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로 남아 있는 지리산 오지암자 도솔암 가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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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지리산 깊숙한 곳에 전설처럼 자리한 암자가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 존재조차 드러내지 않던 오지암자. 칠암자 순례길에서 몇 번 길을 헤매다 허탕을 치고 내려온 기억이 있다. 그 후 수년이 흘렀고 오랫동안 벼르다 마침내 이번에 용기를 내어 암자를 찾기로 했다. 초파일을 앞두고서다.
음정마을에서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산길을 한참이나 올랐다. 초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급경사 길은 산 하나를 그대로 오르는 된비알(험한 비탈)이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라도 있을까 조바심을 내며 힘겹게 오르기를 한참, 마침내 영원사라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 도솔암 가는 길에선 아름드리 자작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껍질을 만지면 '자작자작' 자신의 이름을 어김없이 내뱉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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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마을에서 만난 노인이 영원사 아래 길이 크게 휘어진 곳에 도솔암 가는 산길이 어렴풋이 있다고 했고, 마침 영원사 앞에서 만난 산꾼의 도움으로 암자 가는 길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곰이 출현하니 속히 돌아가라는 선뜩한 경고문을 뒤로하고 계곡을 건넜다. 오지암자로 가는 길이 제대로 나 있을까 여겼던 의구심은 기우였다. 처음에 희미했던 산길은 어느 순간부터 아주 옛날 누군가 다닌 것처럼 넉넉했고 또렷했다.
계곡을 서너 차례 건널 때만 해도 평지에 가까웠던 산길은 능선이 보이면서 하늘로 치닫기 시작했다. 숨이 깔딱 넘어갈 즈음, 수십 그루의 편백나무 사이로 사립문이 얼핏 보였다.
▲ 계곡을 서너 차례 건널 때만 해도 평지에 가까웠던 산길은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하늘로 치닫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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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암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청정한 수행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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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의 지리산 조망대
도솔암은 해발 1200고지에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병풍처럼 암자를 두르고, 장한 소나무가 든든하게 뒤를 버티고 있는 암자는 아늑하고 넉넉했다. 하늘과 가까운 이 높은 곳에 어떻게 이처럼 너른 마당이 있을 수 있는지. 법당에 절을 올리고 마루를 내려서니 스님이 댓돌 앞에 서 있다.
"어디서 왔어요?"
"멀리서 왔습니다."
자연스레 대화는 이어졌다.
"이곳에선 천왕봉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마당에서 이렇게 지리산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드뭅니다."
나중에 스님은 삼소굴에 앉아 내다보는 지리조망이 으뜸이라며 여행자를 방안에 들게 했다. 여행자도 맞장구를 쳤다.
"'금대지리'라 했지요. 금대암에서 보는 천왕봉과 지리능선이 천하제일이라고 하지만 오늘 여기서 보니 이곳의 조망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금대암에서 본 풍경이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이곳에서 보는 지리능선은 안온하고 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천왕봉, 중봉, 하봉, 그리고 제석봉. 저기 잘록한 곳이 장터목이고, 오른쪽 진한 곳이 세석입니다. 맞아요. 저기 세석 왼쪽에 삐죽 솟은 것이 촛대봉입니다."
스님의 손가락을 따라 지리능선을 더듬듯 살폈다. 제법 너른 안마당 끝으로 천왕봉과 지리능선이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까이 보인다.
▲ 도솔암 앞으로 펼쳐진 장엄한 지리능선을 정견 스님이 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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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견 스님이 말한 바위에서 본 영원사, 아늑하고 푸근하기 이를 데 없다. 다음 순례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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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뒤를 돌아 정견 스님이 말한 전망대로 향했다. 산짐승이나 다닐 법한 오솔길은 좁지만 뚜렷하다. 바람이 쏴 하며 소사나무 가지를 흔든다. 나무꾼들이 다녔다는 산길은 커다란 바위 끝에서 멈췄다. 연둣빛 능선 건너편 산중턱에 영원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영원사가 앉은 자리는 아늑하고 푸근하기 이를 데 없다.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영원사 위쪽 벼랑 끝으로 전각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 저곳은! 그랬다. 수 년 전에 가봤던 상무주암이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어때요? 멋지지요. 이번에는 저쪽 전망대를 가보시지요?"
스님의 말대로 암자마당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오솔길을 따라갔다. 발걸음을 옮기다 "아"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마치 비밀의 공간처럼 철쭉과 갖은 꽃나무에 둘러싸인 양지바른 공터가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일산처럼 잘 자란 소나무 한 그루가 반들반들한 공터의 끝에 자리하고 그 앞으로 스님이 늘 좌선하는 작은 평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평상이 향하는 곳은 지리능선,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도의 공간으로 이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몇 번이나 혼자 감탄사를 쏟으며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 정견 스님이 늘 좌선하는 평상에 앉아 본 지리능선. 천왕봉, 중봉, 하봉, 제석봉, 세석고원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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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자란 소나무 한 그루 아래에 비밀의 공간처럼 숨어 있는 수행처. 평상이 향하는 곳은 천왕봉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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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암자의 맑은 즐거움
절간은 고요했다. 삼소굴 툇마루에 걸터앉아 천왕봉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삼소굴은 30여 년 전에 이곳에 들어온 정견 스님이 혜암 종정을 모신 곳이다.
"우리 사진 한 장 찍어줘요."
스님이 아이를 불렀다. 이 깊은 산중 암자에 꼬마 아가씨가 오기는 처음이란다. 아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짝 웃으며 스님 옆에 섰다.
"이번에는 제가 찍어 볼게요. 거기 한 번 서 보세요. 천왕봉이 잘 나올 겁니다. 저도 예전엔 제법 사진을 찍었습니다."
몇 번 셔터를 누르더니 카메라에 부쩍 관심을 가지신다. 광각렌즈로 교환하자 스님의 눈이 번쩍인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맑고 즐겁다. 그 자체로 즐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순진한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결국 도라는 것도 이 순진하고 맑은 즐거움 아니겠는가.
▲ 도솔암은 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도솔암은 사명대사의 법제자인 청매 스님이 머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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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암자엔 하늘빛만 선연하다. 암자 마당 끝에는 스님이 패다 만 장작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겨울이 오면 땔감 구하는 게 가장 큰일이라는 스님의 눈빛이 깊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니 마음마저 맑아진다. 청담(淸談). 이제는 산을 내려가야 했다. 스님께 인사를 하고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스님이다. 지게를 진 스님의 발길이 바쁘다.
"어디 가시게요."
"아, 저 아래 누가 물건을 갖다 놓은 모양이오."
그러더니 어느새 앞서간다. 축지법을 쓰는지 상체는 그대로인데, 쓱쓱 발길이 보이지 않는다. 숲길 끝으로 지게만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바람이 자작나무를 흔들었다.
▲ 도솔암의 정견 스님이 평소 땔감을 져 나르던 지게를 지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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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
도솔암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있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도솔암은 사명대사의 법제자인 청매 스님이 머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 불탔던 것을 1986년경 지금의 정견 스님이 혜암종정을 모시고 들어왔다. 도솔암과 삼소굴의 현판은 혜암종정이 썼다. 영원사 뒤쪽 산에는 도솔암을 중건한 청매조사 승탑이 있다. 마천에서 함양읍으로 넘어가는 재가 오도재인데, 청매조사가 도를 깨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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