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조창완의 뉴차이나소프트] 중국과 우리 언론자유는 오십보백보

[조창완의 뉴차이나소프트] 중국과 우리 언론자유는 오십보백보2013/01/14  



돌아가신 김각중 전 경방 회장은 90년대 초반 중국을 보고 나서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나라”라는 미묘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90년대 중국은 선전이 빠르게 도약하고 상하이가 푸동 개발에 본격 나선 시기인데, 이 말은 지금도 무릎을 치게 할 만큼 정확한 통찰이었다.
 
 이 말에는 흔히 상인종(商人種)으로도 불리는 중국인들의 기저에 있는 습성을 말해 준다. 중국인에게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불릴만한 상업적 자질이 존재한다. 서구 자본주의에 밀려 맹위를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이후 화교로 불리는 해외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본토의 중국인들도 세계를 돌면서 상업적 자질을 드러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지금의 중국도 판매의 자질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상업의 발달은 그 나라가 자유주의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상인(商人)이란 말도 무너진 은(殷) 나라의 후손이 세상을 돌면서 장사를 하던 데서 유래했으니 상업에는 분명히 자유주의적인 냄새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는 어떨까. 

황제가 절대 권력을 누리던 옛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사실 철저한 제한 속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십팔사략’ 등에 나타난 것처럼, 황제를 비판하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참형된 수많은 현신(賢臣)들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언론 자유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물론 앞글에서 소개했듯이 우리나라 신문고와 같은 '주접(奏摺, 누구나 황제에게 보낼 수 있는 글)‘을 통해 나름대로 언로를 열어주었던 옹정제 같은 황제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황제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대항하는 신하나 방식에 대해 철저히 거부했다. 
 
중국의 당대는 어떨까. 새롭게 등장한 시진핑은 기존에 가진 지도자들에게서 느껴지던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가능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국에 얼마 전부터 세계인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가 생겼다. 중국의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난팡저우모(南方周末)>의 파업 관련 소식이다. 

난팡저우모는 선전을 근거지로 두고 있는 신문이다. 필자 역시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사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국 신문인데, 산하에 두고 있는 진보적인 경제지인 <21세기경제보도>도 가장 가독성이 높은 신문 중 하나다. 

물론 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이 언론사는 수차례 언론자유에 관한 문제로 논란이 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주간지인 난팡저우모 신년호에 실린, 중국이 입헌주의 정치를 실현해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특집기사였다. 공산당의 독점적 권한을 통한 정치 형태의 중국으로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고, 결국 이 기사는 삭제되었다. 기자들의 파업이 일어났고, 이 파업은 베이징의 신징바오(新京報)로 확장됐다. 중앙선전부가 난팡저우모를 비판하고 당국 입장을 옹호하는 환치우스바오(環球時報)의 사설을 게재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이 사태를 제대로 알려면 중국 신문의 구조를 간단히라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중국에서 전국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는 런민르바오(人民日報)가 유일하다. 런민르바오는 공산당의 기관지로 절대 권위를 갖고 있으며, 각 성이나 도시에는 산하 회사처럼 지방신문을 거느리고 있다. 가령 각 지방의 대표신문들에게도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어 통제가 가능하다. 또 런민르바오 산하에는 전세계 중화권 사람들의 네트워크 신문인 런민르바오 하이와이판을 비롯해 생명과학, 건강, 피플, 증권, 에너지 등의 분야에 10여개가 넘는 전문지와 영향력 있는 뉴스포탈 4개를 거느리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환치우스바오 역시 런민르바오의 방계회사다. 런민르바오 사장은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부장급이 임명되는 것만 봐도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관보적 매체는 시간이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 자리는 이번에 논란의 중심이 된 난팡저우모나 신징바오 같이 민영적 성격을 가진 언론사들이다. 베이징의 런민르바오는 일반 대중과 거리를 둔지가 오래다. 대신에 공청단 계열에서 만든 베이징칭니엔바오(北京靑年報)가 있지만 이 신문도 서서히 위력이 떨어진다.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신징바오나 완바오(晩報) 같은 자유로운 성격의 매체들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매체는 표현에 있어서 항상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여론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중국 정부 역시 언론을 매우 중시한다. 때문에 상무위원 가운데 언론 쪽을 담당하는 인물이 꼭 들어있는데 앞으로 10년은 류윈산(劉雲山)이 맡는다. 류윈산은 1947년 산시(山西)성 신저우에서 태어났지만 주 활동은 네이멍구였다. 네이멍구 지닝 사범학교를 졸업하고나서 교사로 생활하다가, 1975년부터 7년간 신화사 네이멍구(內蒙古) 주재 기자로 일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성장을 거듭해 1993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중앙 무대에 진출했다. 2002년에는 중국 언론의 실무장인 선전부장 자리에 올랐고, 정치국 위원에도 입성했으며, 지난해 중국 정치의 꽃인 상무위원에서도 5번째에 올랐다. 

류윈산의 성공에는 철저하게 공산당의 원칙을 지켰던 측면이 작용한 만큼 비교적 완고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난팡저우모 사건에서도 류윈산은 징계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가 유화적인 시진핑과 부딪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류윈산 역시 부드러운 기조로 흘러가는 시진핑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역시 언론자유가 계속 통제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실제로 필자는 중국에서 신문을 만들면서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역린(逆鱗)만 건들지 않으면 그다지 큰 통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지에서 신문을 만들면서, 필자가 중국 10대 광고 매출을 올리는 진완바오(今晩報)에 사과기사를 요구하고, 민감할 수도 있는 한국내 반 중국 동포 감정에 관한 글을 썼을 때도 제제를 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상외로 포용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공산당의 역린을 건드리면 그만큼 처벌도 무섭다. 지금 공산당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배층의 부정부패나 치정관계, 공산당 체제에 대한 너무 빠른 변환시도, 정치적으로 커질 수 있는 조직의 결성 등이 있을 것이다. 난팡저우모 역시 체제에 대한 지나치게 빠른 변화시도가 반발에 부닥쳤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국민의 눈과 귀를 통제하는 일은 가장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참여정부 역시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언론권력과의 대결에서 실패하면서 큰 타격을 맞았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들어서자마자 언론을 순치시키는데 노력했다. 재벌들 역시 언론과의 포지셔닝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다양한 방편으로 통제하려 한다. 
 
자본주의 국가들도 이런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데 일당 지배라는 낯선 체제를 가진 중국이 언론을 지나치게 풀어놓는 것은 불을 들고 섶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벌어진 난팡저우모 사건은 향후 중국 공산당의 언론자유에 대한 미묘한 시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예의주시할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중국이나 중국 언론자유 문제를 바라보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 한 예가 얼마 전 원자바오 일가의 비리 문제를 고발한 기사로 인해 비자가 취소됐다는 뉴욕타임즈 기자에 대한 기사다. 이번에 비자를 거부당한 기자는 크리스 버클리(Chris Buckley) 기자이고, 지난해 비리 기사를 쓴 기자는 상하이 지국장인 데이비드 바보자(David Barboza)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들은 중국은 언론통제가 강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기자들의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고 오보를 양산했다. 물론 크리스 버클리 기자의 비자 거부가 데이비드 바보자 기자의 기사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국내 독자들은 이 기사만 읽으면 버클리 기자가 원자바오 비리에 관한 기사를 쓴 기자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바로 이웃에 있는 중국의 언론자유는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 언론 상황에 대해서도 제대로 반추해야 한다. 특정 매체와 인터뷰했다고 정직당한 언론인이 있는가 하면 이유 없이 활동을 금지당한 아나운서가 숨죽여 울어야 하는 이 땅과 저 바다건너 중국의 언론 상황이 뭐가 다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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