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경향신문] 비판·창의력 높으면 서울대 A+ 학점 받기 힘들다?

교육·입시
비판·창의력 높으면 서울대 A+ 학점 받기 힘들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com
ㆍ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저서에서 지적

창의력이 뛰어난 애들은 수용하는 게 좀 약해요. 그래서 학점이 안 좋아요.” “그냥 고등학교 때처럼 교수님 말씀 열심히 적어야 학점이 잘 나오더라고요.”

이는 서울대에서 A+ 학점을 받는 학생들의 말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무조건 이해하고 암기하는 수동적 학습에 치중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21일 출간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다산에듀)에서 “서울대에서는 수동적 학습방법에 의존하는 학생들일수록 높은 학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 서울대생 1111명 심층 조사… 70%가 수용적 사고력 ‘응답’
교수 글 암기 ‘고학점 비결’


▲ “창의적 사고” 답한 학생들 학점 되레 안 나와 ‘좌절’
‘창의적 리더 양성’ 반대로


이 소장은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교수로 근무하던 2009~2011년 서울대 2~3학년 12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학점 4.0(4.3 만점) 이상 학생 150명 중 46명에 대해서는 심층 인터뷰를 했다. 조사 결과 1111명의 응답자 중 69.9%(776명)가 수용적 사고력이 창의적 사고력보다 높다고 대답했다. 창의적 사고력이 더 높다고 대답한 학생들은 23.2%(257명)에 그쳤다. 주목할 점은 수용적 사고력이 높다고 응답한 학생들일수록 학점이 높았다. 학점 4.0 이상 고학점자의 72.7%가 수용적 사고력이 창의적 사고력보다 높다고 대답했다. 비판적 사고력에 대한 평가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심층 인터뷰에서는 고학점자일수록 수동적인 학습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터뷰 대상 46명 중 87%가 “강의 시간에 교수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다 적는다”고 대답했다. 생활과학대의 한 학생은 “1학년 때는 필기를 잘 안 했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학점이 안 나왔다. 그냥 고등학교 때처럼 교수의 말을 열심히 적어야 학점이 잘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예습보다 복습에 치중했다. 46명 중 약 80%인 37명이 예습을 전혀 하지 않고 복습만 한다고 응답했다. 예습을 통해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수업시간에 수동적으로 전달받은 내용을 숙지하는 게 고학점의 비결이었다.

이런 학습 방식은 ‘생각 없는 인간’을 양성한다. ‘시험에서 교수의 생각과 다른 견해를 제출할 경우 A+를 받을 확신이 없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46명 중 41명은 “자신의 의견을 포기한다”고 대답했다. 한 인문대 학생은 “반대 의견이 있을 때도 있고 다른 의견이 있을 때도 있다. 그래도 표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 공대 학생은 “내가 뭔가 대단한 발견을 새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교수의 말을 수용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명문 주립대인 미시간대 학생들은 달랐다. 이 소장은 2012~2013년 미시간대 학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서울대 학생들과의 비교연구를 수행했다. 응답자 821명 중 수용적 사고력이 더 높다고 평가한 학생들은 42.5%(349명), 창의적 사고력이 더 높다고 평가한 학생들은 35.3%(290명)였다. 수용적 학습자가 많긴 하지만 서울대보다는 편차가 적었다. 또 미시간대에서는 창의적 사고력이 더 높다고 평가한 학생들의 비율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졌지만 서울대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이 소장은 “처음 서울대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는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알아내면 보통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할수록 ‘과연 이런 식으로 공부해도 되나’란 회의가 들어 연구의 방향 자체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책임은 창의적 리더를 기르겠다면서도 무엇을 가르치고 무슨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를 대학 차원에서, 교수 차원에서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 대학에 있다”고 말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