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조정래, <아리랑> 연재했던 나의 한국일보는 어디로 갔나

새삼스럽게 말한다. 신문은 사회적 공기다. 이 상식적인 사실을 굳이 환기해야 하는 것은 '한국일보 사태' 때문이다. 그 사실을 새롭게 상기하는 이유는 그 사실이 곧 사태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에 따라 사주는 모든 편집권을 기자단에 되돌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방법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신문을 사주가 사유화한 일은 세계 언론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일보 사주는 이 상식적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세계가 경의를 표하는 민주화 투쟁의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경험과 이성을 내재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 성원들은 한국일보 사태의 부당함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사태는 국가적 수치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안국동 로터리를 지나다 보니 백상기념관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 분명히 헐려나가고 없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한국일보 사옥이 자취를 감추고 낯선 유리 건물이 솟아올랐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한국일보가 어느 건물로 셋방살이를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몇 년이 지났는데 사주가 용역을 동원해 기자들을 다 내쫓고 편집권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한국일보의 쇠락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뜻있는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경영이란 음양이 교차하는 것이고, '내정 불간섭'의 상식을 지키려는 예의였다. 그런데 한국일보의 경영은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는커녕 악화일로를 겪더니만 급기야 이번 사태까지 야기하고 말았다.

한국일보 사주는 그런 사회의 예의 바른 침묵을 사회의 무관심이나 무신경으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신문사 경영권은 사주가 독점하고 있었고, 기자들은 기사를 열심히 쓴 죄밖에 없다는 것을 세상은 다 알고 있다. 그 경영 악화의 책임을 져야 할 사주가 오히려 기자들의 편집권을 박탈하고 나서다니, 이건 우리 사회 전체의 부끄러움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을 응원한다[박홍규] 회장 고발하자 직장 폐쇄…한국일보 사측의 불법 행위
[함성호] 한국일보 투쟁은 우리의 그릇을 지키는 싸움!
[장정일] 국정원의 점입가경과 <한국일보>의 막상막하
[이순원] 다시 <한국일보> 정기 구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윤태진] 장재구 회장, 한국일보는 당신 장난감이 아니다
[표창원] 한겨레·경향과 조선·동아 기자들이 한목소리 낸 이유
[원용진] 한국일보 사주, 법원 결정마저 무시하나
[김경집] 장재구 회장에게 되레 고마움 느끼는 이유

5.16 직후에 각 신문의 구독률을 조사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국일보가 2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현재의 사주는 아시는가. 그 시절 한국일보의 신선한 열정을 독자들은 사랑했고, 그 열정의 발원지가 창업자 '장기영 사장'이었다는 것을 발 없는 소문은 퍼지고 퍼져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영'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신문사 사장으로서 유난히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장기영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작가의 긴 소설의 연재가 몇 차례씩 중단되는데도 "기다려라. 작가는 기계가 아니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해서 소설을 끝내 완성시키게 한 장기영 선생의 일화는 유명하다. 내가 졸작 <아리랑>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장기영 선생의 그런 정신이 한국일보의 문화 애호 정신으로 뿌리내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일보가 존폐의 위기에 빠져 있으니 가족 같은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어찌 한마디 아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세상은 지대한 관심 속에 한국일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이 상태에서 사주는 모든 사감과 사욕을 버리고 창업자 장기영 선생의 영전에 머리 조아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쭤보기 바란다.

그 길은 단 하나다. 더 이상 선친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고 한국일보를 사회적 공기의 위치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언론이라는 중요한 기구를 사주 개인의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신문도 살리고 가문도 살리는 길이다.

여영무, 시진핑 정치개혁 앞날 험난할듯

                                           시진핑 정치개혁 앞날 험난할듯
                                기사입력 2013/1/17 10:59 
여영무 뉴스앤피플 주필/남북전략연구소장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의 주간지 '난팡주말' 기자들이 지난 7일 정부의 언론탄압에 항의, 집단파업을 벌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일간 계속된 집단파업은 지방정부의 후퇴로 일시 진정되었지만 이것이 장차 시진핑 정치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파압중인 난팡주말 사옥 앞거리에는 “13억 중국인은 자기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미국이 조종하는 난팡(南方)주말 폐간하라. 너희들은 매국노다.”라는 상반된 피켓들이 등장했다.

피켓든 군중들, "13억 중국인은 자기 목소리 낼 권리 있다" 

주위에 모인 시민들은 ‘13억 중국인은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난팡주말을 보호하자’는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지켜보던 200여 명의 군중들에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전단을 뿌리면서 난팡주말 기자들을 응원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일부 시민은 민중봉기를 그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온 가면을 쓴 채 시위에 참가했다. 

난팡주말 사옥 반대편에서는 파업 반대 세력 30여 명이 마오쩌둥(毛澤東) 사진과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흔들며 난팡주말 폐간을 촉구했다. 9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40대 중반의 양(楊)모 씨는 “난팡주말은 미국이 조종하고 있다. 중국을 흔들기 위해 언론 민주화를 써대고 있는 게 아니냐”고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이번 진보 성향 지방 주간지 파업 사태는 정부 대 언론의 대립에서, 정부 대 시민으로, 다시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개혁 진영과 마오쩌둥 사상 회귀를 고집하는 수구세력 간의 집단충돌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중국판 재스민혁명의 시작이라고 해야할까.

8일 중공당 중앙위 선전부는 당 간부들과 언론 담당 관리들에게 “중국 매체는 당이 절대적으로 통제하며 이 기본 원칙은 확고부동한 것”이라는 메모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언론자유요구 투쟁은 출범 2개월쯤 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의 개혁 정책 앞날에 큰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는 매일같이 개혁과제와 마주치고 있다. 중국도 언론자유요구를 점진적으로 수용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북한은 68년간 세습수령체제로서 변화와 개혁과는 높은 담을 쌓고 있다. 당신들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퇴행적행태를 시급히 청산하고 즉각 변화와 개혁의 길로 나서야 할 것이다.

[조창완의 뉴차이나소프트] 중국과 우리 언론자유는 오십보백보

[조창완의 뉴차이나소프트] 중국과 우리 언론자유는 오십보백보2013/01/14  



돌아가신 김각중 전 경방 회장은 90년대 초반 중국을 보고 나서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나라”라는 미묘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90년대 중국은 선전이 빠르게 도약하고 상하이가 푸동 개발에 본격 나선 시기인데, 이 말은 지금도 무릎을 치게 할 만큼 정확한 통찰이었다.
 
 이 말에는 흔히 상인종(商人種)으로도 불리는 중국인들의 기저에 있는 습성을 말해 준다. 중국인에게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불릴만한 상업적 자질이 존재한다. 서구 자본주의에 밀려 맹위를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이후 화교로 불리는 해외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본토의 중국인들도 세계를 돌면서 상업적 자질을 드러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지금의 중국도 판매의 자질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상업의 발달은 그 나라가 자유주의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상인(商人)이란 말도 무너진 은(殷) 나라의 후손이 세상을 돌면서 장사를 하던 데서 유래했으니 상업에는 분명히 자유주의적인 냄새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는 어떨까. 

황제가 절대 권력을 누리던 옛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사실 철저한 제한 속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십팔사략’ 등에 나타난 것처럼, 황제를 비판하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참형된 수많은 현신(賢臣)들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언론 자유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물론 앞글에서 소개했듯이 우리나라 신문고와 같은 '주접(奏摺, 누구나 황제에게 보낼 수 있는 글)‘을 통해 나름대로 언로를 열어주었던 옹정제 같은 황제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황제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대항하는 신하나 방식에 대해 철저히 거부했다. 
 
중국의 당대는 어떨까. 새롭게 등장한 시진핑은 기존에 가진 지도자들에게서 느껴지던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가능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국에 얼마 전부터 세계인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가 생겼다. 중국의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난팡저우모(南方周末)>의 파업 관련 소식이다. 

난팡저우모는 선전을 근거지로 두고 있는 신문이다. 필자 역시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사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국 신문인데, 산하에 두고 있는 진보적인 경제지인 <21세기경제보도>도 가장 가독성이 높은 신문 중 하나다. 

물론 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이 언론사는 수차례 언론자유에 관한 문제로 논란이 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주간지인 난팡저우모 신년호에 실린, 중국이 입헌주의 정치를 실현해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특집기사였다. 공산당의 독점적 권한을 통한 정치 형태의 중국으로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고, 결국 이 기사는 삭제되었다. 기자들의 파업이 일어났고, 이 파업은 베이징의 신징바오(新京報)로 확장됐다. 중앙선전부가 난팡저우모를 비판하고 당국 입장을 옹호하는 환치우스바오(環球時報)의 사설을 게재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이 사태를 제대로 알려면 중국 신문의 구조를 간단히라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중국에서 전국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는 런민르바오(人民日報)가 유일하다. 런민르바오는 공산당의 기관지로 절대 권위를 갖고 있으며, 각 성이나 도시에는 산하 회사처럼 지방신문을 거느리고 있다. 가령 각 지방의 대표신문들에게도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어 통제가 가능하다. 또 런민르바오 산하에는 전세계 중화권 사람들의 네트워크 신문인 런민르바오 하이와이판을 비롯해 생명과학, 건강, 피플, 증권, 에너지 등의 분야에 10여개가 넘는 전문지와 영향력 있는 뉴스포탈 4개를 거느리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환치우스바오 역시 런민르바오의 방계회사다. 런민르바오 사장은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부장급이 임명되는 것만 봐도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관보적 매체는 시간이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 자리는 이번에 논란의 중심이 된 난팡저우모나 신징바오 같이 민영적 성격을 가진 언론사들이다. 베이징의 런민르바오는 일반 대중과 거리를 둔지가 오래다. 대신에 공청단 계열에서 만든 베이징칭니엔바오(北京靑年報)가 있지만 이 신문도 서서히 위력이 떨어진다.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신징바오나 완바오(晩報) 같은 자유로운 성격의 매체들이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매체는 표현에 있어서 항상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여론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중국 정부 역시 언론을 매우 중시한다. 때문에 상무위원 가운데 언론 쪽을 담당하는 인물이 꼭 들어있는데 앞으로 10년은 류윈산(劉雲山)이 맡는다. 류윈산은 1947년 산시(山西)성 신저우에서 태어났지만 주 활동은 네이멍구였다. 네이멍구 지닝 사범학교를 졸업하고나서 교사로 생활하다가, 1975년부터 7년간 신화사 네이멍구(內蒙古) 주재 기자로 일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성장을 거듭해 1993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중앙 무대에 진출했다. 2002년에는 중국 언론의 실무장인 선전부장 자리에 올랐고, 정치국 위원에도 입성했으며, 지난해 중국 정치의 꽃인 상무위원에서도 5번째에 올랐다. 

류윈산의 성공에는 철저하게 공산당의 원칙을 지켰던 측면이 작용한 만큼 비교적 완고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난팡저우모 사건에서도 류윈산은 징계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가 유화적인 시진핑과 부딪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류윈산 역시 부드러운 기조로 흘러가는 시진핑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역시 언론자유가 계속 통제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실제로 필자는 중국에서 신문을 만들면서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역린(逆鱗)만 건들지 않으면 그다지 큰 통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지에서 신문을 만들면서, 필자가 중국 10대 광고 매출을 올리는 진완바오(今晩報)에 사과기사를 요구하고, 민감할 수도 있는 한국내 반 중국 동포 감정에 관한 글을 썼을 때도 제제를 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상외로 포용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공산당의 역린을 건드리면 그만큼 처벌도 무섭다. 지금 공산당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배층의 부정부패나 치정관계, 공산당 체제에 대한 너무 빠른 변환시도, 정치적으로 커질 수 있는 조직의 결성 등이 있을 것이다. 난팡저우모 역시 체제에 대한 지나치게 빠른 변화시도가 반발에 부닥쳤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국민의 눈과 귀를 통제하는 일은 가장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참여정부 역시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언론권력과의 대결에서 실패하면서 큰 타격을 맞았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들어서자마자 언론을 순치시키는데 노력했다. 재벌들 역시 언론과의 포지셔닝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다양한 방편으로 통제하려 한다. 
 
자본주의 국가들도 이런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데 일당 지배라는 낯선 체제를 가진 중국이 언론을 지나치게 풀어놓는 것은 불을 들고 섶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벌어진 난팡저우모 사건은 향후 중국 공산당의 언론자유에 대한 미묘한 시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예의주시할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중국이나 중국 언론자유 문제를 바라보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 한 예가 얼마 전 원자바오 일가의 비리 문제를 고발한 기사로 인해 비자가 취소됐다는 뉴욕타임즈 기자에 대한 기사다. 이번에 비자를 거부당한 기자는 크리스 버클리(Chris Buckley) 기자이고, 지난해 비리 기사를 쓴 기자는 상하이 지국장인 데이비드 바보자(David Barboza)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들은 중국은 언론통제가 강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기자들의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고 오보를 양산했다. 물론 크리스 버클리 기자의 비자 거부가 데이비드 바보자 기자의 기사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국내 독자들은 이 기사만 읽으면 버클리 기자가 원자바오 비리에 관한 기사를 쓴 기자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바로 이웃에 있는 중국의 언론자유는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 언론 상황에 대해서도 제대로 반추해야 한다. 특정 매체와 인터뷰했다고 정직당한 언론인이 있는가 하면 이유 없이 활동을 금지당한 아나운서가 숨죽여 울어야 하는 이 땅과 저 바다건너 중국의 언론 상황이 뭐가 다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추징금(Additional Fee)

시사상식사전

추징금

추징은 범죄행위에 관련된 물건을 몰수할 수 없을 경우 그 물건에 상당하는 돈을 대신 빼앗는 것이다.

이때 빼앗는 돈인 추징금은 범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불법하게 범죄인이 소유한 물건을 돈으로서 되받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추징금을 내지 않을 경우 강제로 노역장에 유치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집행 시효가 만료되면 추징금 부가의 효력이 소멸한다.

따라서 비리 범죄자들이 돈을 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검찰은 은닉 재산을 추적해 민사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밖에 없다.

추징의 시효는 3년이며, 중간에 1원이라도 받아내면 시효는 중지되고 다시 3년씩 연장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추징금 (시사상식사전, 2013, 박문각)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Ghost Station
방송 시간: 1기 고스트 스테이션 : 오전 2시 ~ 오전 3시 (KST)
2기 고스트 네이션
(MBC FM4U): 오후 11시 ~ 오전 1시 (KST)
(MBC 표준FM) : 오전 2시 ~ 오전 3시 (KST)
3기 고스트 스테이션 : 밤 12시 ~ 오전 2시 (KST)
4기 고스트 스테이션 : 오전 2시 ~ 오전 3시 (KST)
방송 기간: 1기 고스트 스테이션 : 2001년 4월 1일 ~ 2003년 4월
2기 고스트 네이션 : 2003년 10월 ~ 2007년 9월 16일
3기 고스트 스테이션 : 2008년 3월 31일 ~ 2008년 10월
4기 고스트 스테이션 : 2011년 5월 9일 ~ 2012년 10월 22일
방송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방송사: MBC
방송 채널: 고스트 스테이션 : SBS 파워 FM(2001~2003) ,SBS 러브 FM(2008), MBC FM4U(2011~2012)
고스트 네이션 : MBC FM4U(2003~2005), MBC 표준FM (2005~2007)
진행: 신해철
여는 곡: 고스트 스테이션 공식 주제곡
여는 곡 지은이: 신해철
바깥 고리: MBC 고스트스테이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Ghoststation, 약칭 고스)은 록 밴드 N.EX.T의 리드보컬 신해철이 진행을 맡고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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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2001년 4월 1일 시작한 신해철 진행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애초 SBS와 인터넷 사이트 고스트스테이션으로 동시에 방송되던 것이 2003년 4월 SBS에서 방송이 중단되자 한동안 인터넷 방송으로만 진행되었고, 그 해 10월에 MBC FM4U로 자리를 옮겨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Ghostnation)이라는 변경된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2005년부터는 MBC 표준FM으로 주파수를 옮겨 진행하다가 넥스트의 6집 앨범 녹음과 개인활동을 위해 2007년 9월 15일까지 방송하고 종영되었다. 곧바로 비정기 인터넷방송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방송 제목도 다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으로 원상복귀 되었다.[1] 2008년 3월 31일부터는 SBS 러브FM을 통해 다시 지상파에 복귀하여 밤 12시부터 오전 2시까지 2시간 동안 방송을 진행했는데,[2] 방송 시작 7개월 만인 그 해 10월, 신해철은 넥스트 활동 등을 이유로 고스트스테이션 지상파 방송을 다시 중단하였다. 그러다가 2011년 5월 9일부터 MBC 라디오 봄철 프로그램 개편으로 MBC FM4U를 통해 약 2년 7개월만에 다시 지상파 방송을 재개하게 되었는데,[3] 2012년 10월 22일까지의 방송분이 마지막 시즌이 되면서 완전 종료되었다.

역사[편집]

1기 고스트 스테이션 (2001~2003)[편집]

2001년 4월 1일 ~ 2003년 4월 - 인터넷 방송 고스트스테이션과 SBS 라디오에서 새벽 2시부터 1시간동안 방송되던 '고스트스테이션'이 혼재했다. 신해철이 미국 뉴욕에 갔을 때에도 녹음을 하여 서버에 올리면 SBS 제작진이 내려받아 방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4] 중간에 당시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방송을 중단했다가 2002년 12월 20일 다시 복귀했고,[5] 고스트 스테이션 방송을 온오프라인 파티장 및 공연장으로 확대하는 생각도 밝히기도 하였다.[6]

인터넷 방송 기간[편집]

2003년 4월 ~ 2003년 10월 - 인터넷 방송만 진행

2기 고스트 네이션 (2003~2007)[편집]

2003년 10월 20일부터 2005년 봄 개편 전까지 MBC FM4U에서 '고스트 네이션(Ghost Nation)'이라는 제목으로 오전 1시부터 2시간 동안 방송되었다.[7] 또 정기정파 라디오 점검(매달 첫 일요일)이 있게 되면, 인터넷 방송인 '로스트 스테이션(Lost station)'을 진행하기도 했다.
2005년 MBC 라디오 봄 개편 부터는 MBC 표준FM으로 주파수를 옮겨 오전 2시부터 1시간 방송으로 바뀌어 진행되다가 2007년 10월 가을개편을 한달 여 앞둔 9월 15일에 마지막 방송을 하고 종영되었다.[8] 신해철은 고스트네이션이 끝난 후에도 인터넷 방송으로 계속 이어갈 것을 밝혔다.[9] 한편 방송종료 후 고스트네이션 연출을 담당하던 이우용 PD는 한시적으로 '임진모의 뮤직스페셜'을 맡다가,[10] 고스트스테이션의 정해지지 않은 방송 포맷을 차용해 '프리스테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최윤영 아나운서가 진행하게 된다.[11]

코너 변천[편집]

FM4U 방송시기 - 2004년 가을 개편 후 한번의 코너 이동이 있었다.
  • 매일코너: 사연과 신청곡
  • 월요일: 위대한 아티스트 → 락앤롤수다방
  • 화요일: N.S.D → Tune in Japan
  • 수요일: Tune in Japan →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
  • 목요일: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 → Class of Rock
  • 금요일: History of Rock → 고스전자군단
  • 토요일: 마왕 learns to Jazz → Indie on spotlight, Indie chart
  • 일요일: 고스트차트, 인디차트 → 한국의 뮤지션
표준FM 이전 이후
  • 여긴 어디? 난 누구?
  • 인디추
  •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
  • 난 다르게 생각하거든?!
  • 일요일: Indie chart

인터넷 방송 기간[편집]

2007년 9월 15일 ~ 3월 30일 - 넥스트의 6집 앨범 녹음과 개인활동을 위해 지상파 라디오 방송을 종료하고 비정기적으로 고스트스테이션 홈페이지에 mp3파일을 업로드하는 방식의 인터넷방송 체제로 전환했다. 방송명은 원래 제목인 '고스트 스테이션'으로 원상복귀 되었다.

3기 고스트 스테이션 (2008)[편집]

2008년 3월 31일 ~ 10월 26일 -고스트스테이션은 SBS 러브FM을 통해 밤 12시부터 오전 2시까지, 2시간 방송되었으며 편집되지 않은 원본파일이 고스트스테이션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되었다.

코너[편집]

  • 월요일 ~ 금요일 :사연,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
  • 수요일 : 두부세모
  • 토요일 : 넥스트와 함께하는 코너.(별도의 명칭은 없음)
  • 일요일 : 인디온스포트라이트/인디차트.

4기 고스트 스테이션(2011~2012)[편집]

신해철은 2011년 4월 25일 자신의 홈페이지 '신해철닷컴'을 통해 '(포고)냉동닭 사면 및 해동령 2011.4'라는 글을 올림으로써 방송 복귀를 간접적으로 알렸다.[12]
금일을 기해 전국 및 해외에 은신 도피 중인 냉동닭들을 사면하니 부속조항에 명기된 복권절차에 의해 신분을 회복하라. 5월6일까지 신해철닷컴에 자진 신고한 자는 전면 복권된다. 구제기간은 5월 말일로 종료되며 6일 이후 해동한 자는 개구리 박멸 기간 봉사활동을 명한다.
식구들끼리 회람되고 있는 과거 고스 파일의 교환 및 열람을 무기한 금지한다. 5월 한 달을 '좀비의 달'로 지정하니 신해철팬, 넥스트팬, 고스팬 모두 무덤에서 스멀스멀 일어날 것이며 화목하기를 강제할 수 없으나 반목하지 말 것이며 어떠한 분열의 조짐과 언동도 가혹히 처벌받을 것이다.
이와 같으니 전원이 모든 네트워크와 채널을 이용하여 널리 알리도록 하며, 미처 소식 듣지 못하여 외톨이 되는이 한 사람도 없도록 하되, 특히 평소에 못마땅해 하던 식구에게 전하라. 정작 그대들을 위함이다.
ㅈㄷ ㅁㄱㄷ 솓 초ㅑㅣㅇㄱ두 ㅐㄹ ㅇㅁ가ㅜㄷㄴㄴ. ㅁ갼ㄷ('한/영'키 변환 해석: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 arise)
이 후 2011년 5월 9일부터 MBC 라디오의 봄철 프로그램 개편으로 MBC FM4U에서 오전 2시부터 오전 3시까지 방송하게 되었다.[3]
2012년 2월 7일 복통으로 쓰러진 신해철은 얼마 후 수술을 받게 되었고,[13] 이로 인해 방송이 어려워져 재방송을 하거나, NB1[14]을 이용한 방송 등을 하다가[15] 상태가 호전된 후 제대로 방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시작된 MBC 노조 파업의 여파로 인해 연출을 맡고 있던 정찬형 프로듀서가 고스트 스테이션을 떠나게 되었고, 신해철은 이 내용을 언급하며 3월 21일 방송분을 끝으로 방송을 잠시 내려 놓게 된다. 이 후 새벽 2시 시간대에는 FM 영화음악(평일)과 클래식 공감(주말)이 시간을 앞당겨 방송되다가 7월 18일에 노조의 파업이 잠정중단 되면서 7월 24일에 방송이 정상적으로 재개되었다.
10월 7일 방송에서는 신해철이 앞으로 2주간의 특집을 하며, '고스트스테이션은 2001년 4월 1일 sbs에서 시작하여 4207일째 존속 중이며, 4223일째되는 2012년 10월 22일 02시에 막을 내릴 예정'이라는 NB1의 멘트로 11년간 이어져 온 고스트 스테이션의 완전 종료를 알렸다. 그 공지대로 MBC 라디오 개편일과 겹친 2012년 10월 22일의 마지막 방송과 함께 고스트 스테이션은 11년간의 방송을 완전 종료했다.

코너[편집]

  •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

방송 특징[편집]

오프닝 경고 문구[편집]

본 방송을 청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피해, 수면부족, 정서불안, 과대망상, 인성변화, 귀차니즘, 대인기피, 왕따, 식욕부진, 발육부전, 성적하락, 가정불화, 업무능력 저하, 소득감소, 직장생활 부적응에 대하여 본 고스트스테이션 제작진 일동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음을 경고드립니다.[16]

시그널 송[편집]

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12]
우리는 어둠의 자식들이고
We are the friends of moon and stars
우리는 달과 별들의 친구이다
Now,you are one of us,welcome welcome welcome
환영해 환영해 환영해 이제 너는 우리들과 함께하는거야
(이는 'N.EX.T5집 수록곡 〈Anarky in the net〉의 도입부 가사이기도 하다.)

고스 용어[편집]

  • 냉동닭:활동이 뜸한 사람[12]
  • 개구리:[12]
  • 해동:복귀[12]

고스 구호[편집]

  • 박테리아처럼 증식하고 바퀴벌레처럼 살아 남아 끝내 우리 승리하리라.[2]

시기별 특징적 방송내용[편집]

츄파춥스(인터넷 방송)[편집]

낙양성의 복수(고스트네이션)[편집]

빨간 탁구공의 비밀(고스트네이션 이후)[편집]

전등 수신호[편집]

신해철은 새벽 2시 집에서 라이브 라디오 방송을 하던중 듣고 있는 사람은 집 불을 깜빡여 보라고 시켜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 하였다. 이에 신해철은 자신의 맞은 편 아파트에서 불이 깜빡이는 걸 확인하여 놀랐다고 한다.[17]

자체광고 (2011~2012)[편집]

방송 중간에 등장하는 가상 광고 두 가지를 신해철이 직접 제작하여 사용했다.
  • 레지던트 악플 - 고스트 픽쳐스
  • 놀경 - 도서출판 유령원

유명한 노래[편집]

  • 삼태기 메들리:방송을 날로 먹을 때 자주 쓰이는 20분짜리 메들리 이다. 닉네임 '오랜지팩코'를 사용하는 청취자가 신청한 후로 자주 쓰이게 되었다.[16]

사건 및 논란[편집]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 비난[편집]

2002년 11월 27일,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에 희생당한 여중생을 추모하면서 정부의 무능과 미국의 오만을 강력 비판하였으며 결국 방송은 일부가 편집된 채 나가야 했다.[18]

노무현 후보 선거캠프 합류[편집]

신해철은 라디오 DJ를 포기하고 2002년 12월 5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하였고 민주당의 인터넷 라디오방송의 DJ를 맡았었다.[18]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영어 정책 비난[편집]

2008 1월 30일, 신해철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정책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여 화제가 되었다.[19]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정책은 반민주적인 작태이고 영어를 쓸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영어를 강제하겠다는 발상이다. 전 국민이 영어를 하게 하고 싶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가 호주하고 캐나다와 함께 영국 연방으로 들어가라. 자진해서 식민지가 되면 전 국민이 영어를 할 수 있다.
LA에도 영어 안쓰는 사람이 허다 하다. 전 국민이 영어를 쓰게 하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소녀시대에 대한 침묵 야유 사건 비난[편집]

2008년 6월 10일, 특정 그룹이 나올 때 야광봉 등을 꺼버리는 등으로 야유한 사건에 대해 쓴소리를 하여 화제가 되었다.[20]
특정 아이돌 그룹이 나올때 야광봉 등을 일부러 꺼버림으로써 야유를 하게 되는 집단 이지메의 연예계형이 일어났다. 매우 부끄러운 짓이고 어느 나라든지 무대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고 아니면 마는게 맞는것이지, 일부러 침을 뱉고 돌날릴 이유는 없다. 올해의 이지메 대상으로는 소녀시대가 당했다.
저질관객이 저질공연, 저질문화를 만드는 법이다. 맨날 아이돌탓을 할 필요는 없다. 자신들이 얼마나 저질인지 만천하게 과시한거나 다름없는 만행, 난행이었다. 야광봉이나 꺼버리는 3류팬 나부랭이들이 우리나라 음악에 공헌한다거나 해를 끼치는 힘은 요만큼도 없다. 그냥 저질 삼류관객 나부랭이들인것 뿐이다.
방송에 대해 불만이있거나 야광봉 껐던 분들분에서 짜증이 나서 나한테 마음대로 욕하던지 말든지 해라. 욕이 접수되면 1년 365일 소녀시대 노래를 틀겠다. 방송제목을 소녀스테이션으로 바꾸겠다.

징계[편집]

2002년 12월 13일 생방송에서 '술을 마시고 토한 이야기', '실외에서 용변 본 사연' 등 저속하고 품위없는 내용을 방송하여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6조,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출연자나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조항에 위배돼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받았다.[21]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해리포터 오역 모음

사람 이름 

Hermione Granger: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 허마이어니 그레인저
Cedric Diggory: 케드릭 디고리 → 세드릭 디고리
Gilderoy Lockhart : 질데로이 록허트 → 길데로이 록허트
Seamus: 시무스 → 셰이머스
Lestrange: 레스트랭 → 레스트레인지 또는 르스트랑주
Fenrir Greyback: 펜리 그레이백 → 펜리르 그레이백 혹은 펜리어 그레이백[
Mundungus Fletcher: 문둥구스 플레처 → 먼던거스 플레처
Parvati Patil: 패르파티 패틸 → 파르바티 파틸
Gellert Grindelwald: 겔러트 그린델왈드 → 겔레르트 그린델발트

용어 발음 

Borgin and Burkes: 보진과 버크 → 보긴과 벅스
Galleons: 갈레온 → 갤리언
Knut: 크넛 → 넛
Hufflepuff: 후플푸프 → 허플퍼프
Ravenclaw: 레번클로 → 레이븐클로
Leprechaun: 레프리칸 → 레프리콘
Quaffle: 퀘이플 → 쿼플 (쿠어-플 처럼)
Parseltongue: 파셀통그 → 파셀텅
Triwizard: 트리위저드 → 트라이위저드
Expecto Patronum: 익스펙토 패트로눔 → 엑스펙토 파트로눔

1권에서 등장하는 암호인 Caput Draconis는 그대로 한글로 표기할 것이 아니라 "용의 머리"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후에 등장하는 암호를 레몬 사탕, 포르투나 소령 등으로 번안할 예정이었으면 말이다. 참고로 저건 라틴 어.

1권 14장에서 론이 해그리드가 노버트에게 빠져 있을때 "녀석은 여의주를 읽어 버렸어."라고 말하는 데 이것은 원문의 "He lost his marble."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marble은 비격식적으로 판단 능력이나 제정신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 marble을 구슬이라고 오해한 것. 거기다가 한 걸음 더 나가서 그걸 한국어에 맞게 만든답시고 여의주라고 번역한 것이다.(…) 즉 제대로 번역하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군."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대사가 론이 해그리드가 팔불출 짓을 할 때 날린 대사라는 점과 해리에게 몰래 속삭였다라는 점에서 볼때 문맥적으로 이 대사가 해그리드를 까는 대사라는 것쯤은 제대로 된 번역가였다면 눈치챘어야 했다.<del>그야 김혜원씨는 제대로 된 번역가가 아니니까.</del> 참고로 이 오역은 초판 33쇄에서 발견된거다. 지금은 "정신이 나가셨군." 으로 수정되었다.

2권 초반에 해리가 더들리에게 장난을 칠 때 '호커스 포커스' 등의 주문(?)을 외우는데 사실 수리수리 마수리 정도에 해당되는 소리다. 한국 독자들에겐 알 수 없는 음성을 외우니 더들리가 주문인 줄 알고 도망친 것처럼 전해졌다. 물론 마법사가 수리수리마수리만 외쳐도 충분히 주문 같지만 적어도 독자에게 받아들여지는 뉘앙스를 생각하면 수리수리 마수리로 번역했어야 할 것이다.

4권 무도회에서 나온 패르바티 패틸의 '충격적일 정도로 야한 분홍 드레스'. 원문은 in robes of shocking pink로 쇼킹핑크(진분홍) 색의 드레스이다.

5권에서 마법 모자가 평소보다 길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론이 이번엔 사설이 좀 길지 않냐고 언급하자, 이에 대해 해리가 "모자 마음이야"라고 대꾸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원문은 "Too right it has."로, 단순히 "지당하신 말씀" 처럼 맞장구치는 표현에 가깝다.

5권에서 해리 일행이 성 뭉고 병원에 입원한 아서 위즐리를 문안할 때 통스가 '워처(Wotcha)'라는 이름을 부르는데 사실 이건 통스의 말버릇인 인삿말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인삿말. 6권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었다.

해리의 지도를 작동시키는(?) 암호는 본래 "I solemnly swear that I am up to no good"으로, 여기서 up to no good은 "좋지 않은 짓을 한다"는 의미로 지도를 본래 사용하던 사총사의 성격을 잘 반영한 문구였으나 한국판에서는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라고 번역되었다. <del>번역가가 찔렸나보지 
</del>
원래는 (나는 나쁜 짓을 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레몬 드롭스 사탕을 레몬 방울로 번역.(…)

검은 푸딩 → 블랙 푸딩, 순대 : 블랙푸딩은 우리가 아는 달콤한 푸딩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음식이다. 블랙푸딩이란 돼지 피와 지방, 곡물을 돼지 내장에 채워 만든 소시지로 한국의 순대와 거의 같은 음식. <del>혹시 검은 색 푸딩으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del>

5권 중반, 해리 일행이 시리우스 블랙의 집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게 되었을 때 '병 든 사람이 사는 집 같은 분위기'라는 식의 묘사가 있는데, 원판에선 'dying person', 그러니까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번역하는 쪽이 옳았다. 물론 병 들었다는 말도 문장 자체만 놓고 보면 오역은 아니지만, 이 항목을 보면 왜 내용을 이해 못해 나온 오역인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모우닝 머틀(Moaning Myrtle) : 해리 포터 시리즈의 유령들은 대개 별명으로 불린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Nearly-headless Nick),피투성이 남작(Bloody Baron) 처럼. 그렇다면 moaning 이라는 단어의 뜻을 살려서 '울보 머틀' 혹은 '신음하는 머틀'이라고 했어야 되지 않을까.

루나 러브굿의 머리카락에 대한 묘사 '더러운 금발머리'. 루나 러브굿이 머리를 잘 안 감는다는 뜻이 아니다… 구글링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것을… 안될거야 아마. 'Dirty Blond'는 어두운 갈색과 밝은 갈색이 섞여있는 머리를 말한다.

3권에서 탈출한 시리우스 블랙이 보낸 해리의 호그스미드 방문 허가서를 받은 뒤 해리의 대사. 블랙은 아직 누명을 쓰고 있는 상태이므로 다른 교사진에게 이 허가서가 먹힐리가 없는데도 "이거만 있으면 다 잘 될 거야" 라고 번역했다. 원문에서는 "(시리우스의 결백을 믿고있는) 덤블도어에게라면 이걸로 충분할 거야!(That'll be good enough for Dumbledore!)"

결국 이제야? → 여태껏? : 최인자씨의 최고의 업적 중 하나. 7편 '죽음의 성물'에서 덤블도어 교수와 스네이프가 나눈 대화에서 언급된 말. 원문은 'After all this time?' 으로, 덤블도어 교수가 스네이프에게 아직도 릴리 포터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묻는 말이었다. 그런데 번역본에선 이 문장을 (해리 포터를) 결국 이제야 (좋아하게 되었는가?)라고 번역을 하였고, 그에 따라서 이후 스네이프가 이 물음에 답변한 '항상 그랬습니다'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지게 되었다.

덤블도어가 스네이프에게 생전에 한 마지막 말인 부탁하네(Please)를 '스네이프 제발…'로 번역해 놓았다 <del>뭐가 제발이란거야?</del> <del>제발 빨리죽여라 뭐 그런거냐</del> 그런데 7권이 나오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고 번역가가 이 말을 덤블도어가 목숨을 구걸하는 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으니 이건 어쩔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del>스네이프가 이중 스파이인걸 들키지 않으려고 필생의 연기를 한 덤블도어.</del>

김혜원 씨의 또다른 작품 하나. Disapparation을 축지법이라고 번역했다. 작중에 묘사된 마법의 내용을 보면 분명히 순간이동 혹은 텔레포트. 다행히 최인자씨 번역본부터는 제대로 불러주고 있다.

요술지팡이 → 마법봉, 요술봉 등 : 지팡이는 말 그대로 지팡이로 쓸 만큼 긴 staff를 일컫는 말이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wand는 훨씬 짧다. 물론 이렇게 판타지 용어에 대한 적당한 번역명이 자리잡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적어도 1ft 내외의 막대기를 지팡이라고 번역하긴 뭐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법 한데 7편까지 계속 지팡이라고 부르고 있다. <del>설마 요술봉이라고 부르면 마법소녀물 같을까봐?</del>

블랙손 지팡이(blackthorn wand) → 자두나무 지팡이 : 번역을 대충 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 Blackthorn은 재질이지 딱히 특별한 게 아닌데도 음역처리하는 것은 사전도 안 찾아봤나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물론 상기한대로 지팡이라는 번역에도 문제가 있다.

7권 끝에서 세번째 장인 "킹스 크로스 역"에서 해리와 덤블도어가 나누는 대화 중에 해리가 자기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이냐고 묻자 덤블도어가 선택지 중 하나는 사후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덤블도어의 대답인 "On"을 "위로"라고 번역해 놨는데, 이것도 잘못된 번역이다. 덤블도어가 말한 "on"은 위(천국?)로 간다는 뜻이 아니라 (사후세계로)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의 on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흔히 쓰이는 말인 "Go on"은 "계속 해라 (하던 일을, 가던 길을, 하던 말을, etc.)"라는 뜻이다. 최인자씨는 덤블도어의 대답을 또 엉뚱하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on은 '위를 향해'라는 뜻조차 아니다! On은 무언가가 다른 것 위에 놓여 있을 때에 사용되는 거지 방향을 나타내지 않는데 on을 '위를 향해'라고 이해했다는 건 문제가 좀 심각한 편.

한국어 '마법'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을, '마술'은 손장난이나 눈속임을, '요술'은 마법을 비하해 일컫는 뉘앙스가 있는 말이다. 번역가는 마술과 마법을 혼용하거나 <del>일본 서브 컬처의 영향이라도 받은 건지</del> (참고로 일본 서브컬처에선 반대로 '마술'이 초자연적인 것을 의미하고, '마법'은 동화에나 나오는 그런 것이란 의미로 쓰인다.), '요술지팡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단어의 어감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del>요술사의 악몽의 재림</del>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witch', 'warlock', 'wizard' 등의 다양한 용어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번역본에는 그런 거 없다. 몽땅 마법사 아니면 마녀다. '음유시인 비들 이야기' 를 번역할 때가 되어서야, 책의 내용상 wizard와 warlock을 반드시 구분해야 될 필요가 생기니까 이걸 부랴부랴 '마술사'로 구분하고 주석을 달았다. 그런데 warlock은 전투에 숙달한 마법사를 존경을 담아 부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마술'이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이상한 번역이 된다. <del>마도사라고 했으면 어떨까</del>

4권에서 낙담한 해그리드에게 해리와 론이 위로를 건네는 과정에서 론이 "정말 재미있어요!" 라고 하며 손가락을 포개는 장면이 나오는데, 번역을 finger-crossed의 좋은의미(가호를 바라는)로 해석했으나, 사실 잘못되었다. 물론 가호를 바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손 모양을 X로 만든다는 데에서 "아니다"는 의미로 손을 포갠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즉 론이 거짓위로(해그리드 모르게)를 한 것. 이 사용법은 아이앰 샘에도 나온다. 가정법원의 어른들이 다코다 패닝에게 "사실만을 말하겠니?"라고 묻자 패닝은 "네"라고 대답하며 등뒤로 손을 꼬아 X자를 만든다. 한마디로 번역미스 수준이 아닌 역자의 영미권(특히 어린아이의)문화 경험부족이다.

5권에서 Go out(데이트하다)를 "외출하다"라는 전국구 발번역을 내놓았다. 앞뒤 문맥으로 봐도, 어느정도의 영어 지식(…)만 있어도 Go out은 당연히 "사귀다" 혹은 "데이트 하다"라고 번역이 되어야 맞는데 "저랑은 외출해주지 않네요"식의 한국어로 볼 때도 뭔가 부자연스러운 번역은 정말 문제가 있다. 심지어 한 번이 아니라 아예 Go out을 한번도 빼놓지 않고 "외출하다"라고 번역했다.<del>번역기 돌린건가</del>

호그와트(호그워츠)의 원래 이름은 'Hogwarts School of Witchcraft and Wizardry'로, witchcraft와 wizardry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번역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보다 고풍스러운 뉘앙스로 번역했어야 할 듯. (물론 Witchcraft와 Wizardry는 어감이 미묘하게 다르지만, 영한사전에서는 둘 모두 '마법'으로 번역된다. 또한 'Ladies and Gentlemen처럼' 양성을 모두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 언젠가 마법사와 마녀를 위한 호그와트 마법학교라고 언급이 된 적 있는데 이것을 고려한 번역이라면 역자를 다시 보게 되는 상황.)

또한 다양한 마법 주문에 있어서, 특정한 마법을 가리키는 명칭은 'spell', 'jinx', 'counterjinx', 'charm', 'curse', 'hex' 등으로 매우 다양하며 그 용법이 다 다르다. 즉 어떤 마법은 'jinx'라고 부르고 어떤 마법은 'hex'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떤 마법의 이름이 spell인지 jinx인지 charm인지에 따라 그 사용법이 구분되므로 독자들은 이름만 듣고도 이것이 어떤 데 사용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용어들이 한국어로 모두 '마법'으로 번역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공격 마법' '저주술' 등으로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이 번역가의 직업이 아니었나. 후기 권에는 그나마 조금씩은 구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그냥 마법으로 통칭한다(…).

딱총나무 지팡이(Elder Wand) : 작중 죽음의 성물 중 하나인 지팡이인 'Elder Wand'는 특별히 대문자로 쓴다(capitalized). 이는 elder가 딱총나무라는 재질이며 동시에 elder라는 단어의 장로, 현자, 승자 등의 의미로 인한 이중성을 살리기 위해서이며 지팡이 외에도 딱총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있으나 이게 유별난 경우라고 작중에 대 놓고 언급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냥 딱총나무 지팡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한국어로 완전히 번역할 수 없으니) 아쉬운 점이기는 하다.

더들리(Dudley)를 '두들리'로 번역했다. 이건 그대로 냈으면 더들리 더즐리가 되므로 헷갈려 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유야 그렇다지만 그래도 등장 인물의 이름을 이렇게 자기 맘대로 바꿔도 되나?(두들리가 두들리가 아니었어!!)

가장 충격적인건 go out인데 
저걸 외출 하다로 번역을 하다니.


by. Jae Min Rafael Lee on Facebook

2013년 7월 8일 월요일

Jasper Johns, America


The large MAP represents an addition to Jasper Johns repertoire of imagery. The previous year, Rauschenberg had given Johns a schematic American map of the sort used in a school notebook, and Johns had painted over it; he used those proportions to paint the larger map.

Paint drips are prominent feature of this MAP; they are much more striking than in previous paintings, and remind us of the role of accident in the creation of his work. In ordinary life, such drips usually imply a mistake, or sloppy indifference. and there is a persistent theme in modern art, a theme of using chance events, which the viewing public has often mistrusted.

Duchamp, who employed chance in his working method, once said: "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He meant that the outcome of probability events is actually an expression of the artist's subconscious. This idea that you control what you do not control may at first seem surprising.

Johns' own view is not so no-minded:"There are no accidents in my work. It sometimes happens that something unexpected occurs - the paint may run - but then I see that it has happened, and I have the choice to paint it again or not. And if I don't, then the appearance of that element in the painting is no accident."

Some observers are put off by ideas such as these. The artist does not seem to be struggling to bring forth a preexisting vision, but rather is engaged in a process where the outcome may or may not conform to the initial idea, and where accidents along the way are incorporated. The idea of following a process in artistic creation makes people uneasy; the idea of a struggle - birth pangs - is much more acceptable.

Thus the cliché that the artist is never satisfied with his work, that it never turns out to be what he "had in mind." The usual explanation for this state of affairs assumes that imagination has a richness beyond what the fingers can actually perform, and so disappointment inevitably follows. Much has been written about the eternal striving of the artist to reproduce the wondrous visions in his brain.


©This artwork may be protected by copyright. It is posted on the site in accordance with fair use principles


copied from http://www.jasper-johns.org/index.jsp

2013년 7월 7일 일요일

다브로 빠좔로바찌! (환영합니다) - '러시아&중앙아시아' in 부산

현재 부산에는 러시아어권 주민 2000여 명이 살고 있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의 29%인 1709명이 러시아어권이었다.
2011년 부산국제교류재단 내 한-러협력센터와 부산대 러시아센터는 '제1회 러시아권 유학생 송년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초, 중, 고 정규교과를 가르치는 러시아스쿨도 운영중이다. 이에 따라 주부산러시아총영사관도 설치되었다.

초량동 '텍사스 러시아거리'로부터
국내에서 '텍사스'라는 별칭이 붙은 거리는 그 역사가 파란만장하다. 부산의 텍사스거리는 미군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술과 생필품을 팔면서 형성되었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미군의 수가 줄어들었다. 텍사스 거리도 주 고객인 미군들이 찾아오지 않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90년대 들어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를 맺으면서 새로운 손님으로 러시아 사람들을 맞게 되었다.
부산역 근처의 부둣가에 정박한 배에서 내린 러시아선원들은 곧 텍사스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간판들은 신속히 영어에서 아무르환전소와 사할린 상회, 노스딸기야(향수)와 같은 러시아어로 바뀌었다.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한 각종 물품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러시아 선원들과 제 3국 보따리장수들을 상대로 한 술집과 점포가 형성되었다.
특히 예전에 비해 가장 큰 변화는 술집이 줄어들고 점포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가난한 러시아 선원들과 동남아시아의 외국인들은 한국의 질 좋은 상품을 이곳 텍사스거리에서 대거 구입하기 시작했다.

부산국제교류재단 한-러협력센터
"부산거주 러시아인들은 조선,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업가와 근로자 그리고 다문화여성과 유학생을 포함해 20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김윤섭 한-러협력센터 과장은 이들을 위해 유학생 장학 프로그램과 한류문화체험교실을 기획하고 있다. 부산거주 러시안들을 위한 한국어교육도 진행중이다. 매년 부산과 블라디보스톡을 오가며 열리는 '부산-극동러시아경제포럼' 센터의 역점 행사다.
"경제포럼은 사할린주와 하바로포스크, 블라디보스톡 등 극동러시아 지역과 부산지역 경제인, 공무원, 관련기관, 학계 대표자 등 200여명이 참가합니다. 작년같은 경우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 개최와 러시아의 WTO 가입에 따른 극동러시아 지역 비즈니스 환경 변화와 부산, 극동러시아 경제교류 활성화를 주체로 야지역의 발전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러시안스쿨
"동대구에서 KTX타고 오는 아이, 울산에서 출발해서 해운대역에 내려서 오는 아이, 충무에서 아침에 시외버스 타고 사상터미널에 내려서 지하철 타고 오는 아이, 거제에서 오는 아이, 인근 원룸에 거주하는 아이 등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옵니다."
홍상태 러시안스쿨 교장이 학교를 연 것은 2009년 9월이었다. 학교에서 차별받고 사회에서 갈 곳없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영어권의 부유한 청소년은 시설이 좋은 국제학교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남아권 청소년과 어린이는 수가 많아 교육 당국이 제도적으로 신경을 많이 써줍니다. 그러나 러시아권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된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안 스쿨은 주부산러시아총영사관 및 주한러시아대사관의 정식 허가학교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러시아 정규교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러시아교사 10명이 근무하는데 수학, 과학, 문학 등 각 과목반에는 해당분야의 러시아출신 인물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부산러시안스쿨은 지난 4우러 동명대학교와 협약을 맺었다. 언어연수와 문화교류, 주한 러시아 가족들에 대한 한국어교육 등에서 협력이 기대된다.

한-러시아&중앙아시아 다문화가정
2013년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한 다문화가정은 135개국 14만7591명이다. 이가운데 여자가 12만6,704명(85.85%), 남자는 2만887명(15.15%)이었다. 러시아권 국가 다문화가정을 살펴보면 우즈베키스탄 (1,992명), 러시아(1,171명, 한국계 러시아인 제외), 키르기스스탄(511명), 카자흐스탄(221명) 한국계 러시아인(고려인, 149명)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10년 3월 카자흐스탄에 중앙아시아 지역 최초로 한국문화권이 설립됐다. 카자흐스탄은 전체에서 카자흐족 50%, 러시아인 30%에 약 120개의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로 실크로드 교역로상에 처음으로 한류 오아시스가 세워진 것이다.

취재 남경완 / 사진 박성준
출처: bbb magazine No.22 Heart & Commun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