 행동의 주체로 변신 시키는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그리하여 단숨에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 무기를 통해 페멘은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페미니스트 그룹이 되었다.

2년 전, 창립 멤버 4인방 중 이나(2013년,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마리안느 우표의 새 모델이 되기도 했던 바로 그 인물)가 나무 십자가를 전기톱으로 자르면서 우크라이나 감옥에 수감될 위기에 처해지자 이들은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이들은 주요 활동 무대를 프랑스 파리로 옮기고, 지금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그 조직망을 뻗어가고 있다.

페멘의 적은 섹스 산업의 고객, 다보스포럼에 모이는 기업인들, 정치와 결탁해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데 앞장서는 종교, 극우정당 등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여성과 약자들을 억압하는 모든 세력이다. 교회 종탑에 올라가 십자가를 잘라내기도 하고, 이슬람 국가의 법원 앞에서 반라의 시위를 벌이며, 의회에 진출하게 된 프랑스 극우정당 앞에서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변장을 하고 파시즘이 멀리 있지 않음을 만천하에 경고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주목받는, 동시에 가장 많은 시련과 수난을 겪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페멘. 지금껏 만나왔던 파리의 생활좌파들과는 결이 많이 다른 그들이지만, 만나야만 했다.

'섹스 산업·독재·종교의 교조주의'... 분노하고 저항하라

파리 북부. 클리시(Clichy)라는 동네에 위치한 페멘의 사무실을 찾은 날, 강가에 자리 잡은 이 마을 위로 나른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두 발자국만 가면 북쪽으로 뻗은 센강이 굽이쳐 흐르는 항구의 거리(Rue du port). 문 앞에 도달하자 담 너머로 삐죽 튀어 나온 대나무들이 싱싱한 얼굴을 드러내더니, 발랄하고 소박한 모습의 아가씨 폴린 일리에(Pauline Hilier, 27)가 밝은 얼굴로 문을 열어준다.

파리 18구에 있던 그들의 첫 공간이 화재로 전소한 후 여기로 옮겨왔다. 페멘이 들어서기 전까지 8년간 무심하게 방치되어 있었건만, 그녀들이 들어서자 주인은 마침 이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이 생긴 듯 나가줄 것을 요청했고, 법원에서는 얼마 전 퇴거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아직은, 지독히도 느린 프랑스 사법행정의 최종 판결문에 담길 선처를 기대하며 머무는 중이다. 페멘은 장기간 비어 있는 공간을 점거해 의미있게 활용하는 점거운동단체 '검은 목요일(Jeudi Noir)'을 통해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었다.

폴린의 안내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믿을 수 없이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들에게 대체 왜 이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한 걸까? 가끔 모여서 회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었다. 알고 보니 페멘의 핵심 멤버 7인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매주 회원들과의 세미나는 물론 신체 훈련까지 한다. 폴린에게 지난 여름 한국에서 번역돼 출간된 책 <분노와 저항의 한 방식, 페멘>을 선물로 건네며 질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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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멘을 소개하는 책이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 디오네
- 페멘은 가부장제 사회를 부정하고 이를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꿈꾸는 사회의 모델은 무엇인가?
"우리는 가부장제 사회를 전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평등 사회다. 우리가 가부장제의 질서를 부정한다고 해서, 그 다음에 올 사회가 모계사회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이끌어온 모든 남자들의 뒤에는 그들을 있게 한 여자들이 있었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남자들의 뒤에 여자들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서서 세상을 함께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가슴을 드러낸 상반신은 페멘의 상징이며 그것은 페멘의 무기다. 그러나 남자들은 페멘과 뜻을 같이 한다고 해도 그 행동을 같이 할 수 없다. 이 지점에 대한 딜레마는 없나.
"현재 프랑스 페멘 전체 회원 200명 중 남자 회원은 10~15%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페멘이 행동에 나설 때 우리는 남자 회원들이 전면에 우리와 함께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를 전복해 평등한 질서로 움직이는 사회를 남자들과 함께 구현한다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행위,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주체는 여성이어야 한다. 남자 회원들은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고, 회의에 참여하지만, 행동에서는 배제된다."

"돈 받고 고용된 모델이라고? 우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 얼마 전 한국에도 페멘(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반라의 시위를 벌였던)이 생겨났다.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일본에도 생겨났다고 들었다. 매우 기쁘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럽다. 함께하는 동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그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한국의 페멘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다.

우리가 꿈꾸는 것이 전 세계의 여성들이 우리의 운동에 동참하여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것이니만큼, 그들과 소통하며 서로 함께 호흡하길 희망한다. 지금 이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바로 그런 기대에서다. 더 많은 페멘이 세상에 생겨나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연대하기 위해서."

- 페멘의 새로운 지부가 조직되면 이곳에 와서 페멘으로서의 훈련을 받는 것이 필수인 것으로 알았다.
"유럽과 북미의 페멘들은 서로 수시로 소통하고, 자주 만나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1주일간 훈련을 하기도 하고 함께 행사를 하기도 한다. 스카이프를 통해 동시 토론을 하기도 한다(공통 언어는 영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에 있는 페멘들과는 소통이 쉽지 않다. 우리와 어떤 연락도 없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페멘에 대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응원한다. 물론 그들이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 오길 바라고.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면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 한국에 처음 페멘이 나타났을 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많은 누리꾼들의 반응은 그 여성의 몸에 대한 언급에 집중되었다. 몸매를 먼저 가꾸라는 질타였다. 우리가 사진으로 본 유럽의 페멘이 멋진 몸매를 가진 여성들 일색이었던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말도 안 되는 반응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세히 보면 우리 중 누구도 특별히 남보다 더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론에서는 페멘의 리더인 이나를 톱모델 급 여성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키가 15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체형이다. 페멘의 활동가들이 돈을 주고 고용된 모델이란 소문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반신을 노출한 채 머리에는 멋진 화관을 쓰고, 턱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할 때, 거기서 발산되는 각별한 카리스마가 있고, 그것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페멘이 선택한 페멘 식 의상(상의를 탈취하는)은 바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억눌린 자아를 세상 앞에 드러낼 때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지를 역설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자세를 취하면 누구든 아름다워 보인다."

-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지금 내 눈앞에 있는 폴린은, 페멘 분장을 한 사진 속의 폴린과는 다른 소탈한 아가씨가 아닌가). 그럼 페멘은 거리에 나서기 전에 어떤 포즈를 취할지에 대해서 미리 훈련하는가.
"그렇다. 우리의 태도는 당당해야 한다. 그것이 섹시하거나 유혹하려는 태도로 보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경찰이 바로 들이닥치기 때문에, 짧은 순간에 우리의 몸짓으로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민첩한 행동 요령이 필요하다. 또한 재빨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난폭한 군중이나 경찰이 우리를 압박할 때, 몸을 피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긴장되고 단련된 행동을 위해 우리는 매주 토요일 신체훈련과 정신훈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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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 중인 폴린 일리에를 포함한 페멘 활동가들을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사진은 페멘의 전속 사진작가 쟈콥 크리스트가 찍었다.
ⓒ Jacob Khrist

- 정신훈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가장 인본적인 입장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행동과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비폭력적이며 평화를 지향한다. 가부장제의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은 단호하지만, 결코 그들과 닮은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누구도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행동에 나서서는 곤란하다. 모두가 페멘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몸에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 완벽하게 하나처럼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지향이 우리의 행동 속에 담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신의 훈련도 필요하다."

- 회원이 200여 명 정도라고 했는데, 행동에 참여하는 인원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행동 전담 요원이 따로 있나?
"25명이다. 25명 중 일부가 돌아가면서 행동에 참여한다. 미리 오래 전부터 행동을 계획하는 경우도 있지만, 급박하게 어떤 사건에 대응하는 행동을 결정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이 그 부름에 응할 수도 없고, 여러 사람이 함께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나머지 회원들은 뜻을 같이하면서 멀리서 후원금을 보내오거나, 아니면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함께 토론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종류의 회원들이 있다. 우리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페멘이 될 수 있다."

- 회원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
"아주 간단하다. 이메일로 왜 페멘이 되고 싶은지를 작성하고, 만남을 청하면 우리는 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목적과 의지가 분명하다면 누구든 바로 회원이 될 수 있다. 페멘의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가족과 등을 질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간단하고 순진한 동기만으로는 페멘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 FN(프랑스 극우정당)이 의회에 진출한 직후 페멘이 연 집회에서는 많은 페멘 멤버들이 보였다.
"그때는 24명이 모였다. 당시 집회가 유럽 페멘들이 모여서 훈련을 갖는 1주일간의 시기와 겹쳐서 프랑스 이외의 페멘들도 함께할 수 있었다."

"페멘 3명 튀니지 감옥에 갇힌 뒤, 위험을 각오한 사람들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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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멘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토론을 하는 공간의 내부 모습.
ⓒ 목수정

- UMP(프랑스 우파정당)의 한 국회의원이 '페멘은 모델들을 사서 이들에게 돈을 주고 행동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사회당이 페멘에 지원금을 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상모략이다. 페멘의 회계와 회원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나다.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그 어떤 정치단체로부터도 후원금을 받지 않는다."

- 페멘의 재정은 어떻게 꾸려지나.
"페멘의 운영 경비는 회비와 페멘이 집필한 책의 저작권료, 그리고 개인 후원자들이 보내오는 소정의 후원금과 우리가 만들어서 사이트에서 파는 기념품 판매 수입으로 마련된다. 이곳에 거주하는 7명은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한다."

- 당신도?
"나는 우선 책을 쓰고, 종종 카페에서 일한다. 안 그래도 이 인터뷰가 끝나면 일하러 가야 한다. (웃음)"

- 페멘에 합류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문화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사회당에서 잠시 활동했지만 곧 실망해 사회당을 탈퇴했다. 소설(곧 출간될 예정이다)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날 방송을 통해 페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페멘 프랑스'가 출범한 직후였다. 그들의 첫 번째 행동은 극우 가톨릭단체를 향한 것이었다.

당시는 동성애자의 결혼을 반대하는 극우 가톨릭 세력들이 연일 목소리를 드높이며 반동적인 사고를 표출하던 시기였다. 그때 페멘은 내가 보기에 거의 유일하게 그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반격을 가하는 좌파그룹이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페멘의 경이로움에 감전되었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1주일 만에 파리로 올라와 페멘에 합류했다."

- 페멘의 회원이 늘어나는 시기는 언제인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페멘의 활동이 언론에 크게 노출될 때인가?
"그 점에 대해서는 아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페멘 프랑스는 초기에 지금보다 회원이 훨씬 많았다. 멋지고, 신나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섹시한 여자들이란 생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회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시기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페멘 3명이 튀니지의 감옥에 갇히고 나서다.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은 페멘이 희희낙락 축제를 벌이기 위해 모인 그룹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쉽지 않은 싸움을 벌이는, 시시때때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떠나갔다. 그 후 구름처럼 모여들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한 달에 5~10명 정도의 매우 진지한 회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위험을 각오한,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남았다."

2013년 5월, 폴린은 두 명의 페멘과 함께 튀니지에 갔다. 법정 앞에 서야 했던 튀니지의 페멘을 지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의 법원 앞에서 반라로 여성에 대한 이슬람의 만행을 고발하던 폴린 일행에게 시민들은 집단 린치를 가했고, 법원은 4개월형을 선고했다.

폴린과 두 페멘은 한 달에 단 한 번 샤워가 허용되고, 양동이에 던져지는 음식을 짐승처럼 받아먹으며 지내야 했다. 허용되는 유일한 책은 코란, 유일한 활동은 종교교육을 받는 것이었다. 프랑스 정부의 요청으로 1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구토 자국과 소변 냄새에 전 이불 위에서 보낸 튀니지 감옥에서의 경험은 폴린의 투쟁의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세상 모든 여성과 남성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인 자유와 존엄을 철저히 차단 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혹독하게 경험했던 사건이다.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고, 그런 상황은 극복되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페멘의 의지를 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들은 더 단단해졌다.

"거의 매일 암살 협박 받아... 칼 든 침입자가 죽이려 한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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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멘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토론을 하는 공간의 내부 모습.
ⓒ 목수정

- 페멘의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여느 활동가들과 달리 일상과 활동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24시간을 페멘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의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활동을 지지해 주는가?
"좌파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기본적으로 그분들은 나를 지지해 주신다. 물론 만날 때마다 격론을 벌이곤 하지만. 결국 언제나 나의 선택을 믿고 응원해 주실 분들이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카페의 주인 부부도 좌파다. 내가 페멘인 것을 알고, 나의 활동을 격려해 준다.

아직 지치지 않았다. 물론 페멘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암살 협박을 받는다. 페멘을 공격하기 위한 가톨릭 계열의 극우남성단체 호멘(HOMEN)도 생겨났다. 우리랑 정반대의 목표를 내건 사람들이다.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하고 동성애자들을 모욕한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반쯤 정신 나간 사람이 우리 공간에 칼을 들고 침입해서 우리를 죽이려고 시도한 적도 있고, 페멘의 공간에 화재가 일어나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경찰은 아직도 화재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이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해가는 행동들은 우리를 강하게 묶어준다.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솟아나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행동에 임할 때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 열정에 중독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 지금의 활동방식이 페멘이 원하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한 내부적 고민은 없나. 다시 말해서, 전략적 차원에서의 논쟁은 없나.
"우리가 비관주의자라면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여성 2명과 프랑스 여성 5명이 함께 생활하는 이곳에서 생활방식이 조금 달라서 서로 덜 친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거의 이견이 없다. 매주 수요일마다 회원들 간에 모임을 갖고 토론을 벌인다. 최근 이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우리의 행동 방향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우크라이나에서 페멘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상의를 탈의하는 행동방식은 내부에서 지속적인 논의의 주제였다. 그것 때문에 떠나간 회원들이 절반이 넘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방식이 옳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게 되었다. 지금 페멘의 목적은 우리의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지금의 방향을 당분간 고수하면서,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더 많은 페멘들이 생겨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프랑스의 다른 페미니스트 그룹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아주 좋은 편이다. 자주 교류하고 토론도 하고 서로의 행사에 참석도 한다. 우리가 튀니지 감옥에 있을 때도 프랑스의 다른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올랑드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청원을 해주었다."

- 페멘이 세간의 주목을 압도하는 신진 페미니스트 그룹이어서, 혹시 당신들을 견제하는 심리가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
"우리는 주목을 받지만 그만큼 시련도 겪는다. 많은 기사들은 우리를 음해하기 위한 것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잠시 조용히 지내면 바로 '페멘은 이제 멈췄는가' '페멘은 죽었다' 같은 기사가 난다.

우리의 활동을 음해하는 사람들은 극우단체, 보수적인 언론, 정치집단들이다.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우리의 등장을 반기는 입장이고, 페멘도 우리가 서로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전선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꾸는 전 세계의 여성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가야 한다고 믿는다."

맨몸으로 투쟁하는 이 여자들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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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멘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토론을 하는 공간의 내부 모습.
ⓒ 목수정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폴린이 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페멘의 멤버를 만나고 난 직후 든 생각은, 페멘을 팔아먹는 미디어의 공작이 얼마나 간교한 것이었던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들은 21세기에 흔히 볼 수 없는 진정한 활동가였다. 매일 살해 위협을 받는 집단이,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에게 선뜻 대문을 열어주고 공간의 곳곳을 보여준 행동은 얼마나 관대한 환대였는지를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야 알 수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페미니스트 그룹은 가장 많은 지탄과 화살과 위협에 직면하는 그룹이기도 했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초스피드로 진행된 인터뷰 내내, 폴린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대답했다.

근간 프랑스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그 낯선 긴장감은 페멘의 민낯이었다. 그들은 전투 중이었다. 이 거대한 전투를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운 무기를 들고 시작한 그들의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한때 페멘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재미있어하던 기득권층은 이제 그들이 제법 위험하고 귀찮은 대상임을 알아차렸다. 한 차례의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고 겁주려는 장애물은 여전히 그들의 발 앞에 투척되고 있다.

아직 많은 프랑스의 좌파들이 페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페멘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페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며 묻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1년 반 전에 답하지 못했던 페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젠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시스템에 무력하게 투항하는 대신, 사자처럼 당당하게 포효하는 이 여자들은 옳다. 페멘은 여자의 적이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남자와 여자 모두의 적이란 사실, 자본주의와 독재와 종교는 바로 그 가부장제가 작동시키고 있는 구체적인 극복의 대상이란 사실을 지목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적할 무기는 폭력혁명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철저히 굴복시킨 세상의 절반, 그 속에 감춰진 여성성이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그 파격적 당당함이 우리 속에 숨죽이고 있던 여신을 되살려낸다. 이 아름다운 마녀들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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