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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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인기가 너무나 높아 나도 요즈음 하는 일을 잠시 옆에 미뤄 두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읽기 시작해 겨우 Introduction을 마친 단계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 많아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이제 읽기 시작해 겨우 Introduction을 마친 단계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 많아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나는 Piketty가 그 정도로 천재였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천재라면 Lawrence Summers나 Paul Krugman을 흔히 생각하는데
Piketty도 이들에 전혀 모자랄 것이 없는 천재라는 사실을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아닌 곳에 그런 천재 경제학자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구요.
(요즈음 경제학이 미국의 독점 체제하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경제학계에서 천재라면 Lawrence Summers나 Paul Krugman을 흔히 생각하는데
Piketty도 이들에 전혀 모자랄 것이 없는 천재라는 사실을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아닌 곳에 그런 천재 경제학자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구요.
(요즈음 경제학이 미국의 독점 체제하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이 책에는 그가 미국에 약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22살 때 미국에 갔다가 25살 때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구요.
그저 Boston 근방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고만 얘기할 뿐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22살 때 미국에 갔다가 25살 때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구요.
그저 Boston 근방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고만 얘기할 뿐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가 잠깐 MIT 교수로 일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Piketty가 말하고 있는 미국 생활의 경험이 바로 그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Piketty는 22살에 프랑스에서 박사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 교수가 되었다가 25살 때 미국 생활 접고 프랑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국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학에 대한 환멸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는 겁니다.
(미국 경제학에 목 매달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에게 자존심 좀 가져 보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즉 Piketty는 22살에 프랑스에서 박사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 교수가 되었다가 25살 때 미국 생활 접고 프랑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국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학에 대한 환멸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는 겁니다.
(미국 경제학에 목 매달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에게 자존심 좀 가져 보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 경제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한 돌직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To put it bluntly, the discipline of economics has yet to get over its childish passion for purely theoretical and often highly ideological speculation, at the expense of historical research and collaboration with other social sciences. Economists are all too often preoccupied with petty mathematical problems of
interest only to themselves. This obsession with mathematics is an easy way of acquiring the appearance of scientificity without having to answer the far more complex qustions posed by the world we live in.
한마디로 말해 경제학자는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수학의 유희를 즐기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인데, 정말이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속이 다 시원해지데요.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만 흥미를 갖는 공리공론을 일삼는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지요.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만 흥미를 갖는 공리공론을 일삼는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지요.
Piketty는 한 가지 또 재미있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와서 경제학자로 활동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하나의 큰 장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지식계층 혹은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서 별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그 장점이라는 겁니다.
프랑스에 와서 경제학자로 활동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하나의 큰 장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지식계층 혹은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서 별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그 장점이라는 겁니다.
자기도 그 중 하나인데 경제학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이상한 발언이지요?
그 다음의 말을 들어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고, 또한 경제학이 더 큰 과학성을 갖는다는 궤변도 늘어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다음의 말을 들어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고, 또한 경제학이 더 큰 과학성을 갖는다는 궤변도 늘어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Piketty는 이 말 뒤에 "they know almost nothing about anything"이란 말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they는 경제학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경제학자들이 실제 경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통렬한 비판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학문을 무시하기 일쑤인 경제학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they는 경제학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경제학자들이 실제 경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통렬한 비판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학문을 무시하기 일쑤인 경제학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학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주로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향한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경제학자들보다 더 욕 먹어 싼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입니다.
Piketty가 비웃고 있는 경제학자의 약점이란 측면에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한 술 더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경제학자들보다 더 욕 먹어 싼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입니다.
Piketty가 비웃고 있는 경제학자의 약점이란 측면에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한 술 더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학자들은 인접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는 편입니다.
걸핏하면 그들을 무시하고 마치 경제학적 논리가 불변의 진리인 양 오만을 떨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경제학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고 돌아와 불평하는 사회과학대학의 동료 교수들 많이 봤습니다.
걸핏하면 그들을 무시하고 마치 경제학적 논리가 불변의 진리인 양 오만을 떨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경제학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고 돌아와 불평하는 사회과학대학의 동료 교수들 많이 봤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경제학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해져야 마땅합니다.
솔직히 말해 미국 경제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인접 학문에 대한 오만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경제학자들에게 겸손해지라고 말하면 아마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돌아올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Piketty 같은 천재가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요.
솔직히 말해 미국 경제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인접 학문에 대한 오만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경제학자들에게 겸손해지라고 말하면 아마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돌아올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Piketty 같은 천재가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그 동안 경제학이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 너무나 소홀한 대접을 해온 것은 비판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분배의 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홀대를 정당화할 하등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는 분배문제가 경제학의 중심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분배의 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홀대를 정당화할 하등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는 분배문제가 경제학의 중심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 또 하나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배의 문제에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 동안 분배문제에 대해 공부해 오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점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배의 문제에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 동안 분배문제에 대해 공부해 오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점이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The history of inequality is shaped by the way economc, social, amd political actors view what is just and what is not, as well as by the relative power of those actors and the collective choices that result.
이제 본문을 읽기 시작할 때지만, Introduction만 읽고도 나는 그의 팬이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 훤히 알 만합니다.
나로서는 이런 천재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들의 위선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것이 너무나 통쾌할 따름입니다.
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 훤히 알 만합니다.
나로서는 이런 천재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들의 위선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것이 너무나 통쾌할 따름입니다.
지금 나는 최근 미국사회에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엄청난 정도로 심화된 것의 결정적 이유를 정치와 사회의 보수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요지의 논문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 논문의 핵심 중 하나는 왜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사회에서 보수세력이 확실한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느냐는 원인 규명에 있구요.
이 논문의 핵심 중 하나는 왜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사회에서 보수세력이 확실한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느냐는 원인 규명에 있구요.
나는 이 논문 이외에도 최근 미국 신자유주의 정책의 귀결을 규명하는 몇 개의 논문을 쓴 바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도 아닌 미국사회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냐구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미국사회 그 자체에 대한 엄청난 관심 때문에 이 주제를 파고드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회를 좀 더 잘 아는 데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사회를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 사회도 아닌 미국사회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냐구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미국사회 그 자체에 대한 엄청난 관심 때문에 이 주제를 파고드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사회를 좀 더 잘 아는 데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사회를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식층은 매우 친미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뭐든지 미국에서 맹목적으로 베껴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Piketty는 이 책에서 미국사회가 하나의 모델이 된다면, 이것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유럽형 모델, 즉 European social model도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식층은 이 유럽형 모델에 대해 지극히 무지하거나 무관심합니다.
뭐든지 미국에서 맹목적으로 베껴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Piketty는 이 책에서 미국사회가 하나의 모델이 된다면, 이것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유럽형 모델, 즉 European social model도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식층은 이 유럽형 모델에 대해 지극히 무지하거나 무관심합니다.
특히 지난 MB정권의 친미성향은 거의 사대주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내가 늘 지적해 왔지만, MB정권이 '개혁'이라고 부른 것은 모든 것을 미국식으로 뜯어고치자는 데 불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세정책은 철지난 Reaganomics의 유치한 모방이었으며, 교육정책은 문제점투성이로 드러난 No Child Left Behind의 모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흐지부지 됨에 따라 미국의 NCLB를 본뜨려는 꿈도 무산되어 버렸지요.)
내가 늘 지적해 왔지만, MB정권이 '개혁'이라고 부른 것은 모든 것을 미국식으로 뜯어고치자는 데 불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세정책은 철지난 Reaganomics의 유치한 모방이었으며, 교육정책은 문제점투성이로 드러난 No Child Left Behind의 모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흐지부지 됨에 따라 미국의 NCLB를 본뜨려는 꿈도 무산되어 버렸지요.)
이런 지식풍토의 영향 때문에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점에서 미국사회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현상에서 일종의 전염(contagion)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점 더 잘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미국사회의 철저한 분석이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사회현상에서 일종의 전염(contagion)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점 더 잘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미국사회의 철저한 분석이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이제 책을 거의 다 읽어가기 때문에 곧 체계적인 독후감을 쓸 예정으로 있습니다.
내가 논문 쓰는 일을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이 책을 읽는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쓰려고 하는 논문과 너무나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두 번째 중간보고서는 바로 이 점과 관련된 것입니다.
내가 논문 쓰는 일을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이 책을 읽는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쓰려고 하는 논문과 너무나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두 번째 중간보고서는 바로 이 점과 관련된 것입니다.
미국사회의 불평등 심화 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기업 최고경영진의 대약진입니다.
1950년대, 60년대만 해도 미국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일반 직원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보수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최상위 1%의 소득점유율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게 된 것입니다.
1950년대, 60년대만 해도 미국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일반 직원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보수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최상위 1%의 소득점유율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게 된 것입니다.
내 의문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으며 그것이 과연 정당성을 갖느냐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내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새로 알게 된 것은, 이 최고경영진의 급격한 보수 증가가 Reaganomics의 감세정책과 깊이 끈닿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내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새로 알게 된 것은, 이 최고경영진의 급격한 보수 증가가 Reaganomics의 감세정책과 깊이 끈닿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고경영진의 급격한 보수 증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소위 "경영자권력가설"(managerial power hypothesis)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즉 최고경영진이 이사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보수 증가 요구를 관철시킨다는 가설입니다.
소득세율과 관련을 짓는 Piketty의 설명은 이와 조금 다르지만 이 가설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즉 최고경영진이 이사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보수 증가 요구를 관철시킨다는 가설입니다.
소득세율과 관련을 짓는 Piketty의 설명은 이와 조금 다르지만 이 가설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감세정책이 도입되기 이전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은 70%였습니다.
심지어 1960년대에는 90%의 수준까지 치솟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최고세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최고경영진이 자신의 보수를 크게 만들어 보았자 세금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었습니다.
심지어 1960년대에는 90%의 수준까지 치솟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최고세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최고경영진이 자신의 보수를 크게 만들어 보았자 세금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보수 인상에 대해 그리 열성적으로 나설 이유도 없었고 이사회에 그것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Reagan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최고세율이 28%로 낮아진 후에는 상황이 달라져 최고경영진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보수를 올리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는 것이 Piketty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Reagan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최고세율이 28%로 낮아진 후에는 상황이 달라져 최고경영진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보수를 올리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는 것이 Piketty의 설명입니다.
이와 같은 최고경영진의 보수 증가가 그들의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Piketty의 주장입니다.
그는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그렇게 크게 증가하지 않은 유럽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적용하는 소득세율을 크게 낮춰준 정책은 미국사회에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그는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그렇게 크게 증가하지 않은 유럽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적용하는 소득세율을 크게 낮춰준 정책은 미국사회에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Piketty는 최적세율에 대해 Emmanuel Saez 등과 함께 쓴 논문의 분석결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내린 결론은 최고세율이 80%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연간 소득이 50만 달러에서 1백만 달러 수준을 넘으면 80% 정도를 세금으로 떼어가는 것이 적합하다는 말이지요.
연간 소득이 50만 달러에서 1백만 달러 수준을 넘으면 80% 정도를 세금으로 떼어가는 것이 적합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Piketty는 실제로 미국이 이와 같은 조세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의 분위기상 절대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제적 엘리트 계층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조세제도 개혁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입니다.
미국 사회의 분위기상 절대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제적 엘리트 계층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조세제도 개혁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입니다.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이 엘리트 계층의 일각을 구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와 같은 조세제도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는 그의 지적입니다.
(최근 미국 대학의 경제학 교수 연봉이 경영대학원에 버금갈 정도로 치솟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Piketty는 그와 같은 높은 연봉이 그들로 하여금 엘리트 계층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에 대한 Piketty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신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최근 미국 대학의 경제학 교수 연봉이 경영대학원에 버금갈 정도로 치솟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Piketty는 그와 같은 높은 연봉이 그들로 하여금 엘리트 계층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에 대한 Piketty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신랄하기 짝이 없습니다.
Some economists have an unfortunate tendency to defend their private interest while implausibly claiming to champion the general interest. (p.514)
몇몇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고 실제로는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비난입니다.
동료 경제학자들에게 이렇게 서슴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그의 용기에 갈채를 보내고 싶더군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문장을 미국 경제학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학자에 대한 것으로 바꾸면 한층 더 적절한 비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동료 경제학자들에게 이렇게 서슴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그의 용기에 갈채를 보내고 싶더군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문장을 미국 경제학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학자에 대한 것으로 바꾸면 한층 더 적절한 비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위 문장 첫 부분의 Some economists라는 표현에서 American이란 단어가 중간에 있는 걸 생략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Korean으로 바꿔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바꿔서 그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걸 Korean으로 바꿔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바꿔서 그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말이 맞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자신을 기득권층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에 비해 우리 경제학자들의 보수성향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자신을 기득권층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에 비해 우리 경제학자들의 보수성향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Piketty는 미국의 정치가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는 사실도 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 역시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득과 개인적 이득을 혼동하기 쉽고 따라서 사회적 이득을 가져오는 개혁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해치면 결사반대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어와 같은 태도는 공화당 의원이나 민주당 의원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인데, 이 점도 우리 사회와 똑같은 구도가 아닐까요?
그들 역시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득과 개인적 이득을 혼동하기 쉽고 따라서 사회적 이득을 가져오는 개혁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해치면 결사반대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어와 같은 태도는 공화당 의원이나 민주당 의원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인데, 이 점도 우리 사회와 똑같은 구도가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Pketty는 미국 사회의 앞날에 대해 우울한 전망을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지금의 불평등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의 건국이념인 평등주의는 망각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입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는데, 이것이 단지 남의 나라 일로 그치지만은 않는다는 데 나의 걱정이 있습니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지금의 불평등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의 건국이념인 평등주의는 망각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입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는데, 이것이 단지 남의 나라 일로 그치지만은 않는다는 데 나의 걱정이 있습니다.
* 이 글은 이준구 교수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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