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9일 오후,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의 도시 밍고라. 10대 초반 소녀들로 가득 찬 스쿨버스가 잠시 정차한 사이 총기로 무장한 괴한이 올라왔다. “누가 말랄라지?” 학생들은 얼떨결에 한 소녀를 가리켰다. 순간, 괴한은 소녀를 권총으로 저격하고 도주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말랄라 유사프자이(17). 지난 10월10일 발표된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다(공동 수상자는 인도의 아동권익 운동가 카일라슈 사티아르티).
당시 15세였던 말랄라는 머리와 목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다. 파키스탄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영국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져 수차례 위험한 뇌 수술을 받은 끝에 목숨을 건졌다.
어린 나이의 말랄라가 이처럼 총격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탈레반의 ‘여성 교육 금지’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말랄라가 살던 스와트밸리가 탈레반에 점령당한 것은 2007년이다. 스와트밸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160㎞쯤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어긋나는 서방 문화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기관들을 폐쇄하거나 혹은 폭파해버렸다. 특히 ‘여성의 교육권’을 전면 부정했다. 여학교를 공격해서 학생들을 몰아내고 ‘소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처단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발표했다. 여성들은 쇼핑은 물론 텔레비전과 음악 청취까지 금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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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17세 소녀 말랄라가 10월10일 영국 버밍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
이런 가운데 말랄라는 2009년 초부터 가명으로 ‘소녀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영국 BBC 방송 블로그(파키스탄어 버전)에 올렸다. 일종의 ‘지하 통신’이었다. 어른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위험한 일을 소녀가 대신한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군이 탈레반을 스와트밸리에서 몰아낸 2009년 5월 이후 말랄라는 탈레반의 여성 교육권 박탈에 대해 공개적으로 연설회를 여는 한편 ‘가난한 소녀 학교 보내기’ 등 어린이 인권운동을 전개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탈레반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말랄라를 공격한 괴한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인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TP)’ 소속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말랄라는 현재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다.
이런 말랄라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자 세계는 소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말랄라는 파키스탄의 자랑이다. 세계의 소년 소녀들은 그녀의 투쟁과 희생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니사르 알리 칸 내무장관 등 정부 인사와 샤리프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는 야당 지도자 임란 칸도 말랄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축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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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스와트밸리 지역 밍고라 마을의 한 학교에서 소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
탈레반은 말랄라 수상에 반발하며 ‘살해’ 위협
그러나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혐오스러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다시 주목받게 된 탈레반들은 크게 반발했다. ‘TTP 자마툴 아흐랄(TTP의 강경 분파)’은 수상자 발표 다음 날인 10월11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다시 말랄라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말랄라는 총과 무력에 반대하는 주장을 많이 한다. 그러나 노벨상을 만든 사람(알프레드 노벨)이 폭발물의 창시자라는 것은 모른단 말인가? …말랄라 같은 자들은 ‘우리가 (서방의) 선전 때문에 목표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슬람의 적들을 겨냥해 날카롭고 빛나는 칼을 준비해두었다.”
탈레반만 말랄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파키스탄 언론들도 그렇다. 세계적으로 대다수 언론들은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속보로 긴급 타전했다. 파키스탄 언론만 예외였다. <파키스탄 옵서버>의 타리크 카타크 편집장은 “말랄라는 평범하고 쓸모없는 소녀로, 서구 문화의 판매원 같다”라고 비하했다.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의 지역 신문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은 단신으로 처리되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말랄라의 자서전 <나는 말랄라> 역시 푸대접을 받는다. 이 책은, 파키스탄 사립학교 연합에 소속된 4만여 교육기관에서는 금서다. ‘이슬람을 존중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모론도 무성하다. ‘서방세계가 서구적 가치관으로 이슬람 세계를 해체하기 위해 말랄라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파키스탄 청년 수백명이 ‘말랄라 드라마(#MalalaDrama)’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퍼트리고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파키스탄인들이 자국인의 노벨상 수상을 고깝게 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사실 한국에서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발하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았다). 파키스탄인들의 ‘반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뿌리 깊은 반서구·반미 감정이다.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펼치는 가운데 파키스탄 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 나라 영토로 병력을 투입한 바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을 무인기로 공습해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했다. 파키스탄 유력 일간지 <더 뉴스> 기자 모하마드는 “파키스탄 국민들의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사건이었다. 파키스탄인들은 대개 탈레반을 싫어하지만, 미국에 대한 반감이 훨씬 강하다. 말랄라 역시 미국의 꼭두각시쯤으로 여기는 파키스탄인이 많다”라고 말했다.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 밍고라의 주민들은 그녀의 수상 소식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일 노점상을 하는 하크울라 씨(45)는 “말랄라는 우리 집 딸들에 비해 행운아다. 내 딸들은 탈레반 때문에 학교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비비 유시프자이(17)는 “말랄라가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준 것이 고맙다”라며 기뻐했다. 밍고라 시내 중심가에서 식당을 하는 압둘 굴 씨(39)는 “말랄라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영국 사람으로 살 것 같다. 그러나 말랄라 덕분에 스와트밸리가 세계에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여론이 둘로 갈린 말랄라의 고향 스와트밸리
압둘 굴 씨가 스와트밸리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떨치고 싶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와트밸리는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한때 파키스탄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졌던 지역이다. ‘파키스탄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관광산업으로 먹고살았다. 그러나 2007년 탈레반이 스와트밸리를 장악한 이래 관광수입은 끊기고 말았다. 정부군이 수복한 2009년 5월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 정부는 스와트밸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지역 축제를 거행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이 지역에 대한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스와트밸리 산자락 곳곳에 진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TTP는 지금도 말랄라에게 보복하겠다고 벼른다. 지역 주민 중 일부도 말랄라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2012년 지역사회 일각에서 밍고라 대학의 이름을 ‘말랄라 대학’으로 바꾸자는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이 운동은 학생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학생들은 새로운 교명(말랄라 대학)이 새겨진 명판과 통학 버스를 파괴하고 말랄라의 사진을 찢으며 수업을 거부했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말랄라는 세계 여성 교육권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파키스탄으로 귀국해서 조국 여성들의 교육권 회복을 위해 싸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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