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09
모든 능숙한 작가들은 경험 가운데도 주목할 만한 측면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이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그 소소한 것들은 우리 감각을 계속 뒤덮는 다량의 자료 속에 파묻혀 사라질 것이다. 작가들은 우리 주위의 세계에서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음미하라고 촉구한다.
p.113
Bestelle dein Haus,
Denn du wirst Sterben,
Und nicht lebendig bleiben.
네 집을 단정하게 정돈해라,
네가 죽을 날,
이제 살아 있지 않을 날에 대비해서.
p.118
형 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그런 분위기에서 끝내는 것이 아쉬운 느낌이 들어, 나는 두 성직자에게 여행자가 비행기에 타서 이륙하기 전 마지막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생산적일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목사는 그 점에서 확고했다. 그는 그때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하느님 쪽으로 생각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을 수 없으면 어쩌죠?" 내가 물고 늘어졌다.
목사는 입을 다물더니 그런 것을 목사에게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조금 자유주의적인 신학에 기대고 있는 젊은 동료가 간결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래도 더 포괄적인 답을 해주었다. 나는 그 이후로 며칠 동안 활주로로 나오는 비행기를 지켜볼 때마다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곤 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우리가 마음속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를 주는 거죠."
p.123
"이 세상의 노고와 소란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부, 권력, 탁월한 위치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에서 그렇게 묻고 스스로 대답을 했다.
"공감하고, 만족하며, 찬동하면서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이다."
"모든 문화의 기록은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기도 하다."
by. 문학평론가 발터 벤야민
p.149
시인을 인세 보고서로 판단하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항공사를 손익 계산서에 따라 평가하는 것도 부당해 보였다. 주식시장은 매일 세계 여러 항공사의 깃발 아래에서 일어나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수많은 순간에 절대 정확한 가격을 매길 수 없다. 공중에서 보는 노바스코샤의 광경을 묘사할 수도 없고, 홍콩 매표소에서 직원들이 누리는 동지애를 포착할 수도 없으며, 이륙할 때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흥분을 계량할 수도 없다.
p.173-175
과거에는 도착하는 때라는 것이 있었다. 풍경이 조금씩 바뀌면 그에 맞추어 마음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사막은 점차 키 작은 나무들에 길을 내주고, 긴 풀이 덮인 땅은 짧은 풀이 빽빽한 초원에 길을 내주었다. 이윽고 항구에 도착해 낙타에서 짐을 내리고, 세관을 굽어보는 방을 얻고, 기선을 타고 항해에 나섰다. 날치들이 배의 선체를 스치며 지나갔다. 승무원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공기는 서늘해졌다.
그러나 요즘 여행자는 화요일에는 아부자에 있다가 수요일에는 히드로의 새 터미널의 보조 비행장 끝에 있을 수도 있다. 어제 점심에는 아프리카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우세 지구에서 튀긴 바나나를 먹었지만, 오늘 아침 8시에는 히드로에 와 있다. 기장은 코스타 커피 체인 옆의 게이트에서 777기의 쌍발 엔진을 끈다.
피로에도 불구하고 감각은 완전히 깨어나 모든 것을 흡수한다. 빛, 도로 표지, 바닥 광택, 피부색, 쇳소리, 광고. 마약을 한 상태이거나, 갓난아기 또는 톨스토이가 된 것처럼 감각이 날카롭다. 갑자기 고향이 다른 어디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돌아다녔던 다른땅에 의해서 세세한 모든 것들이 상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부두 언덕의 새벽에 대한 기억에 비추어보면 이 아침 빛은 얼마나 색다른지. 하이 아틀라스 산맥의 바람을 맞고 온 뒤에 이 녹음된 안내 방송은 얼마나 특별하게 들리는지. 루사카 거리 장터의 소음이 귀에 쟁쟁한 상태에서 두 여자 지상 근무원의 수다는 얼마나 불가해하게 영국적으로 들리는지(두 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수정처럼 맑은 관점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다른 현실, 튀니스나 하이데라바드에 존재하는 현실에 관해 알고 있는 것과 고향이 늘 균형을 이루게 하고 싶다. 여기 있는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으며, 비스바덴이나 뤄양의 거리는 다르고, 고향은 많은 가능한 세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코 잊고 싶지 않다.
p.186-189
5. 그러나 수하물 찾는 곳은 공항의 감정적 클라이맥스의 서막일 뿐이다. 아무리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라도, 아무리 인류에게 비관적인 사람이라도, 월급을 줄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도, 도착했을 때 누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맞으러 나와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하느라 바빠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해도, 우리가 애초에 여행을 떠난 것에 불만이 있어 보기도 싫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지난 6월에 우리 곁을 떠났거나 12년 반 전에 죽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들이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냥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우리가 작은 아이였을 때 누군가 가끔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대 여기까지 올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몸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도착 라운지로 나아가면서 얼굴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세계의 익명의 공간들을 헤매고 다니는 동안 우리가 보통 취하는 엄숙하게 경계하는 태도를 곧바로 버리는 것은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희미한 미소를 지을 여지는 남겨두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상사가 농담을 할 때 웃어야 할 대목이 언제 나오나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보통 짓는 명랑하면서도 모호한 표정으로 타협을 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p.191-192
현대 사회에 널리 퍼진 이혼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공항에서 재결합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눈에 띈다. 이런 맥락에서 냉정하거나 금욕적인 척하는 것은 이제 소용없다. 지금은 연약하지만 통통한 어깨를 꼭 끌어안고 무너지며 눈물을 뿌릴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 생활에서는 힘과 강인함을 투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위태로운 피조물들이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을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또 그들 역시 우리를 무시하지만, 늘 우리의 행복의 가능성을 볼모로 잡고 있는 소수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냄새만으로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들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할 것이다. 초조하게 텅 빈 표정으로 어슬렁 거리는 남자들이 있다. 반 년 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온 남자들이다. 자신의 눈을 빼다 박은 듯 잿빛이 감도는 녹색 눈에 할머니의 뺨을 물려받은 작은 소년이 공항 직원의 손을 잡고 스테인리스스틸 문 뒤에서 나타나자 그들은 더 자제를 하지 못한다.
p.192-193 (윗 문단과 이어서)
그런 순간이면 죽음을 피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죽음을 영원히 계속 속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느낌도 공존하며, 그 때문에 이 장면이 더욱 가슴 아리다. 어쩌면 이것도 죽을 운명에 대비해 연습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인지 모른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자식은 일상적인 출장을 떠나기 전에 늘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할 것이며, 그러다 집행유예는 어느 순간 끝이 날 것이다. 한밤중에 멜버른의 한 호텔의 20층에 있는 방으로 전화가 걸려와, 세계 반대편에서 아버지가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켰으며, 의사들은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은 도착 라운지에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늘 빠져 있는 얼굴 하나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p.199-201
종종 삶이 우리가 가는 길에, 그것도 우리의 가장 강렬하고 진심 어린 만남이 이루어지는 몇몇 현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남녀 관계에 가장 큰 장애로 꼽히는 것을 가져다놓는 것을 보면 묘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결국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이들은 이제 돈을 내고 몇 층짜리 주차장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차장의 가차 없는 형광등 불빛 밑에서 시민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애초에 여행을 떠났던 이유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말려들곤 하던 천박하고 성난 분위기에 제대로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주차장이라는 아주 가혹한 배경 - 타이어 자국과 기름 얼룩으로 훼손된 콘크리트 바닥, 버려진 카트가 어지럽게 놓여 있는 주차 구획, 쾅 닫히는 문과 가속을 하는 차량들이 내는 자기주장 강한 소리들이 메아리치는 천장 - 은 최악의 가능성으로 다시 미끄러져 돌아가는 것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촉구한다. 우리는 우리가 찾아갔던 여행지들에 부탁할 수도 있다. "내가 더 관대해지고, 덜 두려워하고, 늘 호기심을 느끼도록 도와줘. 나와 내 혼란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해줘. 나와 내 수치감 사이에 대서양 전체를 넣어줘." 지혜로운 여행사라면 우리에게 그냥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으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텐데.
p.205
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대륙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할 것이다. 배우자나 자식과 다시 말다툼을 시작할 것이다. 영국의 풍경을 보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매미를 잊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보낸 마지막 날 함께 품었던 희망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두브로브니크와 프라하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해변과 중세의 거리가 주는 힘을 다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내년에는 어딘가에 별장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항구를 굽어보는 방 두 개짜리 숙소, 시칠리아의 순교자 성 아가타의 유해를 자랑하는 언덕 꼭대기의 교회, 무료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야자나무들 속의 방갈로.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p.213
옮기고 나서
실제로 공항은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기도 하고, 각 사람의 지위와 그에 따른 불안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며, 현대 건축의 백미이기도 하고, 일의 기쁨과 슬픔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화성인이 온다면 구경시켜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로 공항을 꼽는다는 저자의 말은 전혀 농담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항은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가장 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